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박원순 강연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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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학생 그룹의 신입생 맞이 토론회는 대성공이었다. 손석춘 씨 강연은 650명, 박원순 씨 강연에 320명이 경청했다.
청중의 규모 못지않게 의미 있는 것은 청중의 성격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실인지 어리둥절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청중이 대학생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활력 있고 젊은 청년들이 보수 또는 수구 데마고그(감정적 거짓 선동가)의 연설이 아니라 진보적 개혁가들의 연설에 이끌리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또한 우리 민중 운동이 여전히 강력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강연 주제의 성격도 의미심장하다. 언론 개혁에 관심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데올로기 투쟁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정치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매우 정치적인 청년을 수백 명씩이나 휴일에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 사람들과 접촉하고 의사소통하고 상시적 연계를 구축해야 한다.
3대 개혁입법에 대한 관심도 결코 부문적인 것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언론·출판·집회·결사라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권을 억압하는 것이고, 지배자들의 주된 억압 장치이며, 노동자·민중 운동의 정치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된 장애물이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단순히 매년 구속되는 몇 백 명의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잠재적으로 몇 십만 명의 정치적 관심과 정치적 주장과 정당 건설을 위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수사 기관의 인권 침해에 관한 것이다.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관들이 깔보고 업신여기고 가혹하게 다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보통 사람들이다. 노동자와 민중의 누구나 수사 기관에 의한 인권 침해를 당할 수 있고, 또 실제로 대부분 그런 꼴을 당하며 살고 있다. 구속돼 일반 재소자들과 함께 살아 본 사람은 돈 없고 ‘빽’(연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사법 제도의 억압적 성격과 부패에 노출돼 있는지 직접 느꼈을 것이다.
부패 문제
부패방지법은 단지 정치인과 기업인과 정부 관료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 자들이 휘두르는 권력과 권위가 마음껏 부정직하고 불법적으로 행사될 수 있을 때 누가 고통을 받고 마음의 상처를 받는가? 바로 보통 사람들, 즉 민중이다. 박원순 변호사는 병원에 애 낳으러 갈 때도, 장례를 치를 때도 이른바 “급행료”를 치러야 하는 현실을 예로 들었다. 특히 사법 소송에 연루된 사람들이 법조계의 부패로 억울한 꼴을 당해, “수전증으로 손을 벌벌 떠는’ 사례는 눈물겨웠다. 그들은 “정상적인 의식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권력 또는 권위가 부정직하고 불법적으로 행사되는 것으로서 부패는 불평등과도 관계가 있다. 물론 부패가 완전히 없어진다 가정해도 자본주의 경제가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 바탕을 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생산 수단을 소수가 지배하고 있다는 근원적 사실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패는 불평등을 더 심화시킨다. 가령 연줄 덕택에 은행 융자를 쉽게 받고 사업상의 특혜도 받아 한밑천 잡는 사람들이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 정부 관료, 은행 간부, 거간꾼, 소위 로비스트 따위가 끼어들어 한몫 챙긴다. 이들은 주로 금융 투자를 통해 자기 직업과 별도로 금융 자본가가 되기도 한다.
부패는 또한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사회 지배자들의 위선을 드러낸다. 정직과 근면과 준법을 근엄하게 설교하는 그들이 메스껍게 느껴질 것이고, 고등학교 윤리 또는 사회 교과서는 헛소리일 뿐으로 여겨질 것이다. 부패를 폭로하는 것은 훌륭한 정치 선동으로, 정직하고 성실한 청년들이 현실에 눈을 뜨고 급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급진화’란 커다란 사회 변화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청중의 규모와 성격, 강연 주제의 성격에 대해 얘기했다. 마지막으로, 연사의 성격에 대해 지적해야 한다. 손석춘 기자는 1991년 동아일보 사태 때 사주와 데스크(편집 간부들)의 우익적 압력에 맞서 김중배 씨와 함께 동아일보와 결별했다. 근래에 그는 단순한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운동하는 저널리스트로서 떠오르고 있다. 비록 그가 4월 5일 강연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이 없다고 곤혹스러움을 나타냈으나 그래도 그는 좌파다. 그 날 강연에서 그는 투쟁을 통한 변화를 강조했고, 노동자와 민중을 강조했다. 그 날 청중의 규모로 그는 잠재적인 대중 운동가 또는 대중 정치인임을 입증했다.
아래로부터
한편, 박원순 변호사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강조한 손석춘 기자보다 조금 엘리트적인 ― 위로부터의 ―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노동자 투쟁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순수한 감수성이 돋보였는데, 19세기 초반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은 그러한 감수성에 의해 세계 최초의 노동조합을 창립하는 것으로까지 급진화했다. 장차 참여연대는 진보 정당 건설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소위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만남”의 가장 발전된 형태). 박 변호사가 좌파가 될 가능성은 몰라도 적어도 좌파와 함께 뭔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가 처음으로 민주노동당 집회에서 공개로 연설했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손 기자의 경우든 박 변호사의 경우든 연사의 성격이 중요한 진정한 이유는 그 개인들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 개인들을 지지하는 대중(그 날의 청중을 포함해)에 있다. 이 대중의 다수는 1997년 말 정권 교체 때, 군부 독재에 반대한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 출신이 국가의 새 지도자가 된 데 대해 크거나 작은 환상을 가졌다가 그 뒤 실망한 사람들일 공산이 크다.(4월 6일 강연 질문자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시장 경제에 반대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4월 5∼6일의 질문자들 가운데는 연사에 적대적이지 않으면서 좌파에 속하지 않는 듯한 사람들도 있었다. 4월 5∼6일 강연의 의의는, 이런 사람들이 존경하는 연사가 민주노동당이라는 좌파 정당이 개최하는 집회에서 연설케 함으로써, 그들이 우리에게 친화감을 느끼기 시작하게 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 취지에서 아쉬움도 남는다. 4월 5∼6일의 플로어 질문들 가운데 몇 가지는 단지 연사가 정리하게 놔 두기보다는 플로어의 우리 중에서 답변자가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가령 화염병 투척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한 문제, “중요한 개인의 자유”로서 재산권 문제, 김대중이 기대에 못 미쳐 실망했으나 “재임 5년 기간에 획기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 민주노동당이 집권한들 다르겠느냐”는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에 관한 문제, 특히 언론 개혁이나 3대 개혁입법을 위해 우리 학생들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우리 자신의 답변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이었다.
그리고 손석춘 기자에겐 실례가 됐겠지만, “김대중이 국가보안법 개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그의 주장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중 누군가가 단서를 달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김대중은 국가보안법 “개정’을 원한다. 하지만 그는 그 법이 지금까지 해 오던 본질적인 역할 ― 국내의 반체제 운동에 대한 원천적 탄압 ― 은 계속해서 하기를 원한다. 그는 결코 완전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노동자·학생 운동의 관점에서 봤을 때 김대중이 추진하고자 하는 종류의 보안법 개정은 기만이고 사기극이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손석춘·박원순의 강연은 썩 좋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의견과 주장을 풍부화·심화시키고, 급진화시키며, 적절한 방식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과의 일부는 우리 학생 당원들 조직의 성장으로 나타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