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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은 어떻게 패배했는가?

전 세계 대중은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에 열광했다. 제1차세계대전의 참혹한 학살이 일어나는 와중에 노동자평의회와 병사평의회가 러시아를 통치하게 된 것이다.

신생 소비에트 정부는 전쟁을 멈췄고 포괄적 개혁을 단행했다. 공장위원회는 기업을 접수했다. 농민은 토지를 얻었다. 여성에게 세계 어느 곳보다 많은 자유를 허용하는 선구적 법안이 통과됐다.

새 정부는 전 세계 모든 노동자와 피억압자들에게 혁명에 함께하자고 호소했다. 진정한 사회주의자라면 이러한 고귀한 시도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신생 사회주의 정권은 엄청난 문제에 봉착했다. 백군은 야만적 내전을 시작했고 모든 주요 자본주의 정부가 백군을 지원했다.

러시아는 이미 제1차세계대전에서 열강 중 가장 많은 병사를 잃었다. 내전의 사망자 수는 더 많았다. 빈곤이 러시아를 휩쓸었다. 5백만 명이 발진티푸스로 죽었다.

도시 인구가 격감하면서 1917년 혁명을 이끌었던 노동계급이 사라졌다. 가장 탁월하고 헌신적인 노동계급 활동가들이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죽어갔고, 다른 이들이 새로운 사회 조직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내전에서 승리하는 과정에서 혁명적 체제는 내부로부터 부패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삶의 모든 분야에서 감독과 통제가 대중민주주의를 대체했다. 1920년에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레닌은 매우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 국가는 심각한 관료적 퇴보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농민의 국가이다.”

레닌과 동료들이 계속 지적했듯이 만약 혁명이 확산하지 않는다면 혁명은 패배할 것이었다. 러시아 혁명은 결국 고립됐다. 러시아 내에서는 레닌이 “관료적 퇴보”라고 묘사했던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주요 당 지도자 스탈린은 1920년대 중반에 볼셰비키의 국제주의를 포기했다. 그는 이제 “일국사회주의”가 가능하며 바람직하다고 선언했다.

1920년대 말까지는 레닌의 묘사[“관료적으로 퇴보한 노동자 국가”라는]가 러시아 현실과 잘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1920년대 말에 이르러서 스탈린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러시아가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을 “따라잡아야 할 뿐 아니라 능가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새로운 정책은 5개년개발계획으로 구체화됐다. 이러한 급속한 공업화 정책을 위해 대중의 삶이 잔인하게 공격당했다. 1920년대 내내 실질임금이 증가했지만 이제는 줄었다. 1917년에 농민들은 토지를 얻었지만 이제는 강제 농업집산화를 통해서 다시 박탈당했다. 평등주의는 공식적으로 반사회주의적 정책으로 낙인찍혔다.

스탈린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미명 하에 위로부터의 반혁명을 주도했다. 1917년의 대중민주주의와 관련된 유산은 모두 철저하게 파괴됐다. 수백만 명의 노예 노동자가 일하는 강제노동수용소가 세워졌다. 1930년대 숙청 과정에서 스탈린의 보안경찰은 진정한 1917년의 기억을 상징하는 주요 공산주의자들을 모두 체포하거나 살해했다.

비극이게도, 전 세계의 많은 공산당원과 심지어 사회당원들도 스탈린의 거짓말을 믿었고, 소련의 끔찍한 상황을 사회주의로 여기며 옹호했다.

좌파 중에서 스탈린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스탈린의 가장 중요한 반대자였던 레온 트로츠키는 여전히 레닌이 1920년에 정식화한 공식을 따라 소련을 “퇴보한 노동자 국가”라고 불렀다. 트로츠키에게 국유 재산의 존재는 비록 매우 왜곡된 형태이지만 무언가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트로츠키는 소련에서 신생 지배계급이 탄생했다는 주장을 거부했다.

미국의 막스 샤트만 같은 이들은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가 계급 착취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중공업과 군비증강을 강조하고 대중의 소비를 희생시키면서 진행된 스탈린의 공업화 정책을 설명할 수 없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이제 스탈린은 동유럽으로 지배를 확대했고, 러시아를 본딴 체제를 건설한 다음 자기 꼭두각시를 앉혔다. 이들도 노동자 국가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제 사회주의에는 노동자 혁명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1940년대 말에 토니 클리프는 소련과 동유럽 위성국가들에 관한 가장 탁월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내놓았다. 클리프는 스탈린주의 러시아가 어떤 의미에서도, 심지어 퇴보한 형태의 노동자 국가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영국에서 1984년 광부들을 공격했던 석탄청처럼 국유화된 산업이 사회주의를 뜻하지 않는 것처럼 국가 소유 자체가 사회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19세기에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적했듯이 자본주의는 국가 소유를 포용할 수 있다.

스탈린은 “따라잡아야 할 뿐 아니라 능가해야 한다”는 대명제에 소련 사회를 종속시키기 위해 특수한 형태의 자본주의 발전 경로를 택했다. 스탈린주의 러시아는 고강도 노동계급 착취를 통해 1930년대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계급사회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특징에는 계급 착취뿐 아니라 경쟁도 포함된다. 소련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련은 경쟁적 세계경제의 일부였다.

소련에서 주요 경쟁 메커니즘은 군사적 경쟁의 형태를 띠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성장에서 식량이 아니라 총이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또, 소련과 위성국가들은 세계경제의 일부로서 경제 위기를 겪었다. 1950년대부터 동독·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서 발생했던 거대한 봉기의 배경에는 이러한 경제 위기가 있었다.

결국 1989∼1991년 동안 때때로 거대한 대중 혁명[가령 루마니아]과 함께 스탈린주의의 전체 체계가 붕괴했다.

이러한 비극적 경험으로부터 두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첫째, 사회주의는 반드시 국제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으로부터든 밖으로부터든 파괴당할 것이다. 둘째, 사회주의와 가장 광범한 민주주의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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