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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총파업을 철회하라는 오른쪽 압력 유감

지난 7월 15일 민주노총 파업이 제대로 조직되지 못하자 노동운동 내 일부 지도자들은 한상균 집행부에게 “이젠 총파업 남발하지 말라”며 ‘총파업 피로증’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노골적으로 ‘올해는 11월 민중총궐기 조직 잘 하고 내년에 준비해서 파업하자’며 ‘준비된 투쟁론’을 제기한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이 본격화하고 있는데 ‘준비’를 이유로 파업 계획을 취소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강펀치를 날리려 하는데 수비도 포기하자는 것과 같다.

‘준비’를 핑계로 당면 투쟁을 회피하거나 시기를 놓쳐선 안 된다. 사진은 시의 적절했던 4·24 파업. ⓒ이미진

심지어 상반기처럼 미리 파업 일정을 확정하고 조직하는 것은 “좌경적 오류”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4·24 파업의 일정을 미리 잡고 조직한 덕분에, 민주노총은 3~4월 박근혜 정부의 정치 위기 속에서 사태에 주도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또한 민주노총이 선제 파업을 제기하고 강력한 투쟁 의지를 보여 줬기 때문에, 한국노총 지도부는 조합원들의 눈치를 보며 노사정위 협상을 결렬하기도 했다.

반면, 2013년 말 박근혜 정부가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했을 때 당시 민주노총 신승철 집행부는 즉각 파업을 조직하지 않았다. 그리고 2월 말에 ‘준비된’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두 달을 ‘준비’했던 파업은 정부에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결정적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준비된 투쟁론’의 진정한 문제점은 ‘준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준비’를 이유로 당면한 투쟁을 회피하거나 투쟁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가 직접 나서 “노동 개혁”을 공언한 만큼 지금부터 파업 일정을 가시화하고 조직해 나가야 한다.

일부 지도자들은 상반기에 드러난 ‘조직 역량의 한계’를 근거로 하반기 총파업을 전면 재검토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반기에 드러난 조직 역량 부족은 사실상 여러 산별연맹 지도자들이 파업 조직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의 결과였지, 민주노총의 객관적 역량 자체가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국민적 요구”

일각에서는 한상균 집행부가 조직 노동자들(특히 대공장 정규직)의 요구를 중심에 둬 효과적인 투쟁을 건설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와 같은 정규직 ‘철밥통’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운 탓에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해, 상반기 민주노총 총파업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비정규·불안정 노동자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거나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국민적” 요구를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대규모 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더는 투쟁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이기도 하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요 세력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총파업 주요 요구에 이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가 포함돼야 한다. 또, 상반기에 현대차 같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제대로 투쟁에 나서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의 노동조건, 생활조건보다는 계급을 가로질러 국민적 지지를 받을 만한 요구를 내세우라는 것은 포퓰리즘적 압력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재벌 개혁” 요구도 국민적 지지를 내세운 포퓰리즘적 전략 속에 나온 것이다.

이리 되면 ‘국민적’ 지지를 얻겠다는 이유로 공공부문·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지 않거나 회피할 수 있다. 하반기 박근혜 정부의 주 공격 대상이 이 노동자들인데 말이다. 또, 박근혜 정부가 청년 실업의 해소를 명분으로 아버지 세대 정규직 노동자들과 청년들의 갈등을 조장하는 데 단호히 맞서기 어려워질 수 있다.

만약 상반기에 공무원연금 개악 시도가 좌절됐다면 박근혜는 하반기에 공격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잘 조직된 부문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내걸고 단호하게 투쟁하는 게 전체 노동계급에게도 도움이 된다. 또, 노동계급 내 격차를 줄이는 것도 단결과 연대를 통해 투쟁을 강력히 벌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