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에 직면한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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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9일 경제부총리 최경환은 “세계경제의 부진 속에 조선·철강·해운 등 글로벌 과
박근혜 정부가 구조조정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자본주의가 처한 상황이 매우 위태롭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수출 주도 경제 성장을 해 왔다. 그런데 최근 주력업종들의 수출이 급격히 줄면서, ‘수출 절벽’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수출액은 전년 대비 15.8퍼센트나 줄었다. 이는 2009년 이래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세계경제가 2008년의 위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중국 경제마저 성장이 둔화하면서 이런 수출 부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1천1백조 원을 넘기고 있는 상황에서 내수가 수출을 대체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삭감하고, 임금피크제를 강요하고, 저성과자들을 퇴출시키는 등 노동 개악을 통해 내수를 오히려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위기가 가장 심각한 부문의 하나가 조선이다. 조선업 빅3(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의 올해 적자 규모는 10조 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것조차 해양플랜트의 잠재 부실을 다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이 외에도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SPP조선 등 중소형 조선사들도 위탁경영이나 법정관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철강산업도 마찬가지다. 2014년 기준 세계 철강 생산량은 16억 6천5백만 톤인데, 그중 5억 3천5백만 톤이 공급 과잉 상태다. 중국의 경기 부진으로 철강 공급 과잉이 심각해지자 중국 철강업체들은 전 세계에 철강을 덤핑 수출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위기에서 회복하지 못해 무역량이 줄어들자 해운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그동안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근근이 버텨 왔지만, 이제는 명백히 한계에 이른 듯하다.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을 포기할 것이라는 예측이나,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설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석유화학과 건설 부문들에도 과잉 생산으로 인한 수익성 하락에 직면한 좀비기업들이 존재한다.
좀비기업
한국은행 조사를 보면, 외부감사 대상 비금융기업 2만 5천4백52곳 중 한계기업(소위 좀비기업)이 3천2백95곳(15.2퍼센트)으로, 2009년의 2.4퍼센트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한계기업의 74퍼센트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한 번 이상 한계기업 명단에 올랐던 기업들이다. 한계기업의 ‘한계’가 만성적인 것이다.
좀비기업이 증가하는 것은 제조업의 성장 정체와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 2백대 기업들의 매출액 증가는 0.52퍼센트에 그쳐, 선진국(4.16퍼센트)이나 OECD 회원국(3.69퍼센트) 또는 신흥국(5.06퍼센트) 모두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성장이 정체하면서 이윤도 줄어들고 있다.
국내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2009년에 6퍼센트를 넘어섰지만, 2014년에는 4.23퍼센트까지 줄어들었다. 세계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중국 경제가 뚜렷하게 둔화해 가는 상황인데다 한국의 주력 업종이 중국 기업들의 추격으로 경쟁 격화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경제연구소들이 올해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2퍼센트대로 잡고 있다. 전형적인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처한 절박한 상황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노동 개악을 추진하고 기업들이 임금과 복지를 삭감하고자 애쓰고 있다.
최근 삼성그룹은 화학부문을 한화와 롯데에 넘기는 빅딜을 추진했다. 또,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을 인수했다. 박근혜 정부는 민간기업들의 빅딜과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한편, 국책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이 주채권자로 있는 중후장대형 기업들은 직접 구조조정을 하고자 한다.
물론 지배자들 사이의 이견과 암투 때문에 구조조정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위기 산업의 기업이나 좀비기업들이 국토교통부·산업자원부·해양수산부 등에 로비를 하면서,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청와대·기획재정부한테 이견을 내놓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공격을 수반할 것이다.
1998년 경제 위기 때도 김대중 정부는 국가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오늘날 삼성그룹의 빅딜 과정에 벌어진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과 이에 맞선 저항도 이를 잘 보여 준다. 지난 3월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는 한화로 넘어가는 삼성테크윈, 삼성토탈, 삼성종합화학, 삼성탈레스 소속의 노동자 3천여 명이 일방적인 매각을 반대하고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3대 세습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한 위기와 기업들의 경쟁 때문에 빚어진 수익성 악화의 책임을 노동자들이 져야 할 이유는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산업 구조조정은 고용 구조조정을 반드시 수반한다)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