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나라 운영회원 인터뷰:
“성소수자들을 정치·경제 위기의 제물로 삼으려는 혐오에 맞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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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T, 아이다호)이다.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했다. 국제 성소수자 운동은 동성애 혐오에 대항하려고 2004년부터 매년 5월 17일을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로 기념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보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성소수자 혐오 세력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주류 정치인들이 공공연하게 차별적 발언들을 내뱉고, 박근혜 정부는 이를 비호할 뿐 아니라 부추기고 있다. 지난 4?13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은 “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치며 혐오를 선동했다.
〈노동자 연대〉는 ‘아이다호’를 앞두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나라 운영회원을 만나 최근의 성소수자 혐오와 그에 맞선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이나라 운영회원은 《무지개 속 적색: 성소수자 해방과 사회변혁》(책갈피)의 번역자이자,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집행위원이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아이다호’를 맞아 여러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기독자유당의 혐오 규제를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집단 진정 캠페인 등을 벌이며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성소수자 혐오 세력들이 크게 가시화됐습니다. 시위를 직접적으로 방해하고, 공청회를 무산시켰습니다. 최근 이런 성소수자 혐오 세력이 가시화된 배경이 무엇인가요?
성소수자 혐오가 조직화된 계기는 2007년 정부가 차별금지법 발의 시도를 했을 때였어요. 그 전에도 보수 세력은 “동성애 반대” 얘기를 했었고 사회적으로 차별적인 편견은 계속 있었지만, 차별금지법 발의 시도를 기점으로 성소수자 문제가 우파 정치의 주요한 의제가 됐어요. 그 이후로 꾸준히 반反동성애 선전과 논리들이 갖춰지기 시작했어요. 이들은 성적 보수주의가 약화되는 세태를 우려하며 동성애를 ‘성적 타락’의 상징으로 부각시키기 시작했어요.
체제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봐요.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모색하고 있는데 거기서 우파들은 차별적 체제를 유지하는 데 중요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위기가 심화하면서 한국 사회는 기로에 서 있죠. 이런 상황에서 ‘종북’, ‘빨갱이’ 외에 성소수자들이 위기의 제물로 삼기 좋은 사람들 중에 하나죠. 같은 맥락에서 이슬람 혐오나 이주민에 대한 공격도 강화되고 있죠. 한국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위기라는 맥락 속에서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성장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 문제는 우파가 자유주의자들을 공격하는 무기로도 사용되고 있어요.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성소수자 문제에 취약하기 때문이죠. 박원순이나 박영선 같은 사람들을 공격하면 흔들리잖아요. 결국 이게 우파들의 논리를 강화해 주는 거죠.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성소수자 혐오 세력들이 대중 운동의 형식을 좀더 많이 띄게 됐어요. 그리고 대중을 상대로 선전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요. 단지 ‘동성애는 나쁘다’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반동성애 논리를 사용해요. 가령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 환자가 늘어나고 그게 우리한테 세금 폭탄이 된다’는 식의 얘기를 하죠.
정부가 어버이연합처럼 이들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해 주고 활용하고 있죠. 이를테면 국가기관 요직에 혐오 세력과 같은 배경과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으로도 들어가고 방심위에도 가고. 성소수자 혐오를 꾸준히 선동해 온 KBS 이사 조우석도 한 사례죠. 이런 식이니까 결국 정부·국가기관들이 우익 단체들의 압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후퇴시키고 있는 거죠. 그래서 우익들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기세등등해지는 효과가 있었어요.
정부 기관의 주요 인사가 혐오 발언을 하거나 차별을 부추기는 것은 각별히 문제라고 봅니다.
그럼요. 우익들이 막 난리를 치는 건 고통스럽고 충격적인데, 사실 더 큰 좌절감을 주는 건 정부의 태도예요. 정부가 우리를 인간 취급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정부의 태도가 사회적인 영향력도 훨씬 크죠. 정부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는다거나, 여성가족부가 ‘성소수자는 양성평등지원법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거나. 성소수자들을 사회가 어떻게 대우할지 신호가 되는 게 국가의 태도일 텐데, 정부가 ‘비시민’ 규정을 하는 거죠. 요즘 방송에 동성애 코드가 나오면 방심위가 제재를 해요. 이게 던지는 메시지는 ‘동성애는 뭔가 유해하고 뭔가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죠.
지난 20년간 차별적인 인식이 완화되고 개선이 돼 왔다고 보였죠. 그리고 성소수자들도 자신감을 얻고 자기 권리를 요구하는 수준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점이었는데, 그게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지금 확인하는 거예요. 정권이 바뀐다고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뿌리깊은지를 보여 주는 거겠죠. 느슨하게 인식 개선을 통해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혐오는 성소수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사회적으로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쳐요. 동성애에 대한 온갖 쓰레기 같은 말들이 넘쳐나요. “동성애 반대”라는 말이 신문, 텔레비전에 버젓이 나오고, 정당 공약이나 정치인의 입에서도 나오죠. 학교에서나 집에서도 들을 수 있어요. 이런 것들이 성소수자들의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쳐요. 청소년 성소수자들에 대한 괴롭힘이 심각하고 이들의 자살율이 높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죠. 요즘에는 성소수자 행사에 혐오 세력들이 오잖아요. 이걸 눈앞에서 보는 게 심리적 피해가 매우 커요. 무심코 나오는 차별적인 얘기도 상처가 되지만, 아주 정확히 우리를 찍어서 적대하는 건 또 달라요.
요즘엔 혐오 세력들이 ‘전환 치료’라는 것도 해요. 꼭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건 아니고, 상담시키고 하는 거에요. 부모들이 성소수자인 자녀를 그런 데 데리고 가죠. 그런데 이건 진짜 위험한 거예요. 자신을 부정하면서 살게 만드는 거니까 고문 같은 거죠. 그런데 요즘 ‘동성애는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하고 선전하면서 이런 일이 더 늘어나고 있어요.
혐오 세력이 성장하는 한편, 최근 성소수자 운동도 성장해 왔습니다. 성소수자 운동의 성장 동력은 무엇인가요?
한국의 경우, 사회운동이 진전하고 민주화나 자유화가 제한적이나마 이뤄지면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도 태동했어요. 그리고 국제적인 흐름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해외의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대한 정보를 접하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성소수자가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부끄럽고 감추면서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맞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걸 성소수자들이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봐요. ‘내가 왜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하나’ 하고 자문하고, ‘나는 왜 남들한테 욕을 먹어야 하나’ 하며 분노할 줄 알게 되고. 사실 억압에 맞선 싸움에서는 이런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이렇게 1990년대 성소수자 운동의 등장은 한국 사회 민주화와 서구 성소수자 인권의 다양한 진전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그런 바탕 위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성장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변했죠.
운동이 노력한 것도 있었고요. 성소수자의 존재나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작업들이 쌓여 왔죠. 제 세대만 해도 대학에 오기 전까지는 거의 정보도 없고 내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세대는 성소수자 운동이 존재할 때 성장한 세대들이에요.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관련 정보를 접해 왔죠.
이 세대의 성소수자들은 스스로 바라는 삶의 모습이 우리 때와는 또 달라요. 사회에 맞춰서 살고 적당히 숨기고 사는 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그냥 성소수자로서 살기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인권 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리를 무시하는 말이나 반동에 더 분노하는 거죠. 최근 성소수자 운동의 성장은 변화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긍정하면서 좀 더 존엄한 삶을 자연스럽게 욕구하는 세대가 성장한 것과 관련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싸움은 더 늘어날 거라고 봐요. 사실 저는 우리가 아직 본격적으로 싸워 본 적은 없다고 생각해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싸움(2011년)이나 서울인권헌장 싸움(2014년)과 같은 투쟁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상황인 거죠. 이런 싸움을 경험한 사람들이 다음 번에도 싸울 수 있는 거죠.
성소수자 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성소수자 운동의 방향성을 둘러싼 논의가 별로 없어요. 이런 논의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해요. 해외에서 성소수자 운동이 어떻게 성장했고 권리의 진전을 이뤄냈는지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공부하고 비교해 보고 한국적 상황에 적용해서 예상해 봐야 하죠. 그런데 이런 부분에 투여되는 역량이 매우 제한적이에요.
요즘 혐오가 성장하고 기승을 부리는 현상을 보면서 성소수자 운동이 혐오와 차별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에요. 혐오를 확산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명백한 정치적 색채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성소수자 억압에 맞선 운동도 한국 사회 또는 체제와 연결지어서 고민해야 하는데, 최근에 그런 고민을 할 기회나 계기가 많아졌어요.
성소수자 운동의 전형이나 모델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성소수자 운동이 지금까지 제일 가까웠던 건 인권 운동 진영인데 저는 좀 더 다른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중운동이 중요해요. 피억압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싸울 수 있어야지 억압에 맞선 운동이 힘을 가지죠. 미국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나 성소수자 운동도 매우 대중적인 운동이었어요. 저는 한국에서 최소한 성소수자 집회에 1만~2만 명은 모여야, 즉 ‘퀴어퍼레이드’할 때 나오는 사람들 정도가 ‘집회’할 때도 나오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 어떻게 싸울 계획인가요?
일단 혐오가 용납돼선 안 된다는 얘기, 그 해악이 얼마나 심각한지, 개개인들의 삶을 얼마나 파괴하고 또 사회적으로는 얼마나 해악적인지, 이를 계속 알리는 작업이 핵심이겠죠.
그리고 혐오의 정치적 성격이나 사회운동 전반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해야 해요. 혐오는 단지 성소수자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권,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문제예요. 따라서 혐오에 맞서는 것은 성소수자 운동만의 과제가 아니라 사회운동의 과제가 돼야 하고, 노동자 운동이나 여성운동이나 다른 진보적 정치 운동들이 이 문제를 좀 더 자기 과제로 삼고 대응할 필요가 있어요.
KBS 이사 조우석이 성소수자 운동과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좌파’들의 연대를 “더러운 커넥션”이라고 불렀는데, 이 “더러운 커넥션”이 강화돼야 하는 거거든요.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5·17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앞두고 기독자유당 규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지난 4·13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이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면서 텔레비전에도 나왔는데, 선관위 제재도 받지 않았어요. 이런 일이 용납돼서는 안 돼요.
동시에 저는 이 혐오를 국가가 지원하고 기득권과 연결돼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를 상대로도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독자유당만 규탄할 게 아니라 국가가 이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걸 요구하면서 싸우려 합니다.
인터뷰·정리 이현주 /녹취 박충범
함께 참가합시다
기독자유당의 소수자 차별 선동에 대한 규제를 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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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서 제출 및 기자회견: 5월 24일(화) / 시간·장소 추후공지
5.17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기념 기자회견
일시: 5월 17일(화) 오전 11시 / 장소: 추후 공지
“평등을 노래하라” 아이다호 액션 플래시몹
일시: 5월 14일(토) 오후 2시 / 장소: 세종문화회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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