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회변혁적 노동조합운동: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의 신디컬리즘》:
노동조합과 사회 변혁 정치는 어떤 관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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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 급부상했던 신디컬리즘 운동을 세심하게 분석한 랠프 달링턴의 《사회변혁적 노동조합운동: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의 신디컬리즘》이 국역 출판됐다. 저자 랠프 달링턴은 영국 샐퍼드대학교 고용관계학 교수로 노동, 고용, 노사관계, 노동조합 운동에 관한 다작을 해 왔다.
신디컬리스트 톰 만은 이렇게 말했다. “노동조합의 목적은 계급 전쟁을 벌이고 적과의 대결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오늘날 노동조합 지도자가 어느 누군들 이런 말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래서 톰의 이 말은 ‘신디컬리즘’이 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디컬리즘은 20세기 초 2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분출한 혁명적 노동조합 운동을 가리킨다. 랠프 달링턴의 《사회변혁적 노동조합운동: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의 신디컬리즘》은 신디컬리즘의 투쟁성과 목표를 상세히 설명한다. 이 책은 주로 영국·아일랜드·미국·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사례를 다루면서 각 나라에서 나타난 운동들의 중요한 차이점도 세심하게 살핀다.1 이 책의 목표 하나는 신디컬리즘 운동들에 공통된 정치를 설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의 공산주의 운동과 신디컬리즘 운동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다.
신디컬리스트들은 심지어 가장 기층 수준의 많은 노동조합 조직들이 흔히 결여한 조직 능력이 있었다. 신디컬리스트들은 공통으로 사회주의는 아래로부터 노동계급의 자력 행동으로서 실현 가능하다고 봤다. 그들은 이 사상에 대한 확신으로 미조직 부문을 조직하는 데 애썼다. 예를 들어,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로렌스의 방직 노동자 파업에는 적어도 14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노동자 2만 3천 명이 참가했다. [이 파업을 주도한]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은 대중적 피케팅[파업농성장 출입 통제]을 벌이며 이 노동자들을 모두 조직했고 1만 번의 강력한 매일 시위로 승리했다. 이런 투쟁성은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싸운 프랑스 파리 이발사 노동자들에게서도 잘 드러났다. 그들은 이렇게 경고했다. “뻔뻔하게도 노동자들을 저녁 8시 넘어서까지 일 시키는 사용자가 있으면 그의 ‘머리털을 죄다 뽑아 버리겠다.’”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로런스에서 일어난 섬유 노동자 파업. 51개국 출신의 이민노동자가 파업에 참가했는데, 상이한 언어 집단을 대표하는 56명으로 이뤄진 파업위원회가 구성돼 파업을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IWW는 연대와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의 가치뿐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조합과 정당에서 개혁주의 사상과 관료층이 성장하는 것에 대응해 신디컬리스트들은 경제적이고 직접적인 단체행동을 강조했다. 달링턴은 이렇게 썼다. “신디컬리즘은 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 제2인터내셔널의 노동자 정당들은 대부분 이 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에 빠져, 역사를 경제적 철칙이 주관하는 것으로 봤고 인간의 의식과 행동이 사회를 형성하는 데서 하는 진정한 구실을 모두 부정했다. 이런 낡은 이해 방식은 수동성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지만, 신디컬리스트들은 적절하게도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강조했다.”
신디컬리스트들은 전투적 노동조합 운동을 자본주의를 전복할 방법으로 봤으므로, 파업을 노동자들이 그저 결과를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 포위 작전으로 보는 생각을 거부했다. 그 대신 신디컬리스트들은 행진과 대중 피케팅을 주장했다. 다른 사업장에 가서 2차 피케팅을 벌이거나, 상품 운송 등을 보이콧하거나, 연대 파업을 벌이는 전술들은 단지 노동자들이 총파업으로 나아갈 자신감을 쌓는 수단이었던 것만이 아니라 계획적 선택이었다. 신디컬리즘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아일랜드 혁명가 제임스 코널리는 그런 태도를 다음과 같이 잘 설명했다.
“한 자본가 계급 집단과의 계약을 고려하지 않아야 적에게 위협받는 노동자 집단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노동자 집단이 즉각 행동을 취해야 할 책임이 면제된다. 우리의 태도는 언제나 이랬다. 우리 행동이 신속하고 예측할 수 없어야 우리가 일시적 승리를 거둘 수 있고, 항구적 승리가 안착되기 전까지 항구적 평화는 헛된 꿈이므로, 일시적 승리만이 우리의 관심사이다.”2
그래서 신디컬리스트들은 파업 기금을 크게 조성하는 것을 흔히 거부했다. 노조 관료에 대한 완전히 합당한 경계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파업 기금을 모으지 않는 것이 파업을 승리하게 하는 활동들을 고무할 수 있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이런 태도는 노동자들이 자신감 넘치고 전진하는 시기에는 그야말로 딱 들어맞겠지만 후퇴의 시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이런 태도는 다른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IWW는 파업을 벌인 이후 항구적 조직을 남기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신디컬리스트들은 의회를 사회주의를 가져올 수단으로 보는 견해를 격렬히 거부했고, 이에 따라 진정한 권력은 경제적이라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예를 들어, 신디컬리스트들은 생산수단 국유화를 단호히 반대했다. 신디컬리스트들은 정당도 거부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을 모두 단결시킬 수 있는 반면 정당은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도 끌어들인다는 것이 한 이유였다. 전체로 보아 신디컬리스트들의 주장은, 자본가들의 지배가 경제에 토대를 두고 있으므로 그 토대를 해체시켜야 하고, 따라서 정치적 쟁점은 경제적 쟁점에 종속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달링턴의 책은 신디컬리즘이 정치를 거부했다는 일부 좌파의 오해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IWW가 벌인 운동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표현의 자유 옹호 운동이었다. IWW는 거리 선동의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런 운동은 명백히 매우 정치적인 운동이었고, 나중에 노동조합 권리와 시민 평등권을 요구하는 운동이 벌어지는 토대를 놓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디컬리스트들이 대다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는 달리 제1차세계대전을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IWW가 발행한 어떤 유인물에는 이런 말이 써 있었다. “셔먼 장군은 ‘전쟁은 지옥이다’ 하고 말했다.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 사령관을 지낸 윌리엄 테컴시 셔먼(1820~91)은 미시간 육군사관학교 수료식 연설에서 이 말을 했다.] 자본가들에게 낙원의 더 큰 조각을 주기 위한 지옥에 가지 말라.”
문제는, 신디컬리스트들이 대체로 전쟁을 반대하는 일반적인 선전은 했지만 [대중적 반전 행동을 촉구하는 구체적] 선동은 하기 어려워했거나 심지어 그래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디컬리즘의 정치는 작업장에서 전쟁 반대 선동을 하는 것을 포함하지 않았다. 신디컬리즘의 약점은 정치적 약점이었다. 신디컬리즘은 올바른 노동조합 세계관과 사회주의적 의식이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이라고 봤다. 이런 견해는 경제투쟁 바깥의 정치 운동을 생뚱맞은 것으로 보는 견해를 부추겼다.3
이런 견해는 이론을 등한시하고, 정당을 적대시하고, 새 사회주의 사회가 기본적으로 총파업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보는 견해도 조장했다. 심지어 정당에 가입하고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 덜 적대적이었던 신디컬리스트조차, 예를 들어 미국의 대니얼 들리언과 영국과 아일랜드의 제임스 코널리조차 주중에는 전투적 쟁의 행위를 위해 활동하지만, 주말에는 그와는 아주 동떨어져서, 그리고 덜 중요하게 정치조직을 위해 활동하는 식의 실천을 보였다.
개혁주의의 성장에 대한 혁명적 반발인 신디컬리즘은 전성기일 때 노동조합 운동을 그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문제는 노동조합 운동이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신디컬리즘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탄생한 운동이고, 제임스 P 캐넌은 신디컬리즘을 “위대한 서곡”이라고 했다. 소비에트와 핵심적으로 국가 권력 장악을 경험한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공산주의자들과 신디컬리스트들 사이에 중요한 논쟁이 벌어졌다. 쟁점은 노동조합과 정치의 관계였고, 달링턴의 책은 이 논쟁을 상세히 설명한다. 신디컬리스트들과 달리, 공산주의자들은 작업장 투쟁이 단결의 필요성과 분열 극복의 필요성을 보여 줬지만, 그것만으로 계급 내 이데올로기적?·정치적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당을 적대시하는 신디컬리스트와는 달리, 공산주의자들은 계급 내 분열을 극복하려면 혁명적 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산주의인터내셔널(즉, 코민테른) 제2차대회는 다음과 같은 요점을 제시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혁명적 신디컬리스트들은 결연한 혁명적 소수의 중요한 구실에 대해 자주 말한다. 옳다. 노동계급 내 정말로 결연한 소수는, 즉 실천하길 바라고, 강령이 있고, 대중 투쟁을 조직하길 바라는 공산주의적 소수는 바로 공산당을 뜻한다.”(달링턴 책에서 재인용)
제임스 P 캐넌은 이렇게 말했다. “IWW의 가장 중요한 모순 하나는 … 스스로에게 상정한 이중적 구실이다. IWW가 (조직으로서) 결국 실패한 사소하지 않은 이유 하나는, IWW가 노동자를 모두 포괄하는 노동조합이자 엄선된 혁명가들의 선전 조직(본질적으로 혁명적 당)이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두 가지 다른 임무와 기능은 사태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는 별도의 조직이 담당해야 하는 것인데, IWW는 두 가지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이 이중성은 두 영역 모두에서 IWW의 유효성을 떨어뜨렸다.”4
이런 약점은 신디컬리즘이 개혁주의에 대한 직접적 반대로부터 성장했으면서도 실천에서는 개혁주의에 뒷문을 열어 줬다는 사실에서 스스로 드러났다. 정치적으로는 개혁주의자들에게 정치를 맡겨 버림으로써, 조직적으로는 기존 노동조합 안에서 활동하지 않음으로써, 신디컬리스트들은 개혁주의에 뒷문을 열어 줬다. 이 문제에서 신디컬리스트들의 입장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로 보아 그들의 태도는 유진 뎁스의 이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부패하고 부정하고 쥐가 우글거리고 노동계 상전들이 완전히 장악한 노동조합을 개혁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시궁창에 장미향 향수를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헛되고 시간 낭비일 뿐인 일이다.”5 이런 입장은 레닌의 입장과 충돌했다. 달링턴이 인용하는 레닌의 말은 이렇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반동적이고 반혁명적인 성격을 이유로” 공식 노동조합에서 철수하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부르주아지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이다.”
코민테른은 기존 노동조합에서 활동하자고 주장하는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냈지만, [노동조합] 지도부에 공산주의자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 코민테른은 노조 관료의 힘과 그들이 노동조합에 내린 뿌리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느 정도 이는 개혁주의의 뿌리가 깊은 노동조합을 볼셰비키가 많이 겪어 보지 못한 데서 비롯한 문제였다. 노조 관료가 형성되는 경향, 노조 관료가 약해졌다가도 다시 회복하는 힘과 씨름하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이 모두 겪으며 배워야 할 학습 과정이었다. 달링턴의 책은 이 점에서 특히 명확하다. 예를 들어, 달링턴은 기존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영국의 전통이 신디컬리즘의 활동 방식이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관료에게 [투쟁을 이끌라고] 압박을 가하는 전략과, 관료를 대하는 현장조합원의 태도를 발전시켰는지를 설명한다.
달링턴은 레닌과 트로츠키가 신디컬리스트들을 코민테른의 길로 인도하려고 애썼음도 지적한다. 그들과 달리 지노비예프와 카를 라데크 등은 그저 신디컬리스트들에게 그들의 결점을 설교하는 경향이 있었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노동조합이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위한 수단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동시에, 올바른 지도부가 있으면 노동조합이 혁명적 기구로 변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혼동은 적색노동조합 인터내셔널(RILU)를 설립하는 데로 나아갔다. RILU를 설립한 의도는 일반적으로는 노동조합을, 특수하게는 신디컬리스트들을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게끔 설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토니 클리프와 도니 글룩스타인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RILU는 불가능한 것을 시도했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혁명적 위기 상황에서야 가능한 일, 즉 공산주의 정치에 헌신하는 대중적 노동조합의 공식 기구를 혁명 전에 건설하려 한 것이다. 일단 설립된 이상 RILU가 추구할 수 있는 대안은 두 가지였다. 첫째, 당시 정세를 인정하고 RILU를 전투적 현장조합원 조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선진적 사상을 수용하거나 투쟁에 참여하는 소수를 조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둘째, 기존 노동조합 기구처럼 행동하는 것이다.”6
RILU는 첫째 선택지를 거부했다. 둘째 선택지를 이루는 방법은 오로지 혁명적이지 않은 노동조합들을 포섭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를 버리는 것밖에 없었다. 달링턴의 풍부하고 자세한 분석은 클리프와 글룩스타인의 비평에 힘을 실어 준다.
이런 오류에도 불구하고 코민테른의 방식은 대체로 옳았다. 신디컬리즘 운동은 붕괴해 1930년대에는 스페인을 제외하면 찾을 수 없었다. 많은 신디컬리스트 개인들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건설하는 중요한 인물이 됐다.
달링턴의 책은 또한 다양한 신디컬리즘 문헌을 한데 모았다는 점이 대단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이 있다. 신디컬리즘의 정치를 주제별로 살펴보고 러시아 혁명 이후 신디컬리스트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격렬하게 일어난 논쟁을 연구함으로써, 달링턴은 노동조합 정치와 정치적 노동조합 운동에 어떻게 개입할지를 두고 씨름하는 오늘날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각주
1 이 책은 ‘신디컬리즘’이나 ‘산업적 노동조합운동’ 등 꽤나 비이론적인 운동의 변종들을 실용적으로 하나의 단일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논의하는 문헌들도 개괄해 유용하다. [본문으로]
2 James Conolly, “Old Wine in New Bottles”,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다. https://www.marxists.org/archive/connolly/1914/04/oldwine.htm [본문으로]
3 이 문제는 키어런 앨런이 잘 다뤘다. Kieran Allen, The Politics of James Connolly (Pluto, 1990), pp71-74. [본문으로]
4 James P Cannon, “The IWW: The Great Anticipation”,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다. https://www.marxists.org/archive/cannon/works/1955/iww.htm [본문으로]
5 Theodore Draper, The Roots of American Communism (Elephant, 1989), p19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6 Tony Cliff and Donny Gluckstein, Marxism and Trade Union Struggle (Bookmarks, 1986), p50. [국역: 토니 클리프?, 도니 글룩스타인,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 투쟁》, 책갈피, 2014, 83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