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과 여성차별을 더 악화시킨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 연대〉 구독
6월 27일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일호는 박근혜 정부의 연내 목표였던 고용률 70퍼센트 달성이 물 건너갔다는 비판에 대해 “고용률 70퍼센트 달성 목표 포기한 것 아니다”고 강조했다. 같은 자리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이기권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시급히 추진해 고용률 70퍼센트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28일) 박근혜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에 방문해 ‘여성들이 경력단절 때문에 직장에 복귀하기 어려운 현실이 없게 하겠다’고 밝혔다. 시간제 일자리를 더 많이 늘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통계들은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이 저질 일자리만 양산했다는 걸 보여 준다.
저질 일자리
통계청이 2016년 3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6백15만 6천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4만 4천 명이 늘었는데, 시간제와 한시적 노동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시간제 노동자는 전년 동월 대비 13만 1천 명 증가했다.
시간제 노동자 중 대부분이 여성이다. 여성가족부가 6월 28일 발표한 ‘2016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전체 시간제 노동자 중 72퍼센트가 여성이다.
그동안 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근무시간만 짧을 뿐, 정규직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국민연금·고용보험을 보장받고, 무기계약직인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전체의 5.9퍼센트밖에 안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신경아 한림대 교수).
그 외 대다수 시간제 일자리는 매우 열악한 저질 일자리다. 고용형태별로 봤을 때 최저임금 미달자 비율은 가정 내 근로를 제외하면 시간제 일자리에서 가장 높다. 전체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는 13.7퍼센트인데, 시간제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달율은 42.4퍼센트에 이른다(2016년 3월 기준). 이는 93만 8천 명에 이르는 규모다. 또한 시간제 노동자 중 55만 9천 명가량은 최저임금의 90~110퍼센트를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김유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즉, 절반이 넘는 시간제 노동자(67.4퍼센트)가 최저임금 수준 혹은 그 이하를 받는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게다가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미사여구와 달리 시간제 노동자들은 계약 시간보다 장시간 일하고, 초과 근무수당도 거의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간제 노동자 중 시간 외 수당을 적용 받는 비율은 9.9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초과 근무수당이 규정에 있지만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상여금·유급휴가 적용 비율도 각각 19퍼센트와 10퍼센트로 매우 낮았다(2016년 3월 기준).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가 ‘경력 단절 여성’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시간제 노동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1.6년으로 매우 짧았고 1년 미만이 62.8퍼센트였다. 2015년 8월에 견주면 근속기간은 한 달가량 줄었다.
시간제 노동자는 학력이 고졸 이하에 몰려 있고, 그중 중졸 이하의 비율도 크다. 이는 50~60대 여성이 시간제 일자리로 많이 유입된 것과 관련 있는 듯하다. 즉 여성, 저학력, 노인층 등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어서 열악한 조건을 감수하고 일해야 하는 층이 시간제 일자리로 몰리고, 이 부문의 처지를 더 악화시키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가 노후 대책인 양 말하는데, 황당한 일이다. 노인이 돼서도 복지 혜택은 언감생심이고, 골방에서 쓸쓸히 죽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정부는 노인 복지를 대폭 늘리긴커녕 공적 연금을 깎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우리에게 죽을 때까지 저질 일자리에서 일하라는 것이다.
자발적 선택?
이런 열악한 조건 때문에 시간제 일자리는 강요된 선택인 경우가 태반이다. 정부는 자발적 선택이 60퍼센트 이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진정한 자발성으로 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설문 응답자들이 “본인이 의지적으로 이 일자리에까지 왔다는 의미에서 자발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여성친화형 일자리로서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의 효과와 개선과제〉). 오히려 2015년 통계청 조사를 보면 비취업자 1천6백94만 5천 명 중 전일제 일자리가 있어도 시간제 일자리를 택하겠다는 사람은 5퍼센트밖에 안 됐다.
고용노동부는 2015년부터 신규채용만이 아니라 전환형 시간제 일자리를 추진해 왔다. 전환형 시간제 일자리는 출산·양육 때문에 잠시 시간제로 전환했다가 일정 기간 후 정규직으로 복귀하는 제도다. 경력 단절과 그로 인한 여성 차별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실상은 정규직 일자리를 시간제로 쪼개는 것이다.
또한 현실에서 임신 출산 때문에 전환형 시간제 근무를 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 때문에 동료의 업무 부담이 과중해지는 것에 눈치를 보게 되고, 마치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이 때문에 눈치를 보지 않으려면 남아서 초과 업무를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된다. 또한 실적 경쟁이 중요시되는 직장에서 승진에서 뒤쳐지는 등 인사상 불이익도 여전하다(〈여성친화형 일자리로서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의 효과와 개선과제〉). 여성 차별을 개선하는 효과는커녕 오히려 여성에게 보육도 전담하면서 고된 노동도 눈칫밥 먹으며 하라는 뜻이다.
또한 시간제로 전환한 후 다시 정규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보장은 분명치 않다. 정부가 모델로 삼는 독일과 네덜란드의 사례를 보면, 시간제와 파견제 일자리가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해 저임금층이 대규모로 늘었다. 독일은 경제 위기 시기에 단기 일자리인 미니잡을 크게 늘렸는데, 경제가 일정 회복된 이후에도 새로 생겨난 일자리 중 80퍼센트 이상이 비정규직이었다. 시간제로 바뀐 일자리가 정규직으로 회복되지 않은 것이다.
또한 네덜란드는 시간제 일자리 증가로 여성들의 조건이 악화돼 차별이 심각해졌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이 남성보다 상당히 낮고, 이 때문에 여성은 다시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당연히 한국의 노동자들도 이 점을 우려한다. 고용노동부는 6월 말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전환형 시간제 수요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30대 여성의 선호가 높았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총 30만 1천 명가량이 참가한 이 설문조사는 오히려 남녀 막론하고 절반이 넘는 노동자들이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줬다(15만9천명. 52.8퍼센트). 3년 이내에 임금이 20퍼센트 이상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하고 싶다는 노동자는 전체 설문자의 4.1퍼센트에 그쳤다.
경제 위기, 노동유연화, 시간제 일자리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이런 저질 일자리를 확산하는 데 예산을 쏟고 있다. 시간선택제 신규창출 지원사업 예산은 2013년 91억 원에서 올해 4백2억 원으로 급증했다. 정부는 민간부문에는 무기계약직 및 최저임금 1백30퍼센트 이상을 지급하는 시간제 일자리 창출 기업에는 인건비의 50퍼센트를 1년간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노동부가 돈을 퍼부어서 지원하는 시간제 일자리 상황은 어떨까. 정부는 공공부문부터 시간제 일자리를 빠르게 늘려 왔다.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연구원의 심층면접 조사에 따르면 시간제 공무원은 8시간짜리 노동을 4시간 안에 “구겨 넣기” 할 정도로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복지와 임금에서 차별은 여전하다.
민간부문 시간제 일자리도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에 호응했던 10대 대기업에서 비정규직 일자리는 무기계약직조차 드물고 대부분 단기간 계약직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 때문에 무기계약직 전환을 회피하고자 시간제 노동자 해고 문제도 벌어지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에 호응하면서 2012년 15명이었던 시간제 노동자를 3천60명으로 대폭 늘려 왔다. 이마트는 시간제 노동자를 모집하면서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받는다고 홍보했지만 풀타임 정규직에 비해 급여, 병가, 복지에서 모두 차별을 받고 있다. 최근 이마트가 2년 동안 근무한 시간제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려 해고 통보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기재부 장관 유일호와 고용노동부 장관 이기권은 브렉시트 등 예상치 못한 세계경제의 하방 압력으로 고용률 달성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저들이 대외적 불확실성에 대비해 더욱 빠르게 노동유연화와 시간제 일자리 확대에 매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시간제 일자리는 여성, 청년, 노인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없다. 시간제 일자리 확대에 들어갈 돈으로 제대로 된 국공립보육시설의 확충과 유급·육아 출산 휴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국가는 책임지고 공공부문의 질 좋은 일자리를 확충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며 기존 일자리를 공격하는 정부의 시도에 반대하고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