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환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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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과대선전으로 언론이 도배될 때 한 평론가는 이렇게 논평했다.[1]
“인간의 두뇌 신경망을 모델로 삼아 정교하게 설계된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 과정을 따라잡고, 부분적으로 능가하게 된 상황은 유물론적 세계관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기계적이지 않은] 유물론은 의식과 정신을 고도로 조직된 물질에 기반해 인간와 사회의 유기적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이제 고도로 집적된 인공신경망은 계산, 응용을 넘어서 인간의 직관까지 흉내내기 시작했다. 이게 체스나 바둑만이 아니라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고 그것이 결합되면서 범용화되고 로봇기술과 결합될 수 있다. 그러면 단순반복 작업과 노동만이 아니라 숙련노동, 지식노동, 서비스노동에서까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예측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구글은 ‘감정적 동요, 두려움도 없고 포기하지 않는’ 게 알파고의 장점이라고 했다. 여기에다가 엄청난 빅데이터에 입각한 확률·통계적 판단의 속도와 정확성은 갈수록 누구도 알파고를 이기기 어렵게 될 것이다. 1초에 수십만 개나 찾아내는 온갖 경우의 수에 대한 평가에 기반한 것일테니 말이다.”
과대선전
그에게 미안하지만, 언론의 뻥튀기에 너무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게 좋겠다. 인공지능에 관한 과대선전은 제2차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2] 그리고 1980년대 레이건의 스타워즈 계획 발표 때 또다시 기승을 부렸다. 그리고 그때 이래 과학 학술토론회의 단골 메뉴이다시피 했다. 군사 기술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거니와, 대기업들로부터 가장 많은 재정 지원을 받는 연구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인간처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바둑도 연산(형식논리)의 일종이라는 점이다. 연산으로 말하면, 이미 오래 전에 컴퓨터는 인간을 능가했다. 그리고 인간 지능은 연산이나 정보 가공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아무리 기계가 학습 능력을 배웠어도 창조력이나 공감능력, 직관 등 다른 많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다 포괄할 수는 없다. 인간의 뇌는 불확정적이어서, 엄격한 결정론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간 뇌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3] 인간 뇌에는 1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는데, 각각의 세포는 평균 1천 개의 다른 세포와 접속돼 있다. 그러면 1015개 접속이 있는 셈이다. 이 모든 접속이 전기자극을 교환한다. 지금까지 이런 수준의 회로망에 도달한 컴퓨터는 없다. 그러나 인간 뇌는 초거대 회로판 이상의 것이다. 게다가 신경세포들 자체의 구조도 무시할 수 없다. 그 구조는 디엔에이에 코드화돼 있지만 개인 체험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인간 뇌는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한 생명체들이 서로 만나서 영향을 주고받는 접촉점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인간 고유의 특성인 자의식 소유와 의견 교환을 한다. 지금으로선 이 복잡한 메커니즘을 인간이 알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기계가 흉내 내게 만드는 것도 언감생심이다.
인간의 또 다른 특성인 언어도 인간 고유의 특성이다. 특히, 인간의 지성을 형성하는 데서 언어가 하는 핵심적 구실을 깨달아야 한다.[4] 나는 거의 40년 전쯤 학교에서 언어학을 전공했는데, 그 분야의 양대 산맥인 소쉬르든 촘스키든 동물이 인간 수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지난 40년 새 동물이 이 수준으로 진화했을 리는 만무하므로 소쉬르(1913년 사망)의 제자들이나 촘스키 자신이 견해를 바꿨을 리는 없을 것이다.
언어
언어는 뇌 내부에 있는, 의식의 물질적 토대다.[5] 인간은 언어를 통해 협동을 하고, 복잡한 사상을 교환하고, 특히 자의식적 인식을 공유한다. 이런 능력과 활동을 협동적으로 공유한 덕분에 인간은 자연계에 작용을 가할 수 있었고, 여러 종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자연에 적응하거나 자연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대략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부터 6천 년 전 사이에 계급(즉, 착취)이 생겨나고, 곧이어 차별과 천대, 억압이 함께 생겨났다. 그랬어도 인간적 특질로서 협동이 사라진 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엔 협동심과 경쟁심이 공존한다. 만약 조직을 건설해 함께 싸우고 또 조직한다면 협동심을 더욱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인간 지성을 컴퓨터(아무리 슈퍼급일지라도)에 비견한다는 건 환원론이다. 그것도 조야하기 이를 데 없는 환원론이다.
그런데 이 환원론은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와 큰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제 불능의 상황이 인간을 압도하는 나머지, 인간의 노동생산물인 기계가 마침내 인간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까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는 또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말한 물신숭배와도 연관돼 있다.
주
[1] 전지윤, 변혁재장전 블로그에서.
[2] 시어도어 로작, 《정보의 숭배》, 현대미학사, 2005.
[3] John Parrington, ‘Artificial intelligence is not as close as its fans make out’, Socialist Worker 2431(25 November 2014). 존 패링턴은 영국 워스터대학교 세포·분자약리학 부교수이다.
[4] John Lyons, Introduction to Theoretical Linguist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8.
[5] 데릭 비커턴, 《언어와 행동》, 한국문화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