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대규모 급진화를 위해선 급진 정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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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시리자와 프랑스의 좌파전선 같은 급진 좌파 정당들이 최근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영국은 어떤가? 사회주의자이자 영화감독인 켄 로치는 최근 이곳[영국]에도 새로운 좌파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한 제안의 지지자 중 한 명인 에드 룩스비가 왜 지금이 그런 정당을 건설해야 할 때인지, 그 당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관해 그의 생각을 설명한다. 이에 대한 답변은 '[논쟁] 좌파 정부' 구성이 혁명가들을 위한 전략일까?을 보시오.
긴축 정책에 맞선 투쟁에 헌신하면서 상당한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급진 좌파정당들이 유럽 전역 ― 가장 극적으로는 그리스에서 ― 에서 등장해왔다. 영국에도 유사한 정당, 즉 이미 오래 전에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사회민주주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모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한편 부끄럽지 않은 사회주의적 대안을 제시할 태세가 되어 있는 정당에 대한 절박한 요구가 존재한다. 다행스럽게도, 오랜 세월이 지나 처음으로, 큰 규모의 지지를 모을 수 있는 영국 내 좌파 세력들의 광범한 연합의 등장을 위한 조건들이 무르익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건들은 네 가지 상호 연관된 주요 정치적·경제적 사태 발전들로 인해 창출되고 형성돼왔다.
이들 중 첫 번째의 그리고 가장 명백한 것은 경제 위기와 긴축이다. 이것은, 매우 직접적인 방식으로, 일자리, 생활 조건, 그리고 수십 년 전에 투쟁을 통해 쟁취했던, 그리고 오늘날 완강한 공세 속에서 다시 해체되고 있는 보건·교육·복지 개혁들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지켜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역시나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가, 장기적으로 그리고 꾸준하게, 다수에게 쓸만한 복지 제도와 생활 및 노동 조건을 제공하면서 굴러가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해왔다. 그렇지 않다고 결론 내린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좀 더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대안을 건설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추가로 제기된다. 경제 위기와 긴축은 우리가 조직 및 전략과 관련한 근본적이고도 시급한 문제들에 직면하게 한다. 새로운 좌파 조직 건설이라는 구상이 하나의 정치 의제로서 강력히 제기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두 번째 사태 발전 ― 첫 번째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 은 이제까지 노동당을 지지해왔던 많은 지지자와 활동가들에게 노동당이 (자본에 맞선 역공세의 실행은 고사하고) 긴축에 맞선 저항 조직으로서 효과적인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 너무나 명백해졌다는 것이다. 노동당의 핵심 지지자·활동가 기반에서 장기간에 걸쳐 진행돼온 환멸의 과정에, 지난 몇 달에 걸쳐, 뚜렷하게 가속도가 붙었고, 더불어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노동당을 떠나 새로운 조직(특히 켄 로치의 최근 호소와 연관된 레프트유니티[‘좌파연합’이라는 뜻])에 합세한다는 전망 쪽에 점점 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시리자의 부상
영국에서 이런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내고 있는 세 번째 요소는 외부적인 것인데 바로 시리자의 국제적 영향력과 명망이다. 시리자 현상은 상당히 이질적인 좌파 세력들 사이의 연합이 선명한 반긴축 의제를 통해 커다란 지지를 획득할 수 있고 그것도 매우 빠르게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나아가, 시리자는 급진 좌파가 집권에 진지하게 도전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줬다. 이 일이 유럽 전역 사회주의자들의 사기 진작에 미친 심리적 효과는 과소평가되어선 안 된다. 이런 시리자 효과는 노동당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이완과 상호작용하고 있고, 나아가 노동당 왼쪽에 효과적인 정치적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인식에 보탬이 되고 있다. 또한 이 때문에 좀 더 급진적인 좌파 연합체들 사이에서 가능성에 대한 새로워진 인식이 생겨났다.
세 번째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네 번째 사태 발전이 있다. 이것은 SWP(사회주의노동자당) 내에서 벌어진 최근의 다툼이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이것은 좌파 진영의 정치적 풍경을 확실히 뒤흔들어 놓았고, 재편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창출했다. 시리자 효과와 상호작용하면서, 이는 새로이 광범한 연합을 건설하는 데 있어 매우 전도유망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바로 이런 사태 발전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영국 좌파 진영 내에서 [좌파] 세력들의 현저한 재편을 확실한 현실적 가능성으로 만든 새로운 국면이 조성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장 흥미롭고 기대되는 상황 전개는 스스로를 새로운 개방적 좌파 정당의 맹아적 형태로 여기며 시리자와 좌파전선 같은 다른 성공한 연합체들과의 연관 속에서 자신의 모델을 찾으려 하는 레프트유니티 조직의 등장이다.
전략 상의 고전적 딜레마
현 국면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들 중 하나는 전략적 지향 및 이와 관련해 [좌파] 세력들의 새로운 조직화가 취해야 할 조직 형태라는 문제다.
당연하게도, 이 대목에서 우리는 사회주의 사상 내의 가장 오랜 논쟁들 중 하나, 즉 ‘개혁이냐 혁명이냐’라는 고전적 논쟁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사회주의 [이행] 전략이라는 문제에 다가가는 상이한 접근법의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 이런 접근법들 각각이 흔히 인식되어지는 방식에 따르는 주요 문제점들을 도출해 보려 한다(지면의 제약 탓에 매우 단순화된 것에 불과하겠지만).
개혁주의적 접근법의 핵심에는 사회주의로의 이행 과정이 순탄하고 점진적인 변화, 즉 완전히 진화적인 과정일 수 있다는 사상이 있다. 이런 전략의 (많은 문제점 중에서도) 핵심적 문제는 일단 개혁주의자들이 집권하게 되면,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운영에도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도입을 목표로 하는 급진적 조치들은 당연하게도 자본가의 이익을 위협해야 하기 때문에, 개혁주의 정부들은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사회주의로의 점진적 이행 과정을 위해 그들에게는 자본가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주의 쪽으로 아주 멀리 나아갈 만한 그 어떤 조치의 도입도 그들이 자본가의 협력을 얻을 수 없도록 (그리고 격렬한 분노를 사도록) 만들 것이다. 따라서, 개혁주의에 반대해,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완전히 점진적인 과정일 수 없고 모종의 혁명적 단절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마땅하다.
혁명적 사회주의적 접근법은 개혁주의의 핵심 문제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여겨지는 바대로, 나름의 고유한 결함들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이들 모두를 서술할 수는 없다. 그러니 주요 난점에 집중하도록 하자.
적어도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개혁주의 전략과 전통적인 혁명적 사회주의 사이에는 절대적 경계선이 없다. 대부분의 혁명가들은 개혁을 위한 투쟁과 성취가 노동계급의 민주적 역량을 증진하고 자신감을 고취하며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교육시킨다고 믿는다. 나아가, 많은 혁명가들은 (예를 들어,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반자본주의 선언〉을 보라) 혁명은 개혁을 위한 운동이 좌절했을 때, 즉 자본주의 국가가 어디까지 양보할 뜻이 있는지 그 한계를 탐색하다가 좀 더 심원한 무엇인가로 확장·전이될 때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를 목적으로, [혁명적 사회주의] 전략은 세력 균형을 노동계급과 민중 세력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게 할 요구들을 국가에 제기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혁명적 사회주의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규정적 특징은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 활동하려 하기 보다는 그로부터 절대적으로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견해다. 하지만, 바로 여기가 [혁명적 사회주의] 전략이 주요한 문제와 만나게 되는 곳이다. 이 문제의 첫 번째 부분은, 영국 같은 국가에서, 즉 자유민주주의가 오랜 전통으로 확립됐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가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은 나라들에서는, 급진 [좌파] 정부의 구성을 추구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부상하게 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대규모 급진화 과정도 상상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즉, “노동자 정부” 구성에 헌신하는 운동을 내놓지 않는 한 이런 과정을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그리스에서 이런 식으로 일이 풀려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의 두 번째 부분은 혁명가들이 국가가 이행하도록 압박을 가하고자 하는 부류의 이행적 개혁[조치]들이 그러기를 주저하는 정부 대표자들(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그런 조치들에 극심하게 반대하는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에 의해 어떻게 시행될 것인지 알기도 어렵다는 데 있다. 물론, 어떤 양보들은 친자본주의적 정부로부터도 어찌어찌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의 힘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련의 전면적 급진 개혁들은 어떨까?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혁명적 접근법의 주된 난점은 바로 자본주의의 정치적 틀 내에서 권력을 획득한다는 사상에 대한 거부에 있다.
변화의 변증법
그러므로 전통적인 개혁주의적 접근법도 전통적인 혁명적 전략도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에게는 양 쪽 요소들의 결합을 추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이론가 보리스 카갈리츠키는 그의 책 〈변화의 변증법〉 바로 그러한 접근법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혁명적 전환은 오직 사회주의적 정부에 의해 추동된 급진적 개혁 과정으로부터 유기적·변증법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접근법을 “혁명적 개혁주의”라고 부른다.
카갈리츠키의 관점에서 볼 때, 현실적인 사회주의 변혁 전략의 고안은 개혁과 혁명이 서로를 고양하며 영향을 미친다는 사상을 이해할 때에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카갈리츠키는 혁명은 “확실하고 필요한 단계, 즉 개혁 과정에서의 질적 도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 “혁명은 점진성 속의 단절, 발전 속의 도약이다.” 혁명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개혁을 통해 (적어도 맹아적 의미에서는) 도입될 수 있는 변화들 ― 새로운 사회주의적 사회 관계들 ― 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하나의 발전 단계다.
분명, 모든 개혁들이 혁명적 전환과 유기적으로 갈마드는 것은 아니다. 카갈리츠키가 가장 선호하는 개혁 전략은 〈공산주의자 선언〉의 한 구절에 근거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경제적으로 불충분하고 수긍할 수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운동의 과정 속에서 그 한계를 벗어나 낡은 사회 질서로의 더 진전된 침투가 필요하게 만드는, 그리고 생산 양식을 완전히 변혁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불가피한” 일련의 개혁들의 시행에 대해 쓰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반하는 (따라서 그 자체로는 “경제적으로 불충분하고 수긍할 수 없어” 보이는) 개혁들의 도입이 누적적인 변화 ― 일종의 연쇄작용 ― 을 추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이런 최초의 개혁들은 자본주의를 불안정에 빠뜨리고 따라서 자본주의의 논리에 반하는 더 진전된 개혁들의 도입이 필요하게 만드는데, 그러면 이것이 또 더 진전된 개혁을 자극하는 식으로 과정은 이어진다. 이런 개혁들이 “그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처음의 개혁 자체가 가져온 초기 효과들 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가는 변화 과정을 촉발한다. 카갈리츠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여기에서 개략적으로 묘사한 누적적 변화의 동학이 오늘날 급진적 개혁을 위한 전략에 기초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그런 과정이 어떻게 추동될 수 있을까? 결정적인 요소는 개혁들이 시행되는 방식이다. 첫째, 카갈리츠키는 각각의 개혁은 그로부터 유기적으로 도출되는 더 진전된 개혁들을 자극할 수 있도록 입안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여기에는 각각의 개혁이 잘 계획된 전략적 강령들로 통합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그는 이런 개혁들이 혁명적인 개혁주의 정치인들이 국가 기구들 안에서 일하는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대중 동원과 “위로부터의 압력”을 통합하는 운동에 의해 추동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국가 기구들 내의 혁명적 개혁주의자들은 아래로부터의 끊임없는 압력에 종속돼야 한다. 이런 [국가] 기구들 밖에는 대중 운동이 있어야 하고, 이 운동은 그 대표자들을 통제하며 그들이 약속했던 개혁들을 시행하도록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혁명적 개혁들”은 이런 운동을 강화하고 권한을 부여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야 한다. 민중 권력의 성장은 대중 운동의 조직적 역량을 발전시킬 것이고 그리 되면 대중 민주주의가 더 한층 만개할 수 있는 기회들이 열릴 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중 운동과 정부 내의 사회주의자 대표자들 사이의 변증법은 누적적 변화라는 혁명적 개혁주의 동학을 가속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자 대표들은 대중 민주주의를 심화할 개혁을 도입하도록 압력을 받고, 그러면 다시 그 개혁은 대중 운동이 지도자들을 훨씬 더 나아간 변화의 방향으로 압박하도록 고무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행기 강령
좀 더 구체적으로, 그런 이행기 강령에는 어떤 개혁들이 포함될 수 있을까? 몇 가지 아이디어들이 제안될 수 있다. 초기 단계에는 직접 투자라는 야심 찬 강령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출은 그 목표가 전략적으로 설정되어야 하고 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시작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가 금융 부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야 한다. 우선적인 투자가 필요한 부분으로는 친환경 저탄소 사회 기반 시설 ― 특히 운송과 에너지 부문 ― 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개혁 과정의 급진화는 주요 금융 기관들의 국유화나 많은 산업체들의 공공 소유 전환을 포함한 추가 조치들을 가져올 수 있다. 금융 부문의 많은 부분을 공공 소유로 전환하면 금융 자산들을 사회적·환경적 기준에 따라 할당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산업체들을 국유화하면 그 기업들의 활동은 점점 더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생산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적 계획의 급진적 형태들이 국유화된 기업들 안에서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민주적 계획과 통제가 협소하게 “경제” 부문에 한정되어선 안 된다. 공공 부문의 전 영역 ― 교육 제도, 복지 체계, NHS(국민보건서비스 – 영국의 보건의료제도) 등 ― 이 집단적이고 민주적이며 참여적인 경영 형식에 개방되어야 한다.
물론, 그런 전략은 그 성공이 해외에서 비슷한 전환 과정을 이행하고 있는 동맹들의 존재 여부에 달려있다는 점은 언급할 만 하다. 분명 혼자서 해결하려는 그 어떤 국가라도 ― 적어도 어떤 선을 넘어서면 ― 막강한 국제 경제·정치 세력들과 마주해 절망적으로 고립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리자 효과” ― 그리스에서 급진 좌파의 성장이 다른 곳에서 정치적 재편을 향한 움직임들을 촉발했던 과정 ― 에서 봤던 것처럼, 세계 어느 한 지역에서 급진 좌파 정부의 등장은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운동들이 생겨나도록 고무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런 종류의 전략은 그 나름의 문제들을 제기한다. 그런 좌파 정부는 틀림 없이 자본의 격렬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그 첫날부터 자신의 강령을 뒤집으라는 엄청난 압력 아래 놓일 것이다. 이런 압력은 이행기 강령의 동학에 탄력이 붙음에 따라 ― 정말로 그렇게 되면 ― 더욱 커지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위에서 개진한 주장처럼 그 밖에는 다른 어떤 타당한 전략적 접근법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좌파가 좌파 정부를 통한 집권이라는 문제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사회 변혁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