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의 임금피크제 반대 투쟁은:
노동자 권리와 환자 안전을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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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서울대병원은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해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고 온라인 직원투표를 강행했다. 그러나 전체 6천45명의 직원 중 3천1백77명(52.5퍼센트)만이 투표에 참여했고, 그 중 1천7백28명이 찬성했다. 28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숫자다.
근로기준법대로 하면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되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동자의 집단 동의를 얻어야 한다. 따라서 서울대병원에서는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으므로 도입될 수 없다. 그런데도 서울대병원은 10월 29일 이사회를 열어 임금피크제 도입을 의결했다.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서울대병원 설치법대로라면 이사장은 서울대총장이 맡고, 병원장과 기재부·교육부·복지부 차관이 당연직으로 이사에 포함된다. 이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차관 3명에 병원장까지 고위 관료들이 백주대낮에 불법행위를 자행한 것이다. 만일 경찰이 노동자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했다면, 이사회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결의하려는 순간 “여러분은 불법행위를 하고 계십니다” 하고 고지한 후 곧바로 다 잡아갔어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이 병원장을 고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울대병원만이 아니다. 경북대병원에서도 직원들의 개별동의를 받았으나 과반수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사회를 열어 임금피크제를 가결시켰다. 전북대병원, 경상대병원에서는 아예 동의 절차도 없이 서면 이사회를 열어 임금피크제 도입을 가결시켰다. 지금 전국의 국립대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근로기준법
임금피크제는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개악의 내용 중 하나다. 정부는 노동개악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노동개혁”은 노동자들의 해고를 쉽게 하는 일반해고제를 도입하고,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하여 성과급제도를 도입하려 한다. 이 전초전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임금피크제 도입이다.
국립대병원의 임금피크제 도입은 박근혜 정부가 노동관련법을 개악하기 전에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이를 미리 현실화하려는 것이다. 법 개정 작업이 되기도 전에 불법적인 ‘행정 독재’를 통해 노동개악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이다. 그것도 근로기준법을 어기면서까지 말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립대병원에 도입하려는 노동 개악은 환자 안전에도 매우 큰 악영향을 미친다. 다른 나라들에 견줘 한국의 병원들은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예를 들어 간호 인력은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일본은 간호사 1명 당 환자 수가 7명이고 미국도 간호사 1명 당 환자 수가 5명이다. 그런데 한국은 간호사 1명당 환자 수가 15~20명이다. 지금도 한국의 환자들은 안전하지 않다. 메르스 사태 때 1백86명의 환자들 중 35퍼센트가 환자 가족들이었다는 부끄러운 숫자는 병원의 인력 부족 탓에 가족들이 간병을 할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간호사 1명이 환자 1명을 더 보게 되면 사망률이 1천 명 당 15명 늘어난다는 보고도 있다. 이미 한국에서는 알게 모르게, 살릴 수도 있는 환자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더 많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더 쉬운 해고, 비정규직 도입, 임금피크제, 성과급제를 도입한다고? 얼마나 환자들을 더 죽이겠다는 것인가.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악은 노동 현장에서 고용 불안정과 인력 감축을 부를 것이다. 공공서비스 부문의 노동 개악은 이용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따라서 현재 세종시에서 농성을 벌이고, 병원 로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투쟁일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안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투쟁이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외친 구호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였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이 근로기준법을 정면으로 어기면서 국립대병원에 임금피크제와 노동 개악을 강요하고 있다. 45년이 지난 지금 병원 노동자들은 전태일의 그 구호를 다시 외치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