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하비 비판:
경제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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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이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오늘날 데이비드 하비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은 드물다. 그는 《자본의 한계》, 《신제국주의》, 《자본이라는 수수께끼》, 《자본의 17가지 모순》, 《맑스의 자본 강의》 등의 저작들과 수많은 강연을 통해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지평을 넓혔을 뿐 아니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심도 깊게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1982년에 출간된 《자본의 한계》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세대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천착한 뒤에 나온 가장 중요한 성과물의 하나이며, 《신제국주의》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재정립한 영향력 있는 저작의 하나다.
그럼에도 여기서 데이비드 하비의 경제 위기 이론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이 20세기 후반 이후 지속돼 온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위기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2007~2008년 시작된 경제 위기가 회복되기는커녕 장기 불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진영은 이 위기에 대한 설명을 두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론, 과소소비론 그리고 금융화론 등으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하비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찍이 1982년에 그가 쓴 기념비적인 저작 《자본의 한계》에서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이 법칙이 불완전하고 엄격하지 않다는 단서를 달아, ‘법칙’으로서의 성격을 크게 약화시켰다.
《자본의 한계》에서 하비는 경쟁적 축적의 과정이 미래의 축적과 자본주의의 ‘균형적 성장’을 파괴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주장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기술 변화를 향한 자본가들의 불가피한 열정이 ‘축적을 위한 축적’이라는 사회적 규정력과 결합될 경우, 그 자본을 사용하기 위한 기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잉된 자본을 만들어냄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이러한 자본의 과잉생산 상태는 ‘자본의 과잉축적’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과잉축적”이라는 용어가 모호하긴 하지만 이 주장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 자본축적이 자본의 이윤 추구 능력보다 앞서 이루어지면서 계속 축적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는 의미다. 자본을 ‘스스로 확장하는 과정에 있는 가치’라고 본다면 높은 이윤율을 얻을 수 있는 자본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자본가들이 왜 우려하겠는가. 이 점에서 하비의 과잉축적 개념이 뜻하는 것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투자 기회의 부족을 근본 문제라고 보는 셈이다. 이 설명은 결국 이윤율 저하를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른 하나의 설명은 이윤에 대한 강조에서 소비에 대한 강조로 옮아가는 것이다. 하비는 《자본의 한계》를 쓸 당시 과소소비론적 설명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위기에 대한 핵심 주장과 부차적 주장을 절충함으로써 논의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는 《자본의 수수께끼》에서 자본주의 위기를 설명하는 이윤 압박 이론, 이윤율 저하 이론, 과소소비 이론의 세 가지 설명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위기의 발생에 관해 숙고하는 데 훨씬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자본의 순환에 관한 분석은 여러 잠재적 한계와 장애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화폐자본의 부족, 노동문제, 부문 간의 불비례, 자연적 한계, (경쟁 대 독점을 포함한) 불균형적인 기술적·조직적 변화, 노동과정의 규율 약화와 유효수요의 부족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하비는 “기술과 조직 변화의 과정이 어떻게 필연적으로 이윤율을 저하시키는지에 관한 맑스의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자본, 시장에 가다’ 장에서는 유효수요, 자본가들의 소비 등을 강조하고 있는데, 거기서 그가 말하는 ‘과잉축적’이란 낮은 이윤율이 아니라 과소소비와 연결된 개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최근 마이클 로버츠와의 논쟁에서 하비는 “경제 위기를 구성하는 유일한 인과적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위기가 상이한 시기와 맥락 속에서 상이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단일한 인과적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그저 상관관계만 있을 뿐인 여러 요인들을 절충하는 것이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 왜 중요한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 자본주의 경제에 위기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정교하게 주장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축적을 추동하지만 그 자체의 파멸적 요소를 담고 있는 결정적 요인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라고 주장했다. 자기증식을 하는 가치로서 자본은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뽑아 내야만 가치 증식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자본들 사이의 경쟁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높이는 방식의 축적을 강요한다. 그러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과정은 자본 일반의 이윤율을 하락하게 만든다.
그러나 하비의 주장처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결정적이지 않다면 그 법칙은 과소소비, 유효수요, 금융화 등의 요인들과 다를 바 없는 지위로 격하된다. 그리고 이윤율은 그것의 경향적 저하를 상쇄시키는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쉽사리 상승할 수도 있게 된다.
사실, 상쇄 요인은 축적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 그 이유 하나는 불변자본의 저렴화가 미리 투자한 자본가들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값비싼 기계류에 이미 투자한 자본가는 그 기계류의 가격이 하락하는 것에서 득을 보지 못한다. 다른 한편, 후발 투자자들은 값싼 기계를 사용해 생산하기 때문에 그들이 생산하는 산출물의 가치는 하락한다. 그리고 산출물의 가치 하락은 선발 투자자들의 이윤을 하락시키고 이어서 전체 자본의 이윤도 하락하게 하는 압력을 가한다.
급속한 자본축적의 시기에는 이윤율 저하 경향이 상쇄 요인들보다 더 우세한 모습을 보인다. 그 이유를 크리스 하먼은 《좀비 자본주의》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자본가들은 그 경쟁자들보다 앞선 기술 혁신을 추구하는데, 일부 기술혁신은 자본집약적이지 않은 기술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생산수단을 필요로 하는 자본가들도 존재할 텐데, 그중 성공하는 자본가는 노동집약적일 뿐 아니라 자본집약적인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투자를 하는 쪽일 것이다. 그러므로 흔히 기술 혁신은 전체 자본에 상쇄요인이 아니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재촉하는 요인이 된다.
실증의 문제
하비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입증하는 통계 데이터가 존재하는지 의문을 나타낸다. 그는 《자본의 한계》에서 “1945년 이후 미국에서 기업 이윤들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그 역사적 기록에 의존하여 이 법칙을 입증하거나 반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현대 자본주의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주요 자본주의 경제의 이윤율이 하락했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을 다른 요인들이 아닌 마르크스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하비는 이윤율의 하락을 마르크스의 법칙이 아닌 다른 이유들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쟁점과 관련해서는 마이클 로버츠, 굴리엘모 카르케디, 안와르 샤이크, 프레드 모슬리, 앤드류 클리먼 등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19세기의 가장 주요한 자본주의 경제였던 영국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제였던 미국에서 이윤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1870년대 이후와 특히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의 많은 국민자본들의 이윤율을 측정한 성과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제시한 통계들은 모두 세세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대체로는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하락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하비는 이윤율이 저하하더라도 그것이 마르크스의 법칙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 때문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이윤은 많은 원인들 때문에 하락할 수 있다며 수요의 감소(포스트케인스주의의 설명), 임금 인상(이윤압박설의 설명), 자원의 희소성, 독점(비독점 자본으로부터 지대의 추출) 등을 제시한다. 여기서도 하비는 절충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의 핵심은 여러 가능성들 가운데 핵심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주장을 좇아 이윤율 저하 경향을 실증적으로 입증해 보였고, 이윤율 저하 경향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 때문임을 증명해 보였다. 하비가 말한 다양한 요인들은 위기에서 부차적 구실밖에 하지 않았다.
앞서 지적했듯이, 하비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널리 알리고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내용을 심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하비의 경제위기론이 지닌 약점과 특히 그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다소 안타깝다. 그럼에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장기 불황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논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한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 체제에 효과적으로 도전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