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국사회주의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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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가 국제적이어야 하는 근본 이유는 두 가지다. 그리고 그 둘은 모두 자본주의의 본질에서 비롯한다.
첫째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 구체적이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성과 가운데 하나는 세계시장의 형성이었다. 우리 자신의 일상 생활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 상품에 의존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아침에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끌어모은 혼합 섬유나 면으로 만든 이불 속에서 깨어난다. 침대도 세계 각지의 나무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우리가 발걸음을 내딛는 마루바닥도, 바닥에 까는 장판이나 깔개도 다 마찬가지다.
아침식사로 먹는 시리얼과 커피와 차는 아프리카·아메리카·아시아에서 왔을 것이다. 우리가 출근할 때 타는 버스 타이어나 신발의 고무도 있다. 기타 등등, 우리 일상 생활의 모든 측면이 이런 식이다.
단 하루를 살아도 우리는 전 세계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의 산물을 이용한다. 물론 이런 제품들 가운데 일부는 더 지역적인 규모에서 생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전 세계와 맺고 있는 물질적 상호의존성 덕분에 우리의 삶이 엄청나게 풍요로워졌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실이다. 지역 자원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반동적인 사상이다.
역사상 최초로 자본주의는 진정한 세계 체제를 창출했고, 그 체제에서 우리의 삶은 모두 공통의 역사와 공통의 운명으로 얽혀 있다.
실제로, 사회주의는 이런 성과 위에서, 세계 각지의 노동대중과 상호 연대를 확대 발전시키면서 건설될 것이다.
둘째 이유는 결정적이다. 자본주의는 세계체제를 만들었지만, 항상 가장 잔혹한 방식을 통해서 그렇게 했다.
세계시장은 정복·강탈·해적질·노예화·협박·회유, 심지어 강압적 아편 거래를 통해 창출됐다.
가혹한 착취와, 이에 못지 않게 맹렬한 경쟁 ― 흔히 전쟁 비슷한 형태의 ― 이 세계 자본주의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특징이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그 부가 가난한 나라로 “흘러 넘칠 것”이라는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세계적 불평등은 심화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이런 현실은 일국사회주의 문제를 첨예하게 부각시킨다.
지난 세기의 쓰디쓴 경험에서 거듭거듭 드러났듯이, 아주 온건하고 전혀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대중 운동들조차 세계 자본가 계급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다.
미국 자본은 1950년대 이란에서 모사데크의 온건한 민주 정부를 전복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이집트를 침략했다.
쿠바는 수십 년째 미국에 경제 봉쇄를 당하고 있다. 칠레에서 미국은 개량주의적 좌파 정부를 뒤엎는 피비린내 나는 군사 쿠데타를 지원했다.
IMF·세계은행·WTO는 가장 온건한 개혁 정책 ― 병들어 죽어 가는 자국민들에게 값싼 약을 제공하는 조치 같은 ― 을 시도하는 정부에게도 엄청난 압력을 가한다.
이렇게 온건한 정부들도 외국의 경제적·군사적 개입을 불러일으키는데, 하물며 진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 자본가 계급이 어떻게 대응할지 상상해 보라!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운명이 확실한 증거다.
세계 최초의 노동자 공화국이 들어서자 세계 자본주의 열강은 군대와 무기를 보내 1918∼1920년의 격렬한 내전에서 반혁명 세력인 백군을 지원했다.
볼셰비즘의 확산을 두려워한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혁명을 고립·패배시키려 했다.
막 탄생한 혁명이 치른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볼셰비키는 결국 백군을 군사적으로 패배시킬 수 있었지만, 1917년 혁명을 탄생시킨 민중의 위대한 민주적 기구들은 내전의 압력 때문에 사실상 압사하고 말았다.
혁명을 이끌었던 바로 그 노동계급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도시 인구가 감소했다. 사망자 수는 엄청났다. 총탄에 스러져간 사람뿐 아니라 무엇보다 기아와 질병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오직 한 가지 길만이 러시아 혁명을 구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혁명이 다른 나라들로 확산돼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희망이 아니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자 유럽 전역에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노동계급 반란의 물결이 솟구쳤다.
러시아 혁명에 고무된 새로운 공산당들이 하룻밤 사이에 창당됐다. 그러나 그들은 기회를 붙잡는 데 필요한 명확성이 부족했다.
볼셰비키는 혁명이 확산돼야만 자신들의 혁명이 성공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하는 데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것이다.
코민테른의 주요 목적은 전 세계에서, 특히 유럽에서 최상의 투사들을 명확한 혁명적 원칙과 전략을 중심으로 결집시키는 것이었다.
5년 동안은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부활은 여전히 현실적으로 가능했지만, 외부의 도움이 절실했다.
독일·이탈리아·프랑스, 심지어 영국에서도 대규모 노동자 투쟁이 벌어졌지만, 신생 공산당 세력은 충분히 준비돼 있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좌파가 아니라 보수주의를 편들며 노동계급의 전투성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유럽 전역에서 노동자들은 엄청난 패배를 겪었다.
러시아는 여전히 고립돼 있었고, 혁명의 ‘퇴보’ 경향이 강화됐다.
이렇게 러시아 혁명이 쇠퇴하는 과정에서 스탈린이 ‘일국사회주의’를 들고 나왔다.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의 신호였다.
‘일국사회주의’가 실제로 뜻한 것은 착취와 반혁명을 공고히 하는 완전히 반민주적인 체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