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학생들이 성소수자 혐오 강연에 성공적으로 맞서다
〈노동자 연대〉 구독
5월 12일, 부산대학교 물리학과 길원평 교수가 “바른 성문화에 대한 특강”을 진행했다. 성소수자 혐오 내용의 강연회였다.
이에 학내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인 ‘Queer In PNU(이하 QIP)’와 부산대학교 총학생회, 법학대학원 공익인권법학회, 노동자연대 부산대모임 등은 강연장 앞에서 길 교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팻말 시위를 하며 맞섰다.
이날 기자회견과 팻말 시위에는 부산대 학생들 30여 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에이즈는 동성애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에이즈는 단지 질병일 뿐이고, 의학의 발달로 HIV보균자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혐오 표현은 법적으로 금지돼야 한다”, “성경은 ‘사랑’을 가르친다. 종교의 이름으로 혐오를 하지 말라” 하며 길 교수를 규탄했다. 또한, 팻말 시위 이후에는 “성소수자 혐오 조장하는 강연을 중단하라”,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고, 많은 학생들이 행진을 지켜봤다.
길 교수의 강연회는 많은 학내 구성원들의 항의에 부딪혀 강연 장소와 주최, 제목을 바꾼 바 있다.(▶관련 기사: ‘부산대 학생들이 성소수자 혐오 강연 개최에 항의하다') 그리고 이러한 항의를 의식해서인지 길 교수는 오늘 아침, ’사랑하는 부산대 학생들에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통해 자신의 강연이 동성애를 혐오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른’ 성문화를 전하려는 것임을 호소했다.
하지만 길 교수가 말하는 ‘바른’ 성문화는 전혀 ‘바르지’ 않다. “에이즈 감염과 남성 동성애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길 교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HIV는 이성애와 동성애를 구분하지 않고, 감염인과의 성관계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 길 교수 본인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HIV 감염이 동성애자에만 특별히 발생하는 것처럼 강연하는 것 자체가 바로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다.
한편, 오늘 7시에 열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소속 한가람 변호사 초청 강연 ‘혐오와 폭력의 시대 -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과 인권’에는 학생 50여 명이 참가했다. 학생들이 거의 보이지 않던 길 교수의 강연회와는 확실히 대조된 모습이었다.
길원평 교수의 강연회에 맞선 학생들의 시위는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려주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학내의 소수자 차별에 단호하게 맞설 것이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기자회견문이다.
자유의 탈을 쓴 혐오는 대학에서 사라져라!
1. 끝나지 않은 혐오의 땅밟기
우리는 오늘 국립대인 부산대학교에서 일어나는 참담한 상황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국립대 교수인 길원평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혐오선동’을 부산대학교 내에서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길원평 교수는 2014년부터 성소수자혐오의 내용이 담긴 대자보를 학내에 부착했습니다. 편견과 혐오에 사로잡혀 동성애를 죄악이나 질병으로 바라보고 이러한 편견과 혐오를 확산시키려는 의도 였습니다. 그 후 여러 곳에 부산대학교 교수의 이름으로 성소수자 혐오 강연을 개최했습니다. 더구나 이 땅의 소외된 자와 힘없는 자를 사랑하신 예수의 이름을 앞세웠습니다.
이미 부산대학교 성소수자 인권동아리인 QIP(Queer In PNU)는 반박 대자보를 통하여 길원평 교수가 주장하는 것들에 대하여 조목조목 비판하며, 그런 길원평 교수의 행동은 학내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혐오표현임을 알린 바 있습니다. 당시 총학생회를 비롯한 많은 학내 구성원들이 QIP와 함께 학내에서 자행되는 혐오행동에 대하여 공동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길원평 교수는 혐오의 땅밟기를 이어갔습니다. 이번 강연도 대학본부측의 대관취소로 급하게 장소를 변경하여 강행되고 있습니다.
2. 우리는 길원평 교수의 강연이 대학내에서 개최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대학은 많은 이야기들이 소통되는 공간입니다.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다양성을 위하여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과감히 길원평 교수의 강연이 개최되어서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 다양성을 위해서 입니다. 나찌나 일베의 차별과 혐오는 다양성을 훼손시키는 이유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더구나 길원평 교수의 이번 강연은 국립대 교수의 지위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공개적으로 고취시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부산대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교 내에서 성소수자 동아리의 현수막과 대자보가 혐오세력에 의해 무참히 찢겨져 나가고 있습니다. ‘성적 지향’이라는 문구를 빌미 삼아, 각종 법률과 인권조례들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이런 혐오와 폭력의 시대에서, 국립대 교수의 권위와 영향력을 남용하여 차별을 강화시키는 이번 강연이 필연적으로 불러올 더욱 참담한 결과를 묵과할 수 없습니다.
3. 지금도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대다수 기독교인에게 호소합니다.
길원평 교수의 강연은 편견과 차별에 눈이 멀어, 예수님의 참다운 사랑을 보지 못함의 결과입니다. 겉으로는 성소수자를 위한다고 하면서, 동성애을 죄악이나 질병으로 바라보고 치유와 교화의 대상으로 바라 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감사하고 숭고한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누가 감히 옳다, 그르다고 규정지을 수 있으며, 찬성하고 반대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이신 예수님이 누구의 손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일부 편견과 차별에 눈먼 이들에 의하여 존재를 부정당하고 상처받는 그 누군가를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4. 우리의 공동체에게 요청합니다.
대학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대학본부의 기본적인 입장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소수자 보호를 위하여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줄 것을 대학구성원으로서 요청합니다. 또한, 대학 공동체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대학 구성원 모두에게 혐오에 함께 대응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까닭은 우리만 옳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도, 저들의 혐오에 분노해서 만도 아닙니다. 무지개 농성장에서, 퀴어퍼레이드의 길 위에서, 각종 SNS에서 갖가지 혐오와 폭력은 활개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존재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소리를 내어 우리가 존재함을 떳떳이 알리고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처받고 쓰러지지만, 함께 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기에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존재할 수 있습니다.
2016. 5. 11.
부산대학교 총학생회(공식명칭). 부산대학교 성소수자 인권동아리 QIP. 노동자연대 부산대모임(공식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