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법 시행령 개정:
온라인에서 비판적 목소리 솎아 내려는 언론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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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박근혜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인터넷 신문 등록의 문턱을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 인터넷 신문 등록 요건 중 “취재 인력 2명 이상”을 “3명 이상”으로, “취재 및 편집 인력 3명 이상”을 “5명 이상”으로 늘린다.
개정된 규정을 지키려면 필요 인건비만 최소 7천만 원이다(5명 최저임금 기준). 요컨대 돈이 없으면 언론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이번 개정은 “현재 5인 미만 취재·편집 인력을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중 38퍼센트뿐 아니라, 1억 원 미만 매출액을 기록하는 인터넷 매체의 85퍼센트를 퇴출하는 결과를 낳을 것”(한국인터넷기자협회 도형래 사무총장)이다.
물론 언론 등록이 취소되거나 언론사로서 등록할 수 없더라도 웹사이트나 블로그 등을 운영하며 정보를 공유하거나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미등록 언론의 기자는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하면 기자 사칭이 되고, 취재를 위한 기관 출입 등이 어려울 것이다. 또 포털 사이트 등 여러 뉴스 제공 서비스와 제휴해 자신의 주장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7월 9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국정원 불법 사찰 의혹(‘해킹팀’ 사건)을 다룬 〈미스핏츠〉나 여성주의 저널 〈일다〉는 자신들의 등록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개악을 소급 적용하겠다고 했으므로, 이미 등록한 많은 진보적 인터넷 매체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5인 이하 언론사는 ‘사이비 언론’?
박근혜 정부는 “인터넷 신문의 사실 확인 기능 및 저널리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며 인터넷 신문 등록의 문턱을 높이려 한다. 이른바 ‘사이비 언론’을 퇴출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경련이 설립한 단체인 한국광고주협회는 사실상 기업과 기업주를 비판한 기사(“기업 경영층 사진 노출 및 선정적 제목 게재”, “반기업 정서에 편승한 부정 이슈와 엮은 기사”)도 ‘유사 언론 행위’*라고 규정하며 “상시고용 취재 편집 인력도 10인 이상으로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한 마디로 기업 비판하면 ‘유사 언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돈 많은 주류 언론이야말로 이른바 “유사 언론 행위”의 주체다. 한국광고주협회 자신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보고서(‘2015 유사 언론 실태조사 결과’)를 봐도 “이른바 유사 언론으로 중소 인터넷 매체들뿐 아니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경향신문 등 유력지와 TV조선, 채널A, MBN 등 방송사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메트로〉 2015년 8월 3일치)
주류 언론은 저널리즘의 질 하락을 부르는 저질 기사 양산에도 책임이 있다. 기사 내용과 상관도 없는 실시간 인기 검색어를 표제에 넣고 “한 네티즌은 어쩌고”, “트위터 사용자 아무개는 어쩌고” 하는 식으로 조·중·동이 쓴 출처불명의 저질 기사는 누구나 흔히 봤을 것이다. 주류 언론들은 유입자수를 늘려 광고 수익을 더 늘리려고 저질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누가 진정 “인터넷 신문의 사실 확인” 기능을 떨어뜨리는 ‘사이비 언론’인가?
물론 일부 인터넷 언론사가 사실 확인도 안 된 내용을 사실처럼 보도하거나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선정적 기사를 보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기업들이 ‘사이비 언론’, ‘유사 언론’ 운운하는 진정한 의도는 따로 있다. 바로 인터넷상에서 박근혜 정부와 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것이다.
“정부 비판 많으면 편향적”이라는 억지
지배자들과 보수·우익들이 인터넷에서 자신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억누르려 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얼마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인터넷상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것이 통과되면, 인터넷상의 특정 정보가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는지 아닌지를 제3자나 방심위가 자체 판단해 심의하고 차단·삭제할 수 있다. 방심위의 구성과 전력을 보건대 이는 명백히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조처로 이어질 것이다.
언론중재위가 내놓은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언론중재법에 따른 조처는 언론사가 직접 게재한 기사에 대해서만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개정안대로 하면 개인 사용자들이 언론사 웹사이트에 남긴 댓글이나 개인 블로그·SNS로 퍼 나른 기사도 언론중재위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새누리당은 이미 한나라당 시절부터 포털 사이트가 편향적이라며 자주 시비를 걸었다(이른바 ‘포털 때리기’이다). 올해 9월 3일에는 ‘포털 모바일 뉴스 메인화면 빅데이터 분석 보고서’라는 것을 들이대며 포털 사이트에 정부·여당 비판이 많다고 몽니를 부렸다.
이 보고서는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포털 사이트들이 다룬 월별 주요 이슈가 “1월 세월호, 2월 땅콩회항, 3월 세월호·리퍼트 대사 피습, 4월 세월호·성완종, 5월 메르스, 6월 메르스”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부패와 무능이 계속 폭로되면서 그에 비판적인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에 오르내리는 것이 우파들에게는 눈엣가시였을 게다. 새누리당은 이 보고서를 발표하며 “정부·여당과 야당을 놓고 비교해 봤을 때 정부·여당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야당보다 약 10배가량 많았다”며 “네이버와 다음 둘 다 편향적”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의도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얼마 전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이하 평가위)가 발족했다. 평가위는 네이버·카카오 같은 포털 사이트와 각 언론사 간의 제휴를 관리·감독하는 권한이 있다. 네이버·카카오는 평가위 설립 근거로 어뷰징*, ‘사이비 언론’의 기업 협박 기사, 저널리즘의 질 하락 등을 들었다.
아마도 네이버·카카오는 ‘포털 때리기’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언론사와의 제휴를 관리·감독하는 권한을 외부 평가위로 이양했을 것이다. 그러나 평가위 설립 근거들은 박근혜 정부의 신문법 시행령 개정 취지와 궤를 같이한다.
더구나 이 평가위의 평가 기준을 결정할 운영위 소속 단체 7곳 중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앞서 지적한 신문법 시행령 개악안을 추진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준정부기관이다. 지금까지 언론 보도로 드러난 평가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 출신자들이 포진해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삼성맨’으로 알려진 친기업적 인물을 평가위원으로 추천했다.
2011년 7월 진보 언론인 〈민중의 소리〉가 ‘어뷰징’을 이유로 네이버에서 퇴출됐다. 그러나 정작 어뷰징 문제에서 더 큰 책임이 있는 주류 언론들은 그 어떤 실질적인 조처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민중의 소리〉 등 언론사 세 곳만 내쫓긴 것을 두고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최근에도 주류 언론의 어뷰징 행태가 거듭 드러나는데도 포털 사이트들은 해당 언론사와 제휴를 해지하지 않고 있다. 이는 평가위 설립 근거로 제시된 어뷰징 등이 어떻게 활용될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이런 인터넷 언론 옥죄기 조처들은 내년 4월 총선을 염두에 둔 땅 고르기 작업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계속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등의 전선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더 유리한 정황을 조성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즉, 인터넷상에서 언론·표현의 자유를 옭아매고 정부 비판 목소리를 위축시키려는 박근혜 정부의 ‘유신 스타일’ 이데올로기 투쟁인 것이다.
언론·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박근혜 정부가 지배자들에 대한 비판을 솎아 내려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