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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일자리 부족:
이주노동자를 비난해선 안 된다

토목건축 노동자들이 건설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임금 체불이 대폭 늘고 산재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데서 보듯, 이런 법 제도 개선은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요구다. 특히 노동자들이 원청 건설회사에 직접 고용되면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분명하게 물을 수 있다.

그런데 건설노조의 상경 투쟁 요구 중에는 부적절한 요구도 포함돼 있다. ‘외국인력 불법 고용’을 근절하라는 요구가 그것이다.

건설노조는 건설회사들이 ‘불법’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저임금을 강요하며, 내국인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정부에 ‘외국인 불법 고용 처벌’과 전자인력카드제* 전면 도입을 요구한다. 이주노동자 쿼터를 준수해 내국인에게 건설현장 일자리를 우선 제공하라는 것이다.

전자카드제 도입의 주된 취지는 출퇴근 기록을 남겨 사용주의 퇴직공제부금* 납부 회피를 막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불법 인력’의 건설현장 출입을 막는 부수적 효과도 낼 수 있다.

건설현장 이주노동자의 80퍼센트가 ‘불법 고용’(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건설노조는 사실상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의 고용을 문제 삼는 셈이다.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엄격한 정부 규제 때문에 ‘불법’ 취업에 내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건설현장의 일자리 경쟁 격화와 임금 하락 압박의 책임은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들에게 있다.특히 건설 대기업들은 다단계 하도급을 통해 노동자들 간 경쟁을 부추기고 사용자 책임을 외면하며 배를 불려 왔다. 그리고 지역·국적·인종에 따라 임금을 차별해 노동자들을 이간질했다. 정부는 법과 제도로 이를 뒷받침하고, 위법도 눈감아 왔다.

따라서 이주노동자 배척은 진정한 개선책이 아니다. 하도급 폐지, 직접 고용 확대,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과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진정한 해결책이다. 이를 요구하며 정부와 사용자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와 단결해 공동의 적인 사용자에 맞서자

이런 요구들을 성취하려면 건설 인력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주노동자와 단결해 힘을 배가해야 한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커지면 내국인과 이주노동자 사이에 반목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 이는 공동의 적인 사용자에 맞서야 할 때 단결하지 못해 힘이 약화되는 치명적 약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정부와 사용자들은 이주노동자 배척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척하면서 다단계 하도급 폐지와 같은 핵심 문제에서 빠져나가려 할 수 있다. 보수 언론들은 내국인과 이주노동자 사이의 ‘노-노 갈등’을 부각시키며 건설 노동자들의 진정한 요구를 은폐할 것이다.

이주노동자 배척은 노동조합의 성장에도 방해가 될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많은 서울과 수도권 지역들에서 특히 해악적이다. 반면, 대구경북건설지부는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비조합원 전체의 조건 개선도 함께 내걸고 투쟁하면서 인상적인 조직 확대를 이뤘다.

이주노동자는 한국 노동력의 중요한 일부가 된 지 오래다. 한국의 생산 인구 부족으로 이주노동자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흔한 상식과는 달리 일자리나 임금 총량은 정해져 있지 않다. 노동자들이 단결해 싸우면 경제 위기 상항에서도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을 올릴 수 있다.관건은 노동자들의 튼튼한 단결과 단호한 투쟁력이다.

영국 건설노조의 투쟁 경험

이주노동자 배척 분위기를 방치하면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다. 이주노동자 유입이 예고되는 플랜트 분야 등으로 퍼질 수 있고, 다른 산업 부문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

건설노조 내 투사와 활동가들은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주노동자 배척 정책을 폐기하라고 지도부에게 촉구하고 기층 조합원들과 토론하고 설득해야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 조직에 앞장섰던 지부의 경험 있는 활동가들, 건설노조에서 영향력이 있는 좌파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회원들(과 지지자들)의 능동적 구실이 중요할 것이다.노동운동의 좌파와 활동가들도 이주노동자 배척 문제를 단지 건설노조 내 사안이라고 보고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영국의 경험을 살펴보는 것도 한국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 위기가 강타한 직후인 2009년 1월부터 영국에서 건설 노동자 파업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사용자들이 잘 조직된 부문인 건설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해 기층 활동가들을 해고했다. 이에 맞선 한 건설현장의 파업이 순식간에 다른 건설현장들의 미승인 연대 파업으로 확산됐다. 그런데 이때 건설부문 고용불안이라는 조건 속에서 “영국인의 일자리는 영국인에게”라는 요구도 함께 제기됐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과 일부 좌파들은 이 파업에 적극 연대하면서도 이주노동자 배척 요구는 옳지 않다고 파업 노동자들을 설득했다. 연대 속에서 우호적 논쟁이 진행되자 파업 노동자들은 이 요구를 철회했다.

그 뒤 이 파업에 폴란드 이주노동자들이 가세해 힘을 보태면서 투쟁은 승리로 마무리됐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민족주의적 태도를 바꾸면 이주노동자들과 단결해 싸워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이 과정은 자동적이지 않았다. 영국의 좌파와 활동가들이 오불관언하거나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사태에 개입한 것이 방향 전환에서 중요했다. 한국의 좌파와 활동가들도 이로부터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