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국가는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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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확고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장이 일부 포함돼 있겠지만 히브리성경(구약성경)은 고대 중동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이고 신약성경 중 마태·마가·누가·요한 복음서는 예수 전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기독교와 유대교 공통의 경전인 히브리성경은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초대 이스라엘 대통령이었던 벤 구리온은 성경에 기록된 다윗과 솔로몬 제국의 묘사를 근거로, 남부 레바논과 남부 시리아, 요르단 일대, 그리고 시나이 반도까지 이스라엘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지금부터 3천 년 전에 자신들의 조상이 지배했던 영역을 근거로 현대 국가의 국경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매우 황당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출발이 바로 이런 근거에 기초를 두고 있다. 신학적 동기에서 촉발된 서양의 성서 연구는 정치적 동기에서 촉발된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고대사 연구와 잘 결합되며 또한 그것에 의해 강화돼 왔던 것이다.
성경 이야기는 에덴 동산에서 시작해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거쳐서 마침내 한 가족, 즉 아브라함 가문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아브라함은 한 위대한 민족의 시조가 되도록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으며, 그의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을 거쳐 이스라엘의 12부족이 생기게 됐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성경의 기록을 근거로 이 족장 시대가 기원전 2100년경이라고 추정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고고학적 증거들은 족장 시대의 기록이 후대에 창작된 것임을 보여 준다.
우선 족장 시대 이야기에서 되풀이해 등장하는 낙타는 기원전 1천 년이 훨씬 지나서야 짐 운반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삭이 블레셋 왕 아비멜렉을 그랄이라는 도시에서 만나는데(창세기 26:1), 블레셋인들은 기원전 1200년이 지나서야 팔레스타인 지방에 나타났고 그랄로 추정되는 곳은 기원전 7세기 이전에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그 외에도 많은 지명들이 후대의 정보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곳들이다.
족장들의 이야기가 신화적 민담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 시대의 도시들과 이웃 민족들과 유명한 지명에 관한 기록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고학적 증거들은 그런 구체적 지명들이 사실이 아니며, 족장 시대를 묘사하는 유목 생활이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풍속 등은 너무 일반적이어서 고대 중동 역사의 거의 모든 시대에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족장 이야기들은 역사적 근거가 없는 민족 신화로 간주돼야 한다. 현대의 백과사전들에서도 이스라엘의 역사는 족장 시대 이후부터 기술돼 있다.
모세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인들이 대거 이집트를 탈출한 이야기는 성경 역사의 중심을 이루며 여러 세기 동안 전해져 내려왔다.
전통적 학설은 이스라엘인들의 이집트 탈출이 힉소스족의 이주라는 역사적 사실과 잘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힉소스족은 가나안 출신의 셈족으로서 점진적으로 이집트에 이주해 대략 기원전 1670년부터 1570년까지 이집트를 지배했고 결국 추방됐다.
그러나 성경은 솔로몬 재위 4년째가 이집트 탈출 4백80년이 되는 해라고 밝히고 있는데(열왕기 상 6:1), 이것은 대략 기원전 1440년으로 힉소스 추방(기원전 1570년경)보다 무려 1백 년 이상 후대이다.
또, 성경은 분명 이스라엘 백성의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해 만든 도시를 “라암셋”이라고 언급하고 있다(출애굽기 1:11).
그런데 람세스라는 이름을 가진 파라오가 처음으로 왕위에 오른 것은 기원전 1320년이다.
대다수 학자들은 람세스라는 이름에 관한 성경의 언급을 정확한 역사적 사실로 여겨, 기원전 1279년부터 1213년까지 이집트를 지배한 람세스 2세 시대를 이집트 탈출의 시기로 생각했다.(영화 〈십계〉도 그렇게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람세스 2세 시대에 이집트는 세계를 호령하는 패권국가였다. 이집트는 가나안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었으며 가나안 곳곳에 요새를 설치하고 정부 관리들을 파견해 행정 문제를 처리했다.
이런 요새들은 이집트 군대가 대규모 원정을 나갈 때 전초기지 구실을 했으며 각 요새는 주변 이방인들의 동태를 매우 자세하게 감시해 보고하고 있다.
그런데 기원전 13세기에 기록된 수많은 이집트 문서자료에는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언급이나 단서가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성경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인들이 요르단고원으로 이동할 때, 이미 국가를 이루고 있던 에돔인들과 암몬인들의 저지를 받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 지역은 당시에 농경인구가 정착해 있지도 않았고 기원전 7세기에야 비로소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인들이 유랑하면서 거쳤다는 많은 지리 사항은 일관되게 기원전 7세기의 상황과 일치한다.
성경의 여호수아서는 강력한 가나안의 여러 왕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스라엘 부족들이 땅을 차지하는 전격적인 정복 작전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성벽 둘레를 엄숙하게 행진하다가 7일째에 요란하게 전투 나팔을 불자 무너져내렸다는 여리고 성벽 붕괴 이야기와 기브온에서 멈춰선 태양 이야기 등은 유명하다.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의 기록을 뒷받침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20세기 초에 여러 학자들이 가나안 지역의 불타고 파괴된 도시를 발굴해 냈다. 성경에 기록된 벧엘·라기스·하솔과 그 밖의 여러 도시들은 기원전 13세기 말쯤에 파괴된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이집트는 여전히 가나안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가나안에 작은 도시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이집트의 속국이었고 가나안의 대다수 도시들은(특히 여리고) 성벽 등의 방어시설이 없었다.
이집트를 빠져나온 한 무리의 피난민들이 가나안 전 지역을 파괴하는 동안 이집트군이 수수방관하고 있었을 리 만무하며 이집트 제국의 방대한 기록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다.
성경도 가나안인들만 언급할 뿐, 당시 가나안 지역에 있었을 이집트인들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기원전 13세기 말부터 약 1세기 정도 계속된 가나안 지역 도시들의 파괴는 중동의 대규모 파괴와 관계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것이 “바다 종족”이라고 불리는 정체불명의 집단이 대규모로 침입했기 때문임을 알게 됐다.
“바다 종족”이 누구였는지는 계속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들이 생활 기반을 잃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이동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리고 이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인은 분명 아니었다.
방랑을 끝낸 이스라엘인들은 결국 왕국을 세우게 된다.
최근까지 많은 학자들은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었다. 특히 1993년 텔단에서 발견된 돌기둥에서 ‘다윗 왕조’(혹은 ‘다윗의 집’)라고 적힌 비문이 발견되면서 성경의 기록이 옳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여겼다.
학자들은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던 때에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력이 약해진 틈을 타 다윗이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서기록에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또한 솔로몬이 대규모 건축 사업을 벌였다는 시대인 기원전 10세기경의 유물들은 당시 예루살렘이 조그만 산간농촌 마을 수준을 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최근의 증거들을 토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이라는 개념이 후대의 유다 왕국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거대 제국들의 권력 공백을 틈타 좀더 부유한 지역인 북쪽에서 이스라엘 왕국이 생겼다(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은 성경에서 비난의 대상이다.) 이들은 기원전 9세기경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 제국에 맞서다가 결국 기원전 720년에 멸망했고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가 흩어지게 됐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좀더 척박하고 고립된 남부 지방으로 이주했고, 이때부터 유다 왕국이 갑자기 번성했다. 인구는 급증해 유다 왕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의 인구는 대략 1만 5천 명까지 증가했다. 예루살렘은 그전에 이보다 더 큰 규모로 발전한 적이 없었다.
유다 왕국은 이전 이스라엘 왕국의 영토까지 자신들이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새로 유입된 자들을 왕국에 통합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그 왕국은 기원전 586년에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무너졌지만 그들의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전 기록들에 신학적 설명을 추가했다.
족장 시대, 이집트 탈출, 가나안 정복과 다윗 제국이라는 히브리성경의 주요 내용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성경 문서들은 기원전 7세기에 왕국의 정통성을 주장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집필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곳곳에 기원전 7세기의 흔적을 남겼다.
물론 성경 집필 시기를 더 늦춰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성서학자 렘체는 ‘범 이스라엘’사 집필은 바빌로니아 포로기보다 빠를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약속의 땅”이라는 빈약한 이데올로기적 근거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는 “약속의 땅”이 한낱 신화일 뿐임을 밝히면서 이스라엘 국가의 정당성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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