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은 학생회로 환원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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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한 씨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차이가 별로 드러나지 않은 현상이 올해에 강화됐다”고 주장한다. 우선, ‘비운동권’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올해와 지난해 서울대 총학생회는 반전 운동 등에서 보듯이 중도좌파 성향의 총학생회였다. 이런 곳들과 운동·투쟁에 적대를 나타내는 우파적 또는 중도우파적(사회 전체로 보자면 우경적 자유주의 정도이지만 대학의 이데올로기 지형에서는 상대적 우파로 느껴진다) 총학생회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중도우파와 우파를 비교한다면 차이가 없지 않다.
한규한 씨는 우파 선본인 ‘세계화 학생회’와 많은 좌파 선본들이 모두 “자본주의 경쟁” 이데올로기를 수용했다며 둘을 도매금으로 취급했는데, 이것은 매우 추상적인 인식법이다. ‘세계화 학생회’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대세임을 강조하며 대학의 경쟁력을 주창한 단체인 반면, 많은 좌파들(반미청년회 계열도 포함해)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해 왔고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그 결과 ‘세계화 학생회’는 이번 총학생회 선거에서 전혀 지지를 얻지 못했다.
한규한 씨는 운동권의 ‘비권화 전략’에 매우 비판적인 듯한데, 이른바 ‘비권화 전략’이라는 것이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검토가 필요하다. 만약 교육환경 개선과 복지 공약, 등록금과 청년실업 문제를 주요 정책으로 내놓는 것을 두고 운동권의 ‘비권화 전략’이라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부당한 일이다. 이것은 학생들의 가장 주요한 관심사이고 학생회가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마땅하다. 거대한 학생 투쟁들은 학생들의 교육 환경에 대한 문제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
똑같은 교육·복지 공약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을 둘러싸고 좌파와 중도우파 선본은 차이를 빚을 수 있다. 좌파 선본이 투쟁을 강조하는 반면, 중도우파 선본은 투쟁 일변도 방식을 비판하며 합리적 인상 기준에 따른 협상을 강조할 수 있다(예컨대 연세대 신임 총학생회장).
또, 운동권의 ‘비권화전략’이라는 것이 학생회라는 조직의 성격에 걸맞도록 학생 좌파의 정치적 주장을 완화·조정하는 것이라면, 이것도 마땅히 필요하다. 학생회는 공동전선 성격의 조직이지, 특정 정치 조직의 소유물이 아니다. 노무현에 실망해 더는 그를 지지하지 않게 된 학생들 상당수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그들과 함께 행동하기 위해서는 타협이 불가피하다.
예컨대 변혁적 사회주의자가 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이라크전쟁 반대와 교육환경 개선 등을 학생회의 투쟁 과제로 내세울 수는 있지만, 사회의 근본적 변혁이라든지 변혁적 정당 건설 등을 학생회에서 관철시키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후자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조직이 필요하다.
물론 일부 운동권 후보들의 타협 정도가 지나친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서강대의 한대련 계열 후보들은 학생회의 ‘정치적 중립성’ 압력에 타협해 전임 총학생회장의 한나라당 박근혜 비판 기자회견을 문제 삼는 데까지 너무 나아갔다. 또, 고려대 반미청년회 계열 후보는 “강한 나라”를 내세웠는데, 심지어 저항적 민족주의인지 패권적 민족주의인지가 헷갈릴 정도의 구호들을 내놓았다(“동북아 물류, 교통의 중심지, 경제강국 COREA”).
타협의 정도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점은 대부분의 학생 좌파 단체들이 자신의 활동을 학생회로 용해시키곤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생 좌파들은 정치를 학생회 수준으로 낮춰 개량주의적으로 활동하거나, 학생회를 아예 특정 좌파 단체와 등치시키는 양극단의 오류를 반복하곤 한다. 학생회와 (학생) 정치 단체를 혼동하지 말아야 하며, 둘의 각각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