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둘러싼 몇 가지 논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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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55년만에 처음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대다수 사람들이 환영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4월 중순의 한 여론조사 결과는 사람들이 남북 정상회담을 지지한 이유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최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할 의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물음에, 군비축소를 꼽은 사람이 32퍼센트, 평화협정 체결은 23퍼센트, 이산가족 면담 등 자유왕래를 꼽은 사람이 17퍼센트였다. 이것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남북 대결과 긴장 고조보다는 평화와 공존을 바란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두고
반면, 우익 정치인 이회창은 사람들의 이런 의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민국의 정체성 양보는 있을 수 없다.”며, 주한미군과 국가보안법은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익 언론인
이에 대해
기만적인 이중 잣대
앞의 여론조사 결과는 그 동안 남한 역대 정권들이 분단 상황을 이용해 대중의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억압해 왔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이 크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러나, 김대중은 남북 정상회담이 임박할수록 “만남 그 자체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며 정상회담의 기대치를 낮추려 애쓰고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정상회담이 보잘것없는 것으로 끝날 공산이 큰 터에 사람들이 보낼 실망과 비난의 눈길이 두려운 것이다. 이것은 김대중이 35년만의 정권교체로 사람들의 민주개혁에 대한 열망이 대단히 컸던 집권 초에도 써먹은 수법이다.
그러나, 김대중이 아무리 기대치를 낮추려 애써도 피할 수 없는 모순이 존재한다. 국가보안법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둔 채 남한의 대통령이 북한 수도인 평양에 가는 것은 반국가단체인 적의 수괴와 “통신·회합”하기 위하여 적지로 “잠입·탈출”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 자신은 대통령이니까 법을 어겨도 괜찮다든지 통치권의 사항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법치국가에서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게다가 김대중이 정상회담을 20일 앞두고 이한동을 새 총리에 지명한 것은 그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의지도 능력도 없음을 반증한다. 이한동은 지난 1997년 대선 직전 김대중을 ‘사상 검증’하겠다고 나섰던 광적인 우익 잡지 《한국논단》이 ‘한국의 진정한 보수’로 치켜세운 인물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대중은 남북 정상회담을 보름 앞두고 열린 한총련 출범식을 올해도 어김없이 원천봉쇄하고, 한총련 대의원들에 대한 구속 수사 방침을 밝혔다. 그 이유는 한총련이 친북단체라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한총련이 친북단체라 하더라도, 자신이 북한의 ‘수괴’를 만나 얼싸 안고 칭찬을 늘어놓는 건 괜찮고 일부 학생들이 잘못된 환상에서 비롯한 북한 정권에 대한 호감을 나타내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은 기만적인 이중 잣대다.
위선적이기는 북한 정권도 마찬가지다. 북한 정권은 그 동안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고 ‘대화’와 ‘통일’을 주장하는 것은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1994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합의함으로써, 자신들이 비난한 남한 정부의 “위선”에 맞장구쳤다.
이번 합의 때 북한 정권이 남한 정권으로부터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이면 약속을 받았을 거라는 좌파 일각의 해명은 군색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그들은 북한 정권이 이번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남한 내 좌파 탄압의 첨병 노릇을 해 온 국가정보원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국가보안법 체제를 무너뜨릴 돌파구를 내려 하고 있다.”는 미주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씨의 주장도 군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논리대로라면, 북한 정권이 그 동안 국가보안법 폐지를 선행조건으로 내세움으로써 되레 “국가보안법 체제를 무너뜨릴 돌파구”인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자기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또한, 정상회담은 아니더라도 그 동안 역대 남한 정권과 북한 정권 사이의 밀사 교환, 각종 회담 등이 있어 왔지만 국가보안법은 조금도 약화되지 않았다. 1991∼92년 남북간 화해 분위기 속에서 평화 공존에 관한 ‘남북 기본합의서’까지 채택하는 상황에서도 국가보안법은 변함없이 칼춤을 췄다.
이런 군색한 주장보다는 4월 26일호
‘햇볕정책’의 성과?
남북한 정권들이 그 동안 남북 관계 ― 긴장 고조든 화해 분위기 조성이든 간에 ― 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왔음은 명약관화하다
결정적으로 지난해 서해교전은 ‘햇볕정책’의 모순과 한계를 밝히 드러냈다. 사상자를 30여 명이나 낸 서해교전으로 말미암아 김대중의 대북 정책도 전임자들의 그것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음이 입증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도 그렇고 향후에도 남북관계는 “‘긴장과 불안 가운데 교류와 협력 확대’라는 부조화적 양면성”이 지속될 것이다. 앞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끝나고 남북관계가 상당한 속도로 진전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긴장과 모순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김대중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순수한 열망 때문에 그 동안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 집착해 온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김대중은 총선 패배가 불 보듯 뻔한 터에, 임기 3년을 남겨두고 레임덕 현상이 조기에 나타날 것을 우려했다. 돌아선 민심을 조금이라도 되돌리고,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 카드가 단지 총선용 대책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장기적인 정권 재창출 전략의 일환이다. 김대중은 남북 대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자신의 후계자가 정권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논리로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둘째, 남한 경제의 현실을 고려할 때 김대중 정부가 대북 봉쇄정책을 선택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남북간의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가 심화되면 투자 환경의 악화를 가져온다. 여전히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남한의 현실에서 한반도 긴장 고조는 국가신인도를 하락시키고, 외자 유치를 어렵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셋째, 지난해 옷 로비·파업 유도 파문 정국 이래로 보수적 지배자들과 재벌들은 김대중에게 등을 돌리고 한나라당 쪽으로 급속히 돌아섰다. 김대중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재벌들이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시장에 진출해 높은 수익성을 올릴 수 있게 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다.
‘북한 특수’?
그러나, 남북 경제협력의 효과, 이른바 ‘북한 특수’에 관한 언론 매체들의 보도는 상당히 과장돼 있다. 우선, 대북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북한 정권이 투자의 제도적 보장 장치를 마련해 줘야 한다. 즉, 북한 지역에서 자본의 안전하고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기 위한 법·제도 개혁이 선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처럼 정치와 경제가 합체돼 있는 나라에서는 사소한 경제 규제 법률 하나 고치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하물며 북한보다 통합 정도가 덜한 남한에서 김대중이 집권한 뒤 외국 자본의 투자 촉진을 위해 몇 가지 국내 규제 법률들을 뜯어고치는 데도 그토록 어려움을 겪고, 정부 부처 안팎에서 온갖 갈등과 암투가 벌어졌던 것을 떠올려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언론들은 북한의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두고 “지금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관측을 유행처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북한 같은 관료적 통제경제 체제에서는 정치 개혁 없이는 경제 개혁도 이루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정치 분야에서의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김정일 정권은 관료적 통제경제의 근본적 변화 없이 제한된 개발지구를 만들어, 한때 적으로 간주하던 한국과 미국의 기업주들과 세계은행 등 ‘제국주의’ 기관 금융전문가들을 끌어들여 도움을 얻겠다는 구상인 듯하다. 이를 두고 한 대북 사업 컨설턴트는, “시장 전체의 개방이 아닌 19세기식 조계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시설 미비에 따른 투자 재원 ― 약 2백억 달러 ― 마련도 쉽지 않은 문제다. 청와대 경제수석 이기호가 얼마 전 밝힌 바에 따르면, 남한 정부가 스스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은 8억 달러 정도이다. 북한 정권은 세계은행·국제부흥개발은행·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 차관을 얻는 방법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시켜 줘야 한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가 된 뒤인 5월 1일 발표한 올해의 ‘테러 지원국 보고서’에서 여전히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재지목했다. 또한, 미국은 지난해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한다고 약속하고도 아직까지 실질적인 해제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배상금
따라서 남북경협으로 한국 경제가 상당한 활로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희망 사항에 가까워 보인다. 아마도 섬유, 신발, 가방 등 가격 경쟁력을 상실해 해외로 진출해 있는 일부 산업들과 건설업 정도만 대북 진출을 통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총선 후의 ‘북한 특수’를 자신하던 김대중이 회담이 임박할수록 발언 수위를 낮춘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남북경협 확대는 “북한 민중을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시킬 것”이라며 남북경협에 반대해야 한다는 좌파 일각의 주장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즉, 북한 노동자들이 박정희 시대의 남한 노동자들처럼 저임금-장시간의 초착취 노동을 강요당할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북한 노동자들도 남한 노동자들과 꼭 마찬가지로 이제껏 북한 정권에 의해 초착취·초억압 당해왔음을 보지 못하는 혼란이 내재해 있는 듯하다.
물론 “남북경협의 최대 수혜자는 김정일 정권과 남한 독점자본들”이라는 지적은 옳다. 남북 정상회담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 민중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는 1997년 7월부터 1998년 9월까지 평안남도·강원도·황해도·함경남도 등 북한의 4개 지역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돕기 위해 의료 및 영양공급 봉사활동을 펼친 ‘국경 없는 의사회’가 북한 정권의 관료주의 장벽에 부닥쳐 좌절감만 안은 채 북한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데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대북 투자 확대는 제한적이나마 1990년대 내내 경제 위기로 말미암아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선언적으로 남북 경제협력 반대를 주장하기보다는, 인도주의를 가장한 남한 재벌들과 북한의 노동력을 싼 값에 제공하는 대가로 남한 재벌들로부터 돈을 받아 군비 확충에만 쓰는 북한 정권의 위선을 폭로하고, 민주노총의 지적처럼 “남북교류협력 과정에서 남북 노동자들의 생활수준과 근로조건의 저하를 방지하고 그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게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자주적 합의”?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이 미국의 도움 없이 남북 정권 사이의 “자주적 합의”에 의해 성사된 것이라 의미가 자못 크다고 치켜세운다.
그러나, 남북 정권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이번 정상회담 합의 과정에 미국이 깊이 개입한 것 같다. 한국의 한 언론은 한·미 양국 정부 관계자들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 발표에 앞서 사전에 협의했다고 지적했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 사실이 발표되자마자 주한 미대사관은 “미국은 남북대화 재개를 촉구해 왔고 이번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도 대북 포용정책의 중대한 성과”라고 발표했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두고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대북 포용정책의 중대한 성과”라고 공언한 것은 미국이 이번 정상회담 합의 과정에 깊이 개입했음을 방증한다. 또, 5월 19일 동국대에서 열린 토론회 때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재미 통일운동가 한호석 씨는 “미국이 남북한 당국자들을 직접 만나 남북 정상회담을 설득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북한 서해안의 유전 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의 석유 재벌 부시를 견제하기 위해 클린턴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서둘렀다는 관측도 있다.
5월 23일 남북 정상회담에 관한 토론회 때 홍근수 목사는 “자주적 합의”를 운운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며, “남북 정상회담은 어디까지나 ‘페리 프로세스’의 일환일 뿐”이라는 정치적 분석을 내놓았다. 다시 말해, 남북 정상회담은 근본적으로 미국 대북 정책의 규정력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반도 위기설’이 나돌던 1998년 말 대북 정책 조정관에 임명된 미국의 전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는 1999년 9월 이른바 ‘포괄협상 전략
‘페리 보고서’는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서 더 나아가, 남북대화는 ‘이산가족 상봉’,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 등에 국한돼야 한다고 사실상 남북대화의 의제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남북협상이 어떠한 경우에도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유지 전략을 건드리는 수준으로 나아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대북 협상력
“남북 화해협력은 단기적으로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구조적 제약이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강정구 교수의 전망이 ‘장밋빛 희망’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강 교수의 희망과는 달리, 김대중 정부도 ‘페리 프로세스’의 틀을 준수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상회담 합의 발표 직후 외교통신부 장관 이정빈이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간의 문제”라며,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물론 《월간중앙》 최원기 기자의 지적처럼, “북한 문제를 둘러싼 이니셔티브와 회담 의제의 우선 순위를 둘러싼 서울과 워싱턴간의 견해 차이”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동안 북한 문제를 주도해 왔던 워싱턴은 한국에 운전대를 넘겨주고 조수석에 앉아야만 하는 처지가 된 것”이라는 최 기자의 관측은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월간중앙》과의 인터뷰 때 주한 미대사 보스워스는 “현실적으로 한·미 양국간에 이견이 있을 여지는 매우 적다.”고 못박았다. 또, 그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무관하게 “금창리에 대한 2차 사찰이 조만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남북간 대화 국면이 조성되더라도 미사일을 빌미로 한 미국의 대북 압박은 여전히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미국의 대북 정책 규정력이 너무 큰 탓에, 민중운동 진영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반대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대북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이 대북 정책에서 사실상 ‘한몸’이라는 사실을 놓치게 되면, 실천에서 미 제국주의에만 반대하고 그것과 근본적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김대중 정부의 위선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삼가는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이것은 남북 정상회담을 이용해 그 동안 자신에게 저항해 왔던 민중운동 진영을 분열·약화시키려는 김대중 정권의 책략에 속아넘어가는 결과를 자초하는 것이다.
북한은 왜 남북 정상회담에 합의했을까?
그렇다면 북한은 왜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을까? “이번 정상회담 실현은 북의 일관된 정책의 산물이다. 즉, 북한의 민족대단결 운동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민경우 씨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만약 그렇다면, 북한이 그 동안 “민족대단결 운동”보다는 통미봉남이라 불리는 전략에 주안점을 두어 온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통미봉남 전략이 남북간 대화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본 축이 북미간 협상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보고, 남북간 대화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다. 민경우 씨의 설명은 지난 몇 년 동안 북한 정권의 발자취를 추적해 분석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수사를 그대로 믿어 북한 정권에 대한 잘못된 환상만 부추기는 오류를 낳을 수 있다.
북한이 경제 지원을 얻고자 하는 이유에서 정상회담에 합의했다는 추정은 진실의 일면은 담고 있다. 북한 정권은 지금도 심각한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북한의 경제 규모는 반으로 축소돼 왔다. 공장 대부분이 가동 중단 상태에 있으며 전력 공급망은 붕괴되고 있다. 그래서 북한 정권은 다른 나라의 경제적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단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남한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북한 정권은 북한 경제가 최악의 상황일 때, 즉 “고난의 행군”을 외치던 때에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을 것이다.
지난해 6월 서해교전 때, 햇볕정책을 떠들어대던 김대중 정부의 비이성적인 과잉대응으로 말미암아 30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참패를 당한 북한 정권이 이제야 햇볕정책의 참뜻을 이해해 남북 정상회담에 합의했다는 주장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김대중이 지난 2월 일본
북한 정권은 최근 북미, 북일 간 유화 국면에 조응해 남북 관계도 개선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 시기를 2000년 6월로 결정하고 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4월에 발표하려 한 것은 바로 그 때가 북·미 고위급 회담의 진전을 촉진시킬 수 있는 유리한 시기라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 같다. 지난 3월 9일 싱가포르에서 국정원-아태평화위 사이의 극비회담이 열리고 있던 바로 그 때 뉴욕에서는 북·미 고위급 회담 준비를 위한 예비회담이 열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북·미 관계개선과 남북 관계개선이 상호 연동돼 있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남북 정상회담 성사가 곧바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으로 연결되리라는 희망 섞인 관측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주한 미대사 스티븐 W 보스워스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대북 정책과 관련, 이미 한국과 공동의 목표와 목적을 설정해 놓은 페리 프로세스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평양과 양자관계를 추진할 때도 항상 미리 설정해 놓은 공동의 목표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 등에 대한 우려는 페리 프로세스를 통해 이미 이해가 형성되어 의견이 공유된 상태”라며, 남북한 합의의 폭이 근본적으로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핵무기와 미사일 등을 빌미로 북한을 압박해 왔던 미국의 동의 아래서만 정해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대중 정부 역시 회담이 임박할수록 “이번에는 만남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따라서 《열린 주장과 대안》 2호에 실린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에서 전망했듯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전에 열렸던 여러 회담들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서 “결코 항구적 평화 체제를 정착시키지 못한 채 여러 모순을 드러내면서 별볼일없는 것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더구나 역사는 정상회담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기력하기 짝이 없음을 증명했다. “사실 1970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와 동독의 빌리 슈토프 총리 간 첫 동서독 정상회담도 국민 기대와는 달리 합의를 내놓지 못했다. … 다만 2차 회담이 서독 카젤에서 열린다는 발표만 있었을 뿐이고, 2차 회담 때도 합의는 없었다.”
따라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남북 정상회담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정권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와 학생 들의 정치 운동을 발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