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중 세월호 특조위원 인터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행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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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지 1년이다. 당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보장하는 독립적 진상규명 기구 보장’이라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끝끝내 외면했다. ‘반쪽짜리’ 특별법으로 설치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여러 방해 속에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유가족이 추천한 특조위원인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 현재 특조위의 상황과 진상규명을 위한 과제에 관한 얘기를 들어본다. 이호중 교수는 기소권과 수사권 보장 요구가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법학자 성명서 발표에 동참하는 등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에 함께해 왔다.
정부가 시행령 통과를 강행한 뒤, 현재 특조위는 어떤 상황입니까?
지난 5월 상당히 문제가 많은 시행령이 제정됐고, 본격적으로 특조위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한 것이 7월 말입니다. 예산이 배정된 것이 8월 초, 실제 예산이 집행된 것은 8월 말부터입니다. 따라서 조사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으로부터는 이제 불과 두 달 정도가 지난 것입니다. 특별법이 제정된 것으로 치면 벌써 1년이 지났는데, 답답한 심정입니다.
특조위 출범부터 최근의 예산 삭감 문제, 특조위 활동 기한 문제까지 새누리당과 정부의 방해가 많았습니다.
제일 황당했던 것은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의 ‘세금 도둑’ 발언이었어요. 특조위 설립 준비 중에 나온 실무적인 예산 초안을 두고, 새누리당이 ‘세금 도둑’ 운운한 겁니다. 정식으로 결정된 안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또 ‘생일 수당, 동호회 비용 등이 책정돼 있다더라’ 하는 얘기도 한참 돌았는데, 그것은 기재부의 정부 조직 예산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걸 두고 “예산 가지고 잔치를 한다”는 둥 악의적인 얘기들을 국회의원들이 SNS를 통해 퍼트린 것은 너무 악의적이고 치졸한 방해 공작이었습니다.
지난해 정부는 ‘기소권과 수사권이 보장되는 특별법은 헌법의 근간을 흔든다’며 유가족이 요구한 특별법을 공격했습니다. 결국 조사권만으로 한정된 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당시의 법안 통과와 여야 합의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대형 사고가 나서 사회적 합의에 따라 조사 기구를 만들면, 거기에는 관련 자료들을 다 볼 수 있다는 것이 당연히 전제돼야 합니다. 이 때문에 강제력 있는 조사 권한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기소권과 수사권 없이는 자료 요청을 해도 안 주거나, 주더라도 찔끔 찔끔 주면서 시간을 끌 우려가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 현실이 됐습니다. 단적인 예로, 감사원 웹사이트에 있는 감사 결과 외의 자료를 달라고 감사원에 5월부터 요구했는데, 계속 거부하다가 겨우 지난주에 줬습니다. 자료 하나 받는데도 이렇게 소모적으로 시간을 낭비한다는 게 걱정스럽습니다.
새정치연합은 사실 특별법 제정 운동 당시 수사권과 기소권 요구를 당론으로 채택하지도 않았습니다. 기소권은 넣을 수 없고 수사권만 가능하다고 딱 선을 그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기소를 전제로 하는 게 수사이기 때문입니다. 그조차도 새정치연합의 안에 따르면, 검사의 수사권이 아니라 경찰의 수사권에 해당하는 수준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애초부터 유가족의 뜻을 대변할 의사가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게다가 새누리당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후퇴했죠.
특조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세월호 침몰 원인과 구조 과정의 규명이죠. 출항 이후부터 사고가 날 때까지 세월호 운항에 영향을 미친 변수들은 모두 명확히 밝혀질 필요가 있습니다. 조타 실수나 기계적인 결함 가능성 외에도 그 배후에 있는 간접적 원인과 구조적 원인을 모두 밝혀야 합니다. 즉, 세월호가 위험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운항된 점,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제도적 원인들 말입니다.
초기 대응 과정에서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 외에, 구조를 지휘했던 목포 서장, 서해 청장, 해경 본청의 청장, 더 나아가 청와대와 국정원까지, 구조를 지휘해야 할 재난 컨트롤타워의 라인이 제대로 작동한 것인지는 재판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검찰이 해경 지휘부를 제대로 기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근본적인 구조적인 문제로는 민영화와 위험 업무 외주화 같은 문제들도 있습니다.
진상 규명이라고 하면 아주 직접적인 사실만 떠올리기 쉽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낳은 구조에 대해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것입니다. ‘해경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해경은 당시에 아무런 장비도, 인력도 없이 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따지다 보면 2012년의 수난구조법 개정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구조 비용과 인력을 줄이자는 이 개정안이 2011년 말에 국회에서 논의될 때 ‘해양에서 사고가 나면 어떡하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 질문에 해경 차장은 ‘그런 사고가 맨날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 장비와 인력을 평상시에 다 갖고 있으면 낭비다’ 하고 답했습니다. 구조 업무를 민영화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언딘이 투입된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이니 해경은 인력을 가지고 있을래야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부산에 소규모 조직으로만 존재하던 특수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배가 다 침몰하고 난 뒤였던 것입니다.
선장과 선원들의 비상식적 행동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제대로 구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는 게 바로 진상 규명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여러 참사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산업 재해 문제도 심각합니다.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경계해야 할 두 가지 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안전불감증론, 즉 ‘누구나 안전을 위해서 조심해야 하는데 시민 개개인이 조심하지 못하니까 사고가 발생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사고를 문제 삼으려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본의 돈벌이를 위해서 안전이 얼마나 무시돼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형 재해의 위험은 주로 돈벌이에 혈안이 된 기업들이 안전에 관한 기준들을 무시하면서 발생합니다. 안전불감증을 문제 삼으면서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쳐야 한다는 식의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위험을 증대시켜 온 조직과 집단이 있고 그것을 부추겨 온 정치 세력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책임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정상사고론입니다. 이것은 ‘사회가 산업화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형 사고는 불가피하다’는 논리입니다. 즉,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 게 어느 누구의 책임이나 잘못이라고 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이런 주장도 사회를 위험하게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초점을 희석시킵니다.
안전의 문제가 오늘날 사유화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위험업무 외주화나 민영화는 안전 문제를 기업의 사적 자치로 치부합니다. 작업중지권 문제도 그냥 노사 간에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이죠. 안전을 어느 정도로 보장할 것인지 하는 문제는 뒤집어 말하면 그 위험을 누가 감수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안전 문제를 기업 자율에 맡기면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가 통용되는 안전 시스템이 돼 버리고, 결국 생산 현장에 있는 노동자와 인근 주민들이 가장 많은 위험을 감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안전이라는 문제를 자본가들과 그들의 편을 드는 과학 기술자들이 결정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의제로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실 규명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어떤 사건을 가장 정의롭게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일단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에 따라서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다음엔 교훈을 얻고 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첫걸음도 못 떼고 있는 것이 세월호 참사입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지 않고서는 반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억하자’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저는 기억을 하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성찰이어야 합니다. 기억을 잘 하기 위해서라도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배지를 달고 다니거나 학교에 배너를 달거나 토론회를 여는 등의 작은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행동이 모였을 때 역사가 만들어 집니다. 기억하기 위해서 행동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