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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중화항공 승무원들이 파업에 나서다

왕야팡씨는 이화여대 대학원에 재학중인 대만인 유학생이다.

6월 23일 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시 중심지에 위치한 중화항공(China Airlines) 타이베이 지점 앞에서 중화항공 승무원 1천여 명이 모여 ‘승무원 파업 절대 승리!’ 등 구호를 외치며 24일 0시에 파업에 돌입하기로 선언했다.

중화항공은 대만 최대의 항공사로, 정부가 35퍼센트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중화항공 승무원은 모두 3천2백여 명인데, 그 중 2천6백41명이 타오위안시승무원직업노조(桃園市空服員職業工會)에 가입해 있다. 이번 파업에는 노조원의 99.5퍼센트인 2천6백38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파업 승무원 노동자들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는 중화항공 사측이 23일 밤 23시쯤에 이튿날 67편의 노선을(아침 6시~밤 10시, 승객수 2만 명) 취소한다고 공지할 수밖에 없었던 데서 짐작할 수 있다.

대만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항공 승무원 파업은 SNS및 대중매체 보도를 통해 순식간에 대만 노동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 파업이 오랫동안 심각한 과로(過勞) 문제에 시달려 온 대만 노동자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승무원들의 파업은 계속되고 있다.

노동조건 개악을 강요하는 중화항공 사측

중화항공 승무원들이 파업을 하게 된 것은 지난 5월 5일 사측이 사전에 노사협상도 없이 승무원들에게 노동조건을 개악하는 내용을 문자 메시지로 통보한 것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6월 1일부터 모든 승무원이 타오위안(대만 최대의 국제공항)으로 출근해야 하며 회사측이 작성한 「노동기준법 제84-1조 약정서」에 서명하라는 것이었다. 중화항공 사측이 제시한 두 가지 사항은 승무원들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근무시간을 노동기준법에서 규정한 것보다 크게 늘리는 것이어서 즉각 승무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출근 장소를 일률적으로 타오위안으로 정하는 것은 실제 출근 장소의 변경이 아니라 근무시간 계산 방식의 변경을 의미한다.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출발할 비행기 업무를 하는 승무원은 비행기 이륙 140분 전에 송산(타이페이 시에 있는 국제공항)이나 타오위안(대만 최대의 국제공항이자 중화항공 본사 소재지)에 출근하면 근무시간으로 계산된다. 송산으로 출근하는 승무원은 회사 버스로 타오위안으로 와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비행기 착륙 후 60분 안에 행동이 불편한 승객의 부조(扶助), 객실 정리, 면세품 판매소득의 인계 등을 한 다음 업무를 마감한다.

그런데 이번 노동조건 개악으로 승무원은 비행기 이륙 90분 전에 타오위안으로 출근하고 착륙 후 30분 안에 일을 마쳐야 한다. 즉 지금까지 노동시간으로 계산돼 온 송산-타오위안 통근시간 50분이 더 이상 근무시간으로 인정되지 않게 됐다. 승무원들이 해야 할 일은 줄어들지 않았음에도 비행기 착륙 후 업무 마감 시간은 60분에서 30분으로 단축됐다. 결국 승무원은 자신의 휴식시간을 줄여 일을 해야 했다.

요약하면, 이번 개악은 현행 노동시간 계산을 ‘이륙 전 140분~착륙 후 60분’에서 ‘이륙 전90분~착륙 후 30분’으로 축소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는 80분의 노동시간을 더 착취당하는 셈이다.

"파업", "우리는 중재가 아니라 파업을 원한다" ⓒ桃園市空服員職業工會 Facebook page

악랄하게도 사측은 ‘줄어든’ 80분을 활용해 승무원을 더 많이 일하게 할 수 있게 됐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승무원은 12시간 이하의 비행 업무를 마치면 12시간의 휴식, 그리고 12시간 이상의 비행 업무를 하면 24시간 휴식을 취하게 돼 있다. 그런데 ‘줄어든’ 80분 덕분에 사측은 더 많은 항공편을 짤 수 있게 됐다. 예를 들면 타이베이-시드니 비행업무 시간은 원래 12시간 40분으로 12시간이 넘는다. 그래서 착륙 후 승무원은 24시간을 쉬어야 다시 일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새 노동시간 계산 방식으로는 12시간 뒤에 다시 일해야 한다.

승무원의 노동시간을 합법적으로 늘리기 위해 중화항공 사측은 대만 노동기준법에서 악명 높은 제84-1조를 악용했다. 이 법 조항에 따르면, 특수직종의 경우 근무시간, 법정 휴일, 휴가, 여성 야간근무 등에 관해서는 노동기준법이 아니라 별도로 노사간 협약으로 정하도록 돼 있다. 중화항공 사측은 노사간 협상도 없이 승무원에게 강요한 약정서에서 월 노동시간 상한을 220시간까지 늘린 것이었다. 이는 대만 노동기준법에서 규정한 174시간보다 46시간이나 더 많다.

대만 노동자들을 고무하는 파업

현재 대만 노동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세계4위다. 과로가 대만 노동자들의 삶의 일부가 된 지 오랜다. 게다가 매년 경제가 성장해 기업의 이윤몫이 늘어났음에도 노동소득분배율은 해마다 감소해 왔다. 이러다 보니 대만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무려 16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20대와 30대의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대만은 귀도(鬼島, 대만판 헬조선)로 불린다.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해졌지만 노동운동은 한국에 비해 현저히 조용하다. 이는 대만의 경제구조(중소기업 중심), 비교적 엄격한 노조 조직화 조건, 주로 사측이 주도하는 단일노조제도(민주노조가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 등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요즘 대만에서는 노동시간을 늘리고 국정 공휴일을 없애려는 노동부의 시도가 노동단체와 노동자들 사이에서 큰 쟁점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화항공 승무원의 파업은 대만 노동자들을 크게 고무할 것이다. 항공편 취소로 불편을 겪은 어느 승객은 “내가 중화항공의 취소된 항공편 승객이다. 승무원 파업을 지지한다”는 팻말을 들고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기도 했다. 파업 승무원이 쓴 파업의 정당성을 호소한 글이 하루 만에 5만 명에게 공유됐다. 이런 열정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타오위안 시 승무원 직업노조가 발표한 파업 선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선언은 대만 노동자의 힘든 상황을 다음과 같이 대변하고 있다.

“지금 자본가들은 잔업이 심신의 건강에 유익하다거나 휴가를 원하는 사람은 성취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안하무인으로 발언하고 있다. 21세기 대만의 노동자들에게 휴식은 이처럼 얻기 힘들게 됐다. ... 이번 파업은 휴식시간을 위한 투쟁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잘 사는 노동자로 여긴다. 그러나 현실은 한 달에 8일의 휴일조차 보장받지도 못하고,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충혈된 눈을 하면서 항공편 근무를 하고 있다. 항공 승무원들은 결코 탐욕스럽지 않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만, 고용주에게 소유되지 않을 때만, 노동자가 비로소 한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항공 승무원인 우리는 인간으로 사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고 싶을 뿐이다.”

“지금 대만은 노동시간 단축, 국정 공휴일을 19일로 유지할지 말지를 둘러싼 논의가 치열한다. 타오위안시승무원직업노조는 이 쟁점에서 노동자들의 선봉에 나설 것이다. 이번 파업 행동을 통해 우리는 대만이 장시간 노동시간의 과로시대와 결별해야 한다는 점을 자본가와 국가에게 알려 주겠다.”

대만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틀림없이 큰 진전이 될 중화항공 승무원들의 파업에 한국 노동자들이 지지와 응원을 보내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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