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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조사로도 드러나다:
시간제 일자리는 누구도 원치 않는 저질 일자리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2015년 8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는 6백27만 1천 명으로 전년동월대비 19만 4천 명이 증가했다. 특히 시간제 일자리의 증가가 비정규직 증가를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제 일자리는 지난해보다 10.1퍼센트 증가해, 2백 만 명을 훌쩍 넘어 섰다(2백23만 6천 명). 10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시간제 노동자가 전체 임금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1.6퍼센트로 나타났다. 2005년에는 7퍼센트 정도였다.

시간제 일자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크게 늘었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퍼센트’를 달성하겠다며 시간제를 늘려 왔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만 시간제 노동자가 40만 명가량 늘었다. 심지어 최근 공공기관인 서울대병원은 영상의학과의 업무에도 시간제를 도입하려다 반발에 부딪혔다.

정부는 전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촉진하고 동시에 낮은 여성의 고용률을 끌어 올리려 시간제 일자리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 “질 좋은 시간제 일자리” 운운하며 마치 시간제 일자리가 여성을 위한 일자리인 양 포장했다.

그러나 이번 통계청 발표는 이런 정부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보여 준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시간제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70만 5천 원이다. 시간제 노동자의 70퍼센트는 여성인데, 여성의 평균임금은 더 낮다(66만 6천 원). 평균 근속시간은 1년 7개월로 매우 짧다.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20시간 정도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노동시간 평균은 이보다 훨씬 길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시간제 노동자들은 실제 계약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한다. 가령, 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 전담사로 일하고 있는 강선자 씨는 “일을 준비하려면 더 일찍 나오든지 더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해야 한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는 시간에는 초과수당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시간제 노동자들은 짧은 시간 동안 강도 높은 노동을 하도록 내몰린다.

실업의 고통과 불안에 짓눌리는 청년들이 단기 저질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취업을 한 청년 4명 중 1명은 시간제이고, 15~24세 청년 중 저임금을 받는 비율은 50.5퍼센트에 이른다. 국가가 책임지고 양질의 공공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조승진

홈플러스의 ‘0.5시간 계약제’는 악명이 높았다. 사측은 실제 일한 시간이 8시간이 넘는데도 7시간 30분 계약(7.5)을 강요했다. 6.5시간, 5.5시간 계약도 있었다. 홈플러스노조는 투쟁을 통해 ‘0.5시간 계약제’를 폐지시켰다. 그런데 사측은 ‘0.5’만 떼어내고 신규채용자에게는 여전히 5시간, 6시간, 7시간짜리 일자리를 강요하고 있다.

시간제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10퍼센트대로, 비정규직 평균과 비교해도 절반 이상 낮다. 퇴직금, 상여금, 시간외 수당, 유급휴가를 받는 비율도 턱없이 낮다. 받더라도 일한 시간에 비례해 토막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정부나 기업주들은 이조차 거추장스럽게 여겨 초단기 계약, 쪼개기 계약 등을 강요해 왔다. 주 15시간 미만으로 계약한 노동자는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초중등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초단시간 계약 문제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 주당 15시간을 채우지 못하게 하려고 하루 출근시간을 10분 늦추거나 퇴근시간을 10분 당기는 방법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14시간 50분으로 맞추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 현장의 초단시간 노동자 수는 박근혜 정부 들어 폭발적으로 늘었다.

최근 일부에서는 위탁 채용이 늘면서 시간제 노동자들의 처지가 더 열악해졌다.

시간제 초등돌봄전담사 강선자 씨는 8시간 전일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기가 어렵고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서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여성이] 아이를 키우고 사회로 나왔을 때 갈 수 있는 자리가 비정규직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시간제 일자리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밖에 없는데 선택의 여지가 어디 있겠나.”

시간제 일자리는 강요된 선택이다. 이번 통계청 조사는 정부가 양산한 시간제 일자리가 누구도 원치 않는 저질 일자리일 뿐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시간제 일자리 문제는 일부 비정규직 부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칼끝은 정규직을 겨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간제 일자리가 대거 도입된 공무원·교사 부문을 보면, 시간제 일자리가 정규직 일자리를 쪼개는 효과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제와 파견제 일자리가 대폭 확대된 독일의 경험에서 보듯, 두터운 저임금층의 형성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하향을 압박하는 효과를 낸다는 점도 봐야 한다. 민주노총이 저임금 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 모두의 이익을 위해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저지하는 데 힘써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