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초하는 한국형 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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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와 그 처방을 둘러싼 지배계급 내 분열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정부 주도의 뉴딜 정책은 실패하게 돼 있다.”(11월 8일치 사설) “‘한국형 뉴딜’, 옳은 처방 아니다.”(11월 30일치 시론) 하고 반대했다. 서울대 총장 정운찬도 “지금은 경기부양 아닌 구조조정할 때”라고 거들고 나섰다.
IMF는 “한국형 뉴딜, 지나친 정부 보증 안 돼” 하며 정부 개입이 더 축소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국회 예결위와 법사위에서 뉴딜 정책 추진을 위해 필요한 국민연금법과 기금관리법 개정안, 민간투자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물리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지난 11월 경제부총리 이헌재가 “한국형 뉴딜” 정책을 발표할 당시 LA에 가 있던 노무현은 “경제위기는 대기업 사람들 말이며 한국은 계속 호황을 누리고 있다”며 반 년 전과 마찬가지로 위기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노무현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위기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 듯하다.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라는 이헌재가 내놓은 “한국형 뉴딜” 정책은 사실상 정부가 나서서 경기 활성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의 표현이다.
정부는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금인 연기금을 동원해 ‘선순환’을 만들고 동시에 각종 규제를 완화해 후속으로 민간투자를 유도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어찌 됐든 정부가 시장 흐름에 개입하겠다고 나선 것은 신자유주의와 모순된 것이다. 그것은 노무현 정부 스스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차이를 드러내는 꼴이 돼 버렸고, 이는 정부와 열린우리당 내의 이견이 분출할 계기를 만들었다.
최근 건설과 부동산 경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양도세 중과세 시행 시기를 둘러싸고 이헌재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 이정우가 “나도 힘있다”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은 이런 견해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좀더 일관되게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한나라당은 한국형 뉴딜 안에 담긴 수많은 규제완화와 감세 정책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케인스적 처방이라 할 수 있는 한국형 뉴딜에 결사 반대하고 오히려 감세와 긴축재정을 요구하고 있다.
재정지출을 일시적으로만, 그것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연기금을 동원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보건복지부 장관 김근태가 왜 자기를 제물로 삼냐며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정부의 재정투자 계획이 여기저기서 반대에 부딪히자 이헌재는 연기금이 안 된다면 “뉴딜 펀드” 등 “민간 방식을 통해 시장 친화적인 방식”으로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며 적자재정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한편, 대기업들의 입장에서 보면 규제완화와 감세 정책은 자신들의 요구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반면, 정부의 뉴딜 계획에 당장 “‘돈이 될 만한 사업’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10조 원 규모의 건설업이 만들어 낼 반짝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인 데다 내수부진과 유가상승, 환율하락, 중국의 경기둔화, 미국의 금리인상 등으로 인한 수출부진 등 훨씬 광범하고 전반적인 문제들이 일 년 만에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지금 정부의 단기적 재정 지출이 환율 하락이나 인플레, 그리고 해외자본의 투자 기피 등 부메랑이 돼 위기를 한층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경기부양책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려는 노무현 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조선일보〉·전경련 등은 자신들의 공통분모에서만 타협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결국 “한국형 뉴딜”은 시작도 하기 전에 반대에 부딪혀 좌초하거나 추진되더라도 규제완화와 감세 등 신자유주의적 효과만 남기고 끝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김근태의 돌출적인 반란 사건에서 인상적으로 볼 수 있듯이 뉴딜을 위한 연기금 투자 계획은 가뜩이나 정부의 연금 정책에 불신이 높아진 대중의 불만을 자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