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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싶다”

지난 4월 20일은 우리 나라 450만 장애인의 날이었다. 정부는 그 날 올림픽 체육관에서 장애인들을 불러모아 요란한 잔치를 벌였다. 반면 장애인실업자연대·오이도역장애인수직리프트추락참사공동대책위원회, 노들장애인고용촉진공단 노동조합,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전국청년학생연합(장청련) 등의 장애인 단체에서 온 3백여 명은 종묘공원에서 ‘장애인 고용 촉진 범국민 걷기 대회’를 열었다.

집회에 참여한 장애인 한 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혜나 동정이 아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곤 1년에 딱 한 번 장애인의 날을 확인하는 행사만 치르고 있을 뿐이다. 장애인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노동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그래서 여기 나온 것이다.” 장애인들은 ‘의무고용 2%를 준수하라’, ‘장애인 노동권 쟁취’, ‘장애인도 일하고 싶다’라고 쓴 팻말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200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장애인 중 실업자는 18만 명으로 실업률이 28.4%이다. 그러나 피부로 느끼는 실업률은 60~70%를 상회하고 있다. 정부의 실업률 통계는 실망 실업자와 휴직자 등이 제외된 데다가 장애인 수를 턱없이 낮춰잡고 있다. 정부는 신고한 사람만 장애인으로 쳐 140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생활보호대상자도 비장애인가구에 비해 5배 이상이나 높다.

직원의 2%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하도록 한 장애인의무고용제도가 있으나 빛좋은 개살구다. 이윤에 눈먼 자본가들은 장애인을 고용하느니 벌금을 내는 쪽을 택하고 있다. 기업체 가운데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을 지킨 곳은 15.7%에 지나지 않았고, 특히 30대 그룹은 0.53%로 매우 낮았다.

심지어 정부조차 장애인의무고용을 지키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말 정부 부처와 지방 자치 단체 84곳에 고용된 장애인은 전체 공무원의 1.48%, 48개 정부투자·출연기관에 고용된 장애인은 전체의 1.93%에 그쳤다.

장애인 노동권의 기초는 이동권이다. 장애인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곳에 특별한 도움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기란 매우 힘들다. 버스나 택시는 장애인의 승차를 거부하기 일쑤다. 지하철은 지나치게 걷는 구간이 많아 비장애인조차 타고 다니기 힘들 정도다. 편의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얼마 안 되는 편의 시설조차 위험하기 짝이 없다. 지난 1월 ‘오이도역 장애인 수직리프트 추락참사’는 이 점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오이도 역 사건으로 장애인 단체들은 올해 장애인의 날에 ‘자유로운 이동권 보장’을 핵심 요구로 내걸었다. ‘장애인 고용 촉진 범국민 대회’가 열리기 전, 약 150여 명의 장애인들이 편의시설 확충을 촉구하는 ‘지하철 함께 타기 운동’을 벌였다. 그들은 휠체어를 타고 도시철도공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인 뒤 장한평역에서 종묘공원까지 지하철로 이동했다.

장한평역은 장애인을 위한 어떠한 이동 시설도 없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서는 4~5명의 공익근무요원이 달라붙어야 했다. 집회에 참여한 비장애인들은 장한평역의 계단 곳곳에 빨간 스프레이로 ‘승강기를 설치하라’,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는 글씨를 썼다.

지하철 안에서 한 분은 승객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경기도 보고 싶고 영화 관람도 자유롭게 하며 이동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계단과 턱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계단 대신에 설치된 리프트가 잦은 고장과 사고가 나 장애인들은 목숨을 걸고 지하철을 이용해야 합니다. 1999년에 혜화역에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은 떨어져 중상을 입었고, 천호역에서는 휠체어리프트의 가이드레일이 떨어져 추락사고가 날 뻔 했습니다. 전시행정일 뿐인 리프트를 장애인의 죽음과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450만 장애인의 70.5%는 한 달에 5번 이상은 외출을 못합니다. 비장애인이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을 타는 곳까지 내려가는 시간은 5분도 안 걸립니다. 반면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40분입니다. 장애인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종로3가 지하철역의 고정 리프트를 녹색 테이프로 꽁꽁 덮어씌워 버렸다. 리프트 대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는 의미였다.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인 박경석 씨는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들은 모든 곳에 고정 리프트 대신 안전하고 편리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도시철도공사에 몇 번이나 요구했다. 그러나 도시철도공사는 몇 년 전부터 ‘노력중이다’라고만 얘기했다. 그런데도 도시철도공사는 ‘원래 2005년까지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기로 돼 있는데 1년 앞당겨 설치할 계획’이라며 굉장히 선심쓰는 양 말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엘리베이터보다 리프트 설치를 더 선호한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고 설치하기가 간단하기 때문이다. 도시철도공사의 경우 전체 148개 역사 중 83개 역사에 리프트가 설치돼 있고 64개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지난 오이도역 참사는 그 동안 정부가 장애인들의 목숨을 담보로 편의시설에 투자하지 않은 결과였다.

장애인들은 장애인편의증진법을 개정해 안전규칙도 강화하길 원한다. “엘리베이터는 법에 따라 한 달에 한 번 관리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수직형 리프트는 장애인편의증진법상 엘리베이터에 포함돼 있지 않아 안전기준조차 없다. 2000년 3월에 안전기준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는데 오이도역 사고가 난 후에야 허겁지겁 만들려 하고 있다. 우리는 수직형 리프트를 엘리베이터에 포함시키는 장애인편의증진법을 원한다.”

이동권과 노동권은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고 살아갈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정부는 1년에 한 번 생색내기식 잔치를 열게 아니라 장애인들의 절박한 요구를 당장 수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