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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왜 사회는 여성을 ‘여성성’에 욱여넣으려 할까?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김명남 옮김, 창비, 96쪽, 9,800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유명한 여성 소설가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인터넷 강의(TED)에서 한 연설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그래서 1백 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분량에 쉽고 대중적이다.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공감 가는 구절도 많을 것이다. 작고 얇은 이 책은 최근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팔리고 있다.

이 책의 인기는 오늘날 페미니즘의 부상을 보여 주는 한 사례다. 최근 한 온라인 서점은 여성학 분야 책 판매가 2010년도보다 2015년에 3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통계를 내기도 했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인기를 얻는 배경엔 기본적으로 여성들이 처한 모순된 처지가 존재한다. 자본주의 국가와 다국적 기업들의 모임인 다보스 포럼에서도 ‘페미니즘’을 운운하는 언사들이 공공연하게 오가고, 국가나 기업 세계에서 여성의 법적·제도적 지위는 향상됐지만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게 여성 차별적이다.

저자는 자신과 지인들이 겪었던 여러 경험을 통해 현실의 여성 차별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여성 차별은 고릿적 시절 얘기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나, 여성의 권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권리가 중요하다며 결론적으론 여성 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이런 주장은 오늘날 존재하는 엄연한 여성 차별 현실을 가리는 것이다. 저자가 예를 들듯이, 나이지리아에선 고급 호텔에 들어갈 때, 남성은 자연스럽게 들어가도 여성들은 제재를 받는다. 대체로 혼자 호텔로 들어가는 여성을 성매매 여성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클럽이나 바에도 여전히 여성 혼자서는 들어가지 못한다.(참고로 나이지리아는 2015년 성 격차 보고서에서 125위에 자리매김 됐다. 한국은 겨우 열 계단 위인 115위였다.)

저자는 여성 차별을 사회가 요구하는 성역할(젠더)과 연결해서 본다. 이 사회는 여자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자기 의사를 강하게 펴는 것이 옳지 않다고 가르치고, 남자의 마음을 끌거나 남자를 기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여성은 남성을 돕는(성적·감정적으로) 부차적 인간으로 자리매김하는 사회 분위기가 너무나 만연하다. 이 때문에 여성과 남성에 대한 사회의 이중 잣대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 사회는 강간을 비난하지만 동시에 강간을 당한 여성을 비난하고, 젊은 여성의 처녀성은 칭찬하지만, 젊은 남성의 동정(童貞)을 칭찬하진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동시에 남자가 돈을 더 많이 내야 하고, 남자는 두려움, 나약함 따위를 몰라야 한다는 식의 ‘남성성’이 부추겨지는 것도 비판한다. 이런 규범은 남성에게 외양적 강인함을 강요하지만 반대로 그들의 내면을 매우 취약하게 만든다. 저자는 우리 모두를 옥죄는 잘못된 ‘남성성’, ‘여성성’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옳게 주장한다.

여성 차별과 계급

저자는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런 식의 ‘젠더(성별) 규범’이 요구되고 여성 차별이 벌어지는지 얘기하고 있진 않다. 짧은 강연을 정리한 책이라 그런 설명을 기대하는 건 무리인 듯 싶다.

다만 저자가 지나가면서 “젠더와 계급은 다른 문제입니다. 가난한 남자들은 부자의 특권은 누리지 못할지라도 남자의 특권은 여전히 누립니다” 하고 한 줄 정도 언급하는 부분은 여성 차별의 원인을 남성의 ‘특권’에서 찾는 특권이론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이런 관점은 저자가 2015년 미국 웰즐리 여대 졸업식 축사에서 한 말에서 더 분명히 드러나는 듯하다. “그리고 저는 남자들이 선천적으로 못됐거나 악하진 않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남자들은 그저 특권이 있을 뿐입니다 … 저는 교육받은 가족에서 자랐다는 계급적 특권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이따금 저도 눈이 멀었습니다.”

그러나 여성 차별과 계급은 저자가 오해하고 있는 것과 달리 “다른 문제”가 아니다. 이 둘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많은 인류학자들이 뒷받침하듯 여성 차별 자체가 계급사회와 함께 등장했다. 또한 차별의 무게는 계급 별로 크게 다르고, 최신 계급사회인 자본주의 체제는 여성 차별을 조장하고 이로써 이득을 본다.

물론 모든 계급의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저자의 이웃이었던 ‘친웨 아줌마’도 개인 병원을 소유한 의사에 부유하고 교육받은 여성이었지만, 남편을 완벽하게 ‘내조’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종속적 여성상을 충실히 해내는 아내로만 칭송받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여성 차별에는 자본주의의 필요라는 물질적 토대가 존재한다. 자본주의는 착취를 위해 매일매일 기력이 회복된 노동자들과 새 세대 노동자를 공급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가와 기업주들은 노동력 재생산을 개별화된 가족 내에서 여성의 헌신에 의존하는 방식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필요 때문에 자본주의는 체계적으로 여성에 대한 천대를 조장했다. 여성은 본능적으로 가정적이고, 순종적이라는 규범들이 조장됐다. 반면 남성은 가장의 부담을 짊어져야 하고, 장시간 혹사에도 견딜 수 있는 무감각함과 책임감 등이 본성처럼 여겨진다. 여성은 바깥 세계에서 고통받은 남성을 달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존재이자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존재로 대상화된다. 자본주의가 여성 차별을 체계적으로 조장했다는 것은 이런 관념이 가장 내밀하고 친밀한 관계에까지 샅샅이 스며들어 작동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저자도 지적하듯 이런 규범은 평범한 여성과 남성을 고통스럽게 한다. 저자가 노동계급 여성들을 옥죄는 실질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고 있진 않지만, 오늘날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더 많이 진출하면서 이런 성역할에 대한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갈등은 더 커지고 있다. ‘워킹맘’, ‘경단녀’(결혼과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둬 경력이 단절된 여성) 처지 여성들의 절절한 얘기들은 이런 모순을 보여 준다.

오늘날 전 세계 17억 5천만 명가량의 여성이 노동자로 살고 있다. 한국에서도 여성이 ‘부엌데기’로만 여겨지던 과거와 달리, 노동자의 거의 절반 가까운 수(45퍼센트)가 여성이다. 그러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열악한 복지 때문에 여전히 여성은 가정에 묶여 있어야 하고, 가정에 매여 있는 족쇄 때문에 노동시장에서도 더 질 낮고 형편 없는 조건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은 노동계급 남성의 ‘특권’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남성들, 노동계급 남성들이 여성 차별로 누리는 이른바 ‘특권’이란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그들이 여성 차별 유지에 객관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할 만한 물질적 근거가 되기가 어렵다. 대개 노동계급 남성은 가정 부양을 위해 여성보다 일터에서 더 장시간 일하고, 더 먼 거리로 출근하고, 더 일찍 죽는다.

오히려 이런 엄연한 계급 분단 때문에 오늘날 여성 일부는 대다수 남성보다 더 특권적이고 우월한 위치에 있다. 여성 기업주들은 남성 기업주들과 마찬가지로 가정 내 여성의 무보수 노동으로 엄청난 비용을 절감하고 더 많은 이윤을 취한다. 지배계급 여성들은 노동계급 여성들이 겪는 일과 가정의 ‘이중의 굴레’를 해결할 선택지가 훨씬 많고, 노동계급 여성을 고용함으로써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여성 차별을 체계적으로 조장하면서 남성들이 여성 차별로 득을 얻는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남성이 ‘특권’을 누린다는 설명은 여성 차별의 원인을 흐리고 자칫 피억압자 일부를 억압자로 잘못 규정하는 오류를 낳기 쉽다. 이처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평등을 얘기할 때 계급을 성별에서 떼서 어느 한 구석에 치워두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여성 차별에 대해 분노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의 여성 차별적 현실 비판에 큰 공감을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여성 차별에 대해 고민하게 된 독자라면 현실에 대한 비판에서 더 나아가, 여성 차별을 조장하고 재생산하는 체제 자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분석·전략으로 고민을 발전시키기를 권유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를 옥죄는 여성 차별에 맞서 더 효과적으로 투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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