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5백 일:
진상규명, 더디더라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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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이윤이 우선인 사회를 문제 삼아 왔고,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체제와 국가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현 체제에서 득을 보는 소수 자본가들과 국가 기관장들이 유가족들을 적대시하고 운동을 공격하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회의 언론, 교육 등 주요한 선전 수단을 장악한 지배자들은 여러 방법으로 유가족들을 모욕하고 운동을 분열시키려 한다. 박근혜 정부는 박래군 4·16 연대 상임운영위원을 구속하는 등 탄압의 고삐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참사 이후 5백 일이 지났지만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이라는 지극히 정당한 요구는 쉽게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자아내는 동시에 갑갑함을 갖게 한다.
그러나 앞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은 국가를 상대로 진실을 파헤치는 일이 더딜 수 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님을 보여 준다.
1993년 영국의 19세 흑인 소년 스티븐 로렌스가 버스 정류장에서 인종차별적 백인 청년 5명에게 칼에 찔려 살해됐다. 용의자들은 2주 후에야 체포됐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경찰은 용의자의 가족에게서 뇌물을 받았고, 제대로 된 증거 수집과 조사도 하지 않았다. 유가족들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직접 나서서 증거를 수집하고 집회를 열면서 끈질기게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19년이 지난 2012년에야 살해 용의자 2명은 종신형이 선고됐다. 이후 〈가디언〉을 통해 영국의 경찰이 스티븐 로렌스의 친척과 친구들을 감시하고 그들을 불리하게 하는 것들을 찾아내는 작전을 전국적으로 펼쳤다는 것이 폭로됐다. 심지어 경찰은 로렌스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모임에 잠입해 모임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려 했다. 만일 유가족들의 끈질긴 노력이 없었다면 끔찍한 인종차별 살인과 부실 수사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끈기
1989년 축구팀 리버풀의 팬들을 비롯한 96명이 경기장에서 압사해 영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힐즈버러 참사’의 진실도 2012년에야 제대로 밝혀졌다. 참사 당시 경찰은 사고가 술 취한 훌리건들의 책임이라고 발표하고 언론들은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일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2012년 독립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통해 사고의 책임이 경찰의 부적절한 대응에 있었고, 경찰이 증거를 조작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 일을 사과했고, 2014년 시작된 조사 청문회는 지금까지 계속돼 영국 경찰과 정부, 언론의 추악한 민낯을 까발리고 있다. 유가족들이 전국을 돌며 운동을 벌인 노력 덕분이었다. 2010년 이후 영국에서 학생 운동과 긴축 반대 투쟁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정부가 정치적 위기를 겪은 것도 정부를 한 발 물러서게 한 배경이 됐을 것이다.
5·18 광주 항쟁 학살의 책임자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우는 일도 학살 15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광주 학살의 진실은 물밑에서 퍼져나가 학살 군부 정권에 대한 전국의 대학생 청년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광주 학살 진실 규명 운동은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결국 1995년 전두환·노태우를 구속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망각에 대한 싸움”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국가를 상대로 한 진상 규명 운동이 대체로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진실과 정의가 승리하려면 굳건한 원칙과 넒은 연대가 필요하다. 특히, 원칙 있게 싸우며 대의명분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특별법 제정 투쟁에서 운동 내 온건파 리더들이 원칙을 버리며 후퇴한 것이 운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점을 되새겨야 한다. 반쪽짜리 특별법이 제정된 지 1년이 돼 가지만 정부의 방해 공작으로 진실 규명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더디더라도 원칙 있게 정부의 은폐·조작 시도를 폭로하고,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우는 다른 부문과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은 세월호 참사 진실 은폐의 주범이자 노동시장 구조 개악 등을 밀어붙이는 공동의 적 박근혜에 맞서 차근차근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추천 소책자
[2차 개정증보판] 세월호 참사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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