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주시해야 할 의료민영화저지 싸움의 다음 격전지, 규제프리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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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말하는 ‘성장동력’의 핵심, 의료
총선이 끝났다. 조기 레임덕 얘기가 나온다.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정책들이 저절로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파이낸셜 타임스〉가 잘 짚었듯이 박근혜는 “자신의 경제 의제를 더 강하게 추진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자본가들 또한 진짜 레임덕이 오기 전에 자신들의 이윤을 위한 정책 추진을 재촉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는 총선 이후 첫 멘트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중의 심판에도 아랑곳 않고 노동개악과 주요 ‘성장동력 과제’를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이 ‘성장동력 과제’로 자본과 권력이 가장 강조해 온 것 중 하나는 바로 의료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미 적지 않은 의료민영화·영리화가 진행됐다. 공공 지방의료원인 진주의료원 폐쇄를 시작으로, 투자활성화대책을 통해 병원부대사업확대, 영리자회사허용, 메디텔허용, 영리병원 첫 허가 등을 추진했다. 이 밖에 ‘의료관광’을 명목으로 국내 병원의 해외영리병원으로의 자산유출, 영리적 해외진출에 대한 세제와 금융 지원, 의료광고 규제완화 등을 허용하는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환자 유치에 관한 법’(이하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을 제정했고, 의료기기와 줄기세포·유전자치료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아울러 시범사업 성과를 과장해 원격의료 추진을 강행하고 있으며, 예방·관리 영역인 ‘건강관리서비스’까지 가이드라인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나름 잘 막아 온 의료민영화
이 정도면 할 거 다한 거 아니냐 싶겠지만, 사실 자본 입장에서는 썩 맘에 드는 밥상이 차려진 것은 아니다. 한 복지부 관계자의 말처럼 “규제를 풀어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의 초보적 성공 사례를 내놓겠다는 게 자회사를 통한 부대사업 허용의 취지”였으나 “반대에 부딪혀 규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또, 한 한국의료재단연합회 관계자의 말처럼 “자회사 설립 허가 조건이 여덟 가지에 달하는 데다 애초 병원들이 수익사업으로 관심을 뒀던 장례식장과 화장품·의약품 제조 판매 등은 허용 대상에서 빠졌다.”(〈한국경제〉, 2015.11.8.) 복지부는 사기혐의로 회장이 구속 상태인 중국 싼얼병원을 국내 1호 영리병원으로 승인하려다 시민단체의 폭로로 국제적 망신을 샀고, 내국인 또는 국내법인을 통한 우회투자 가능성을 차단하고 줄기세포 시술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고서야 겨우 허가할 수 있었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도 처음 새누리당이 내놓은 것과는 달리 민간보험사 해외환자 유치 조항이 삭제됐고, 영리병원 국내우회투자 금지조항이 삽입됐다. 이처럼 의료민영화의 길목 곳곳에 시민단체와 노동자들이 맞서 싸운 성과들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왜 박근혜가 선거 패배 이후에도 서비스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하나씩 추진하다가 막히니, 기획재정부장관에게 다른 부처 장관보다 상위에서 법령이나 사안을 개폐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부여해 공공서비스를 ”통 크게“ 민영화·영리화하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서비스법은 기재부가 기업의 입맛에 맞게 공공서비스를 요리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고, 이 요리의 핵심 재료가 바로 의료인 것이다. 이는 단지 의혹이 아니다. 새누리당 기재위 간사 강석훈은 의료를 뺀 서비스발전기본법은 “김치찌개 끓이는 데 김치를 빼고 끓이자고 하는 것”이라며 의료가 서비스법의 핵심임을 자인한 바 있다.
서비스발전기본법의 지역화 버전, 규제프리존 특별법
총선 직전인 3월 24일, ‘김치찌개 발언’을 한 새누리당 강석훈은 ‘지역전략산업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규제프리존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14개 시·도별로 전략산업을 선정해 규제를 일시에 철폐해 주겠다는 것인데, 지역발전을 명분으로 해당 지역 내에서 특정 산업과 관련된 규제를 모두 없애 주겠다는 것이다.
규제프리존 특별법에는 앞서 언급한 의료민영화를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를 지역 단위에서나마 송두리째 걷어 내려는 포석이 담겨 있다. 이처럼 의료나 교육에 대한 규제 완화에 ‘지역화 전략’을 쓴 것은 처음도 아니다. 영리병원이나 국제학교 등도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이름의 지역화 전략이었다. 이런 지역화 전략의 확대판이 이번 규제프리존이라 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서비스발전기본법·관광진흥법 등 '경제 활성화법'의 주요 내용을 지역 단위에서 먼저 추진해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 전국으로 확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사실 전경련의 직접적인 요구를 받아 안은 것이다. 전경련은 규제프리존을 요구하면서,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인간 합병절차 마련’, ‘법인약국 허용’ 등이 미해결 상태인데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역시 1천 일 넘게 국회 계류 중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조선비즈〉, 2015.12.17.).
실제 정부 구상안과 국회에 제출된 특별법 내용을 살펴보면 위험한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규제프리존 내 지역전략산업 및 이와 관련된 사업 등을 제한하는 규제를 법령 등에 규정할 경우에는,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사항을 열거하고 그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즉, 하면 안 된다고 써 놓지 않는 이상 다 해도 되는 것이다. 또한 규제프리존 특별법이 다른 법령보다 우선 적용된다. 형식은 서비스법의 틀을 그대로 따다가, 규제프리존 사업을 총괄할 특별위원회는 기재부에 설치하고 위원장은 기재부장관이 맡게 했다. 내용에서도 서비스법처럼 의료와 관련된 내용이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우선 규제프리존으로 지정된 모든 지역에서 (제한적이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식약처 허가 전 의료기기 제조와 시판이 허용된다. 강원도에서는 웨어러블 기기를 전격 활용한 ‘확장형’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실시되고, 강원·대전·충북에서는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를 무한정 확대할 수 있게 된다. 의료기기에 대한 심사절차는 이미 완화됐는데 강원·충북·경북에서는 더욱 빠르게 허가를 내준다. 또한 규제프리존에서는 각 개인의 “추가동의 없이 목적외 이용 및 제 3자 제공 허용”을 해 줘 개인·의료정보 활용(?)도 가능해진다. 사실 명시된 것만 이정도지 첨단복합, 스마트헬스, 웰니스, 관광 등의 이름으로 아우를 수 있는 의료 관련 산업에 관한 모든 규제가 풀릴 수 있다. 여기에 국민의 돈이 들어간다는 점도 큰 문제다. 대표적으로 임상시험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즉, 제약회사가 임상시험을 할 때, 위험을 무릅쓴 환자에게 돈을 지불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건강보험이 제약회사에 비용을 지급한다. 또한 규제프리존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에게는 세제(稅制)·재정·금융·인력 등이 집중 지원된다.
일본이 ‘성과사례’? 박근혜의 속내
정부는 이러한 규제완화의 “성과사례”로 일본을 들고 있다. 일본도 하는데 우리도 빨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제대로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일본 내에서는 일본판 규제프리존인 국가전략특구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의료, 고용, 교육, 농업 등 공공성이 큰 분야의 규제를 제거해 결과적으로 기업의 이윤만 늘고 지역간, 국민계층간 격차를 더 넓히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 분야의 폐단도 심각하다. 간사이(?西)권 등 의료 분야 국가전략특구에서 외국인 의사의 진료나 국내 승인되지 않은 약품의 사용을 허용했다. 또한 일본 의료의 핵심제도인 혼합진료 금지 규정을 풀어 버렸다. 혼합진료 금지 규정은 의료서비스의 오남용을 방지하려고 보험 진료와 비보험 진료를 동시에 처방할 수 없도록 한 조처다. 이런 규제가 폐지될 경우 병원에서 고가의 비보험 진료를 병행할 수 있게 되므로,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저소득층이 의료에서?? 배제될 위험성이 커진다. 아울러 노동 분야에서는 비즈니스 특구를 지정해 '일정 이상의 연수입이 있는 사람에 대한 법정 근로 시간 적용을 제외‘(초과 근무 수당 없애기)하고, ’해고 규정의 규제를 완화‘했다(郭洋春, 《?家?略特?の正?, 集英社新書》, 2016 참조). 아베 정권은 경제부흥을 위한 ‘세 번째 화살’의 “기둥”으로 이 ‘국가전략특구(규제프리존)’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정작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 경제가 올해 0.5퍼센트 성장하는 데 그치고, 내년에는 0.1퍼센트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규제프리존은 일부 야당 의원들도 끌어들일 수 있는 묘책이기도 하다.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발전 논리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미 "지역 전략산업은 전국에 분포돼 있기 때문에 야당 소속 시·도지사도 적극 협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추파를 던졌고 실제로 새누리당 의원 만이 아니라 국민의당 소속의 김관영, 김동철, 장병완과 무소속 유승우도 이 법안을 함께 발의했다.
뱀 그림자? 왕뱀에서 실뱀으로
원래 이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정부가 지난해 말 기획안을 내놓을 때만 해도 법제화 시기를 6월로 계획했었다. 그런데 부랴부랴 3월로 앞당겨 정부 입법이 아닌 의원입법으로 추진해, 19대 국회 회기 내 처리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규제프리존법안은 야당 의원들도 자신들의 지역구 문제가 달린 법안”이기에 “그런 부분을 강조하면 19대 국회에서 협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내비치고 있다.(조선비즈, 2016.4.18.)
자본과 권력이 이토록 규제 완화에 집착하는 것은 그동안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잘 막아 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올 3월 2일, 청와대는 서비스법 통과가 뜻대로 되지 않자 답답했는지 “술잔 속 뱀 그림자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뜻의 고사성어(배중사영, 杯中蛇影)까지 인용하며 서비스법에 대한 의료민영화 우려 목소리에 투정 섞인 반박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정작 이제는 왕뱀 한 마리로 안 통할 거 같으니 실뱀들을 전국에 뿌리려는 상황이다. 얼핏 생각해도 흩어진 실뱀을 일일이 잡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아직 주머니에 담겨 있을 때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