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대만 에바항공 승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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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4시부터 대만 타우위안시 승무원직업노조(桃園市空服員職業工會) 소속 에바항공 분회 조합원들이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에바항공에 따르면 20일 오후 4시부터 36개 비행기 편 가운데 22개의 비행이 취소됐고, 여객 8628명이 영향을 받았다.
에바항공(EVA AIR)은 중화항공에 이어 대만 제2대 항공사다. 노조의 파업 통지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조합원 수백 명이 에바 항공 본사 정문에 모여 피켓라인을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에바 항공의 권위주의 우리가 타파하겠다”, “승무원의 과로 즉각 끝장내라”, “대등한 교섭, 우리의 투쟁에 의해 실현한다” 등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노동자들은 사측에 즉각 성의 있는 협상 방안을 마련해 교섭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사측은 관리직 직원들을 동원해 조합원들의 피켓라인을 파괴하려 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한 파업 조합원은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예전에 근무하던 비행기에서 대만으로 원정투쟁 하러 온 한국 하이디스(HYDIS)조합원들을 봤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나도 이렇게 투쟁하게 됐다. 보통의 노동자라도 어느 날 투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회사가 우리에게 합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쟁하는 것이다.”
20일 저녁 노조는 전체 조합원 3천 명 가운데 1천 명이 파업에 참가했다고 발표했다.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해외에 근무 중이어서 그들이 귀국하면 참가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대만 노사쟁의처리법25조에 의하면 민중 생활과 이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 정부는 강제 중재를 통해 파업을 중지시킬 수 있다. 그러나 대만 정부는 아직 강제 중재를 선포하지 않고 있다.
파업 선언 후 노조 측은 이번 파업에서 ‘타이페이-근문’ 노선을 제외해 국내선 운영에는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에바항공사는 1400명의 승무원을 동원할 수 있으므로 국내 운송에 지장이 없다고 대외적으로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노조 측은 사측이 타이페이-근문 항로에 우선 인력을 배치하라고 요구했다. 또 파업으로 인해 국내선 운영에 지장이 생길 경우 노조가 인력을 지원해 국민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발표했다.
2년을 넘긴 교섭
에바항공 분회는 2016년 6월 만들어졌다. 당시 중화항공 승무원의 파업 승리에 자극받아 불과 며칠 만에 승무원 1500여 명이 타우위안시 승무원직업노조에 가입했다. 에바항공 분회는 2017년 4월부터 에바항공과 협상을 시작했는데 노조의 주된 요구는 장거리 노선 근무 등 과잉노동 개선, 해외 노선 승무원에 대한 수당 인상, 노조 출신 인사의 관리직 채용 등이었다. 1년 반 동안 20차례 단체교섭에서도 사측은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않아 노조는 2018년 11월 29일 협상을 중단했다.
타우위안시 정부의 노사쟁의 조정도 4월 17일에 최종 결렬돼다.
노동조합은 파업 찬반 투표를 5월 13일로 예고했다. 그러자 사측은 조합원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5월 8일에는 파업에 들어가면 연말 보너스, 임금 인상을 없애고, 직원 특혜 티켓도 취소하겠다는 공문을 돌렸다. 이것은 분명히 노조법을 위반한 것이다.
파업 투표 시작 전에는 노동조합의 파업 찬반 투표 절차에 허점이 많다는 중상을 했다. 투표 기간에도 승무원 교통 버스 승하차장을 임의로 바꾸고, 승무원 출근표를 고의로 불합리하게 짜거나 투표 부스를 촬영하는 등 파업을 막으려 했다.
6월 7일 투표 결과가 발표됐는데, 전체 조합원의 68퍼센트인 4038명이 파업에 찬성했다. 특히 에바 분회는 90퍼센트 이상인 294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대만 교통부는 노조가 파업에 나서면 다른 항공회사에게서 인력을 조달하고, 그것도 부족하면 군 전용 비행기, 선박을 동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조 측은 정부가 사측을 옹호하고 노조를 파업으로 내몬다고 규탄했다.
이후에도 에바항공은 노조의 8대 요구 사항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심지어 노조의 파업이 불법이라며 비난했다. 결국 노조는 6월 20일 오후 4시에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의 8대 요구 사항
- 출장비(Per Diem)를 시간당 150NTD(신타이완달러, 약 5600원)으로 인상하라. 비조합원 적용 대상에서 제외.
- 도쿄, 베이징, 프놈펜, 호찌민, 하얼빈, 심양, 후허호트 등 근무시간이 연속 12시간에 가까운 9개 비행기 항로를 2일 근무로 변경하라.(노동강도 완화 요구)
- 노조가 인사평가회 등 징계 절차에서 발언권과 표결권을 갖도록 하라.
- 노조에 독립적인 이사 추천권을 주거나 노동자 이사로 참여시키라.
- 국정 공휴일(national holiday)에 출근할 경우에 임금 200퍼센트를 가산하라.
- 각 비행기 편은 외국인 승무원 2명 이상 파견하지 말 것.
- 타우위안시 승무원직업노조의 이사, 감사 및 회원대표에 노조 업무로 인한 공가 보장하라.
- 현행 노동 조건 및 작업 규칙을 변경할 때 미리 노조와 협상하라.
막대한 이익에도 노동자들은 천대하는 에바항공
에바항공의 수익은 매년 최고치를 경신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스카이트랙스, 에어라인레이팅 등에 의해 5성급 항공, 전 세계 10대 안전 항공 회사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승무원의 대우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에바항공 신입 승무원의 임금은 중화항공보다 1만 NTD(37만 5000원)적고, 다른 나라 항공사에 비하면 격차는 더욱더 심하다. 게다가 최근 2년 동안 에바항공은 근로감독 결과 무려 120차례나 법을 어긴 것으로 판단돼 100만 NTD(3750만 원)의 벌금을 받기도 했다.
에바항공의 모회사 장용재벌(長榮集團)은 대만에서 두 번째로 많은 영업 수입을 거둔 기업이다. 장용재벌은 권위적인 일본식 경영, 노조 금지 등으로 유명하다. 2016년 승무원 노조가 결성되고 나서야 장용재벌 무노조 경영 신화가 깨졌다.
에바항공 총지배인 손가명(孫嘉明)은 20일 오후 4시 반 기자회견을 열어 전에 예고한 조처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즉 파업으로 수익에 타격을 줄 경우 수익 회복 전까지 연말 보너스 지급 정지, 임금 인상 중지, 직원 및 직계 친족 할인 비행기표 지급 중지 등이다. 파업 기간 출근자는 벌칙에서 제외된다. 사측은 보너스로 승무원을 회유하려 한다. 파업 기간 휴가를 가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출근 상여금으로 사무장은 2만 NTD(75만 원), 부사무장 이하 승무원은 1만 NTD(37만 5000원)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래는 ‘대만 타우위안시 승무원 직업 노조 에바항공 승무원 파업 선언’을 요약한 것이다. 에바항공 노동자들의 파업에 지지를 보내자.
우리는 최고 정책 결정자, 그리고 에바항공의 모든 주주에게 말한다. 이 회사가 증명해야 하는 것은 회사가 노조를 두려워하지 않거나 심지어 노조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며 우리 회사는 보다 민주적인 회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조가 의견을 내고 행동할 수 있으며 노동에 상응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회사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노조는 에바항공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업임을 스스로 증명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은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3년 전, 중화항공 파업 때, 차이인원(蔡英文) 총통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돼야만 노동자가 파업에 나설 것이다” 하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정부가 이 나라에서 재벌과 노동자 간에 이익분배의 거대한 차이에 주목하여 시정하는 행동에 나서기를 바란다.
우리는 또한 인터넷상에서 파업과 노조를 매도하는 민중에게 호소하겠다. 당신이 비행기편 취소로 불편을 겪게 된 사람이든, 대만 노동자는 현 상태에 만족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든, 심지어 노조를 비판하는 것을 자기 일로 삼고 있는 사람이든 다 상관없다. 우리는 대만 사회에서 절대다수는 이 시각에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런 고통을 끝장내기 위해 누군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에바항공 승무원이 왜 앞장서서 투쟁해야 하는지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이와 동시에 당신도 일하다가 겪게 된 각종 불공정한 일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우리는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대만 기업들이 더 민주적으로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을 대만 사회 모든 구성원이 인식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