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대학살의 이면:
제국주의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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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대량학살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잔학한 짓이었다. 희생자들은 거의 다 성소수자들이었고, 그들은 대부분 지난해 파리 참사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건의 끔찍함에 압도되기보다는 서구에서 일부 무슬림 청년들이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이하 아이시스)에 이끌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무차별적인 학살까지 벌이게 되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물을 필요가 있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 지배자들은 제국주의적 중동 개입과 이민자 차별을 정당화하려고 오랫동안 무슬림 혐오를 부추겨 왔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을 막자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미국 지배자들이 그동안 인종차별을 자행하고 무슬림들을 공격한 데 힘입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은 중동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거듭 군사력을 사용했다. 중동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해야 중동 석유를 통제해 다른 경쟁국들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미국의 중동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주요 동기가 제국주의 국가들 간 경쟁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걸프해
게다가 걸프해 연안은 세계 자본주의의 중요한 허브이고, 이 지역 정권들은 전 세계에서 금융을 비롯한 굴지의 기업들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도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조지 W 부시 정부 때 미국은 엄청난 군사력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해 중동에서 끔찍한 재앙을 낳았다.
오바마는 전임 정부보다는 중동에서 대규모 군사 개입을 꺼리고 훨씬 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부시 정부 때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한 타격이 큰 데다 2008년 경제 위기가 이런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줬고, 또한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조심스러웠을지언정 중동에서 계속 군사력을 사용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오바마 정부는 출범 초부터 전임 정부 때 망가진 미국의 “지도력”을 재건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중동에 대한 지배력 유지는 경쟁 제국주의 국가들을 압도하는 미국의 지도력에서 핵심 요소다.
오바마는 선거 때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오히려 집권 후 아프가니스탄으로 대규모 병력 증파를 단행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드론(무인기) 공습을 대대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오바마의 전쟁이 된 것이다. 드론 작전은 나중에 예멘과 소말리아 등지로 확대됐다.
미군의 드론 공습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이 엄청 늘어났다. 한 예로 2013년 12월 미군은 예멘에서 결혼식 참석 차량을 드론으로 공격했는데, 이 공격으로 민간인 최소 14명이 살해됐다. 오바마 정부는 이런 희생을 모두 ‘부수적 피해’로 취급했다.
지난해 12월 언론에 폭로된 미국 정부 기밀 문건에는 드론 공습으로 사망한 “의도치 않은 사망자”가 실제 목표보다 많은 적이 있었다고 돼 있다. 예컨대 5개월간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숨진 사람 중에 실제 목표는 10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리고 2011년 오바마는 파키스탄에 특수부대를 투입해 숨어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기에 이르렀다.
아랍 혁명
오바마는 2011년 아랍 혁명을 굴절시키기 위해서 책략을 부리고 군사 개입을 벌였다.
아랍 혁명은 미국의 중동 패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만한 사태였다. 튀니지의 벤 알리나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을 비롯해 미국의 아랍 “친구들”이 무너지거나 흔들리고 있었다.
혁명의 파고가 높아지자, 오바마 정부는 위선적이게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같은 “미국적 가치”가 아랍 지역에서 실현돼야 한다며 아랍 혁명에 우호적인 시늉을 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오바마 정부는 아랍 혁명을 뒤틀어 버리고 궁극적으로 패배시키려 노력했다.
오바마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바레인에 군대를 보내 민중 저항을 진압하는 것을 수수방관했고, 예멘과 이집트 등지에서 반혁명 세력을 지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토(NATO)를 앞세워 리비아를 폭격하는 군사 개입을 단행했다. 독재자 카다피한테서 리비아 혁명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 군사 개입으로 아랍 혁명이 심화·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고 리비아 혁명을 가로채기 위해서였다.
나토의 군사 개입으로 서방의 꼭두각시들이 리비아 혁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리비아 혁명을 시작한 저항군은 나토가 혁명을 도둑질했다며 분노했다. 결국 2012년 무장한 시위대가 리비아 뱅가지에서 미국 영사관을 공격해 미국 대사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은 아이시스를 격퇴한다며 이라크를 폭격하기 시작했고 곧 시리아로까지 폭격을 확대했다. 그리고 시리아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각축장이 돼 버렸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이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갖고 시리아 사태에 뛰어들었고, 그 와중에 중동 지역강국들 사이의 갈등도 첨예해졌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시리아에 개입하는 가운데, 시리아는 각 국가들과 연계를 맺은 국내 세력들에 의해 영토가 갈기갈기 찢겨졌다. 폭격 등으로 수많은 시리아인들이 희생됐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수많은 사람들은 난민이 돼 곳곳으로 흩어져 있다.
시리아
이처럼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각축장이 되는 가운데, 자신의 중동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의 대응은 중동 곳곳에서 엄청난 희생을 낳았다. 그만큼 현재 중동 상황은 제국주의 체제가 얼마나 야만적이고 위험한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제국주의적 개입으로 중동이 폐허가 되고 혼란이 가중되면서 아이시스 같은 무장 집단이 반동적 유토피아를 내세워 국가를 세우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제국주의의 중동 개입에 분노한 일부 무슬림들이 아이시스의 선동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9·11 이후 최악의 ‘테러’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올랜도 대량학살을 계기로 미국의 중동 개입 수준이 더 위험한 수준으로 나아갈지는 아직 모른다. 평소에도 무슬림들을 물어뜯는 도널드 트럼프만이 문제는 아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도 “국내외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중동뿐 아니라 유럽·동아시아 등 세계 자본주의의 주요 지역에서 제국주의 간 갈등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도리어 심화할 것 같은 경제 위기 속에 국가 간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공산도 커졌다. 그리고 이것이 지정학적 경쟁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다. 자본주의 체제가 낳는 온갖 불의에 분노하고 이 체제를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제국주의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