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 책갈피:
미래를 만들기 위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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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읽는 것도 어떤 점에서는 즐거울 수 있다.
크리스 하먼의 거대한 얘기에서 수천 년 간 지배계급들이 벌여 온 책략을 읽다 보면 “별로 변한 게 없군” 하면서 웃음이 터진다. 예를 들어 초기 로마 원로원의 지배자 가족들은 193표 중 98표를 최상위 계급에 부여하고 무산자에게는 한 표만 허용했다.
그러나 이 책은, 재미있지만 서로 상관 없는 사실들의 나열 이상을 담고 있다. 각 장은 역사적 사실들이 파편적이며 오직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에 의해서만 완전하게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마르크스의 출발점은 인류가 정치, 종교와 문화에 종사하기 전에 먼저 먹고, 입고, 생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회의 제도와 사상이 어떻게 그러한 생산이 이뤄지는 방식에서 비롯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하먼의 책은 이러한 명제 덕분에 가능했다. 만약 동일한 작업을 위해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역사에 접근했다면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민족사관은 사회를 민족을 통해서 설명한다. 하지만 인류의 대부분의 생존 기간 동안 민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철기 시대의 정착자들 사이에서 2000년 뒤에 이탈리아가 되는 특정한 땅덩어리에 대한 이상한 소속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역사를 위대한 남성이나 (가끔은) 여성에 의해 움직이는 것으로 보는 영웅사관은 하먼이 책의 서두에서 인용한 독일 사회주의자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문제 제기에 답하지 못한다. “누가 일곱 개의 성문이 있는 테베를 세웠는가? 책에서 그대는 왕들의 이름을 발견한다네. 왕들이 바위 덩어리를 끌어 날랐는가?”
현 사회의 가치와 관습들 ― 불평등, 전쟁, 핵가족 단위와 스포츠와 난폭 운전 ― 은 보통 인간 본성 탓으로 돌려진다. 이것은 선사시대 사회가 돌을 제외하고는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조직됐다고 가정하는 〈플린스톤〉 식 관점이다. 하지만 《민중의 세계사》의 첫 장에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생존이 얼마나 협동에 의존했는지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직접 소비 외에 별다른 잉여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급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채집 집단으로 모여 살면서 채집할 식물을 찾아 끊임없이 떠돌아야 했기 때문에, “오늘날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유재산에 대한 집착은 있을 수 없었다.”
따라서 《민중의 세계사》는 신석기 시대 채집 집단을 논의하는 서두에서부터 오늘날의 논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폭력과 탐욕이 인간 조건의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사회가 요원하다는 주장을 들어 왔다. 하먼은 이러한 의구심을 말끔하게 해결해 준다. 수렵채집자들은 스톡 옵션이 필요 없었다.
하먼은 사회가 편제되는 방식과 사상 사이에는 연관이 있다는 인식에 기초해서 모든 시기의 모든 측면을 검토한다. 예를 들어, 종교도 역사적 환경의 산물로 묘사된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억압적 제국들과는 다른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에 확산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이론은 현자나 예언자의 목소리에 근거해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우월할 뿐 아니라 많은 탁월한 통찰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힌두교에서 소가 신성시된 이유는 인도 농업이 발달하면서 소가 식량보다는 경작 도구로써 더 가치가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5백 명씩 무리를 지어 마을로 행진한 후 둥그렇게 모여서 자신의 등을 쇠못으로 때리는 14세기 기독교 고행자의 행동에 대한 설명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 나는 그들이 맛이 갔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먼은 그처럼 거창한 제목을 정하고도 사회의 예술적·문화적 측면을 적당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 세익스피어의 희곡과 웰즈와 채플린 등의 급진 영화 조류가 사회운동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다시 그 사회운동에 영향을 준 과정을 분석한다.
하먼이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한 또 다른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이 있다. 하먼은 각 역사 시기의 사회구조뿐 아니라, 그 밑에 일어나고 있는 전환과 변화도 분석한다. 사회 꼭대기뿐 아니라 밑바닥을 봄으로써 하먼은 충돌로 이어지는 갈등이 생겨나는 것과, 이것이 겉보기에 갑작스럽게 터지면서 세계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불과 몇 달 전에 파리에서 소요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썼던 프랑스 언론인은 이러한 관점을 채택했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신노동당은 사회의 균열로부터 점점 자라나고 있는 불만에 무지하다.
이러한 관점 덕분에 하먼은 유럽이 세계 나머지 지역보다 언제나 앞섰다는 등의 여러 상식을 반박할 수 있었다. 1331년에 탄자니아를 방문한 한 여행자는 킬와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잘 만들어진 도시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암흑 시대’ 내내 유럽보다 앞서 있었다고 평가된다. 15세기까지 아즈텍 문명은 유럽에 견줄 만큼 발달한 문명이었다.
하먼은 각 사건을 세계사적 맥락에 위치시켜서 사회에 관한 현재의 관점이 잘못됐음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이슬람의 성장이 특수한 종류의 야만과 연결돼 있다는 생각은 한 문장으로 반박된다. “호메이니의 억압은 프랑스 가톨릭이 승인한 파리 코뮨 억압이나 1919∼1920년에 프러시아 루터교가 지지한 억압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도, 《민중의 세계사》는 계급사회의 역사가 단순히 무시무시한 억압과 야만의 역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억압에 맞선 끊임없는 저항의 역사임을 보여 주고 있다.
초기 계급사회로부터 착취자들은 “우리는 다수고 저들은 소수다”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계속 상기해야 했다. 고대 그리스 지배자들이 농민에 대한 식량 공급에 신경 쓴 것은 철학자들의 토론 때문이 아니라 일련의 농촌 반란 때문이었다. 비슷한 경우로, 각 시기에 지배계급 정책은 반란이나 반란의 위협에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 책이 현대 세계로 진입하면서 이러한 반란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됐다.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이라는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었고, 노동계급은 단순한 반란뿐 아니라 다수가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라 통치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됐다.
수천 년 동안 계속된 반란, 혁명과 탄압의 파노라마를 보고 있으면, 바로 지금 이 순간 “계급투쟁은 끝났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우스운가. 우리는 똑같은 주장을 반복해서 들어 왔다. 청동기 시대에도 대장장이 회의에 뛰어들어 ‘드디어 계급투쟁이 끝났다’고 선언한 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최고의 성취는 인류 전체 역사를 매우 쉽게 설명하면서도 독자가 자신이 무의미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 대신 독자는 계급투쟁에서 자신의 작은 역할이 로마 시대를 뒤흔든 노예, 프랑스 왕을 몰아낸 가난한 사람, 동궁(冬宮)을 휩쓴 노동자와 돌을 더 쌓기를 거부한 테베의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유명하지만, 스파르타쿠스를 십자가에 못박은 노예주나 농민 반란을 배반한 대가로 은화 몇 푼을 번 관리들을 지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다음 천년대의 역사가 쓰여 질 때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은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겠지만, 백만장자 친구를 두고 느끼한 미소를 짓는 기숙사립학교 출신의 쪼다[블레어를 가리킴]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