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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2016 이호중 세월호 특조위원 연설:
세월호, 국가 폭력, 진실규명 운동

이 글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위원이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이호중 교수가 맑시즘2016에서 ‘세월호, 국가 폭력, 진실규명 운동’으로 연설한 내용을 녹취한 것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삽입한 것이다.

제가 세월호 강연을 처음 시작한 것은 2014년 9월이었습니다. 그 강연도 노동자연대가 주최하는 강연이었는데 벌써 2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때 만든 자료를 지금 써도 아무 이상이 없을 정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강연할 때마다 조금씩 업데이트를 합니다만 업데이트할 내용이 별로 없어요. 2년 6개월 가까이 변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답답합니다.

정부의 특조위 활동 방해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도 현재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6월 30일로 특조위의 활동이 종료됐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죠. 정부는 거기에 따라 행정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조사관들이 6월 30일로 당연 면직이 됐습니다. 예산을 안 줘서 돈이 없어 조사도 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해경이나 정부 공무원을 조사하려고 출석요구서를 보내면 “당신들은 공무원이 아니다. 우리가 조사에 응할 이유가 없다”면서 출석하지도 않습니다. 조사관들이 월급도 받지 못하고 공무원 지위도 인정받지 못해서 활동이 매우 어렵습니다. 월급을 받지 못해도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의지만으로 쉽게 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조사관 한 분이 대출을 받으려고 했는데 공무원이 아니라고 재직증명서를 떼지 못해서 대출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자잘한 문제일 수 있지만 당사자들에겐 심각한 문제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도 공무원이면 보조금을 조금 받을 수 있는데 이런 것도 전혀 받지 못합니다. 이처럼 내부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조사도 어렵지만 특조위 자체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난국이라 할 수 있죠.

이호중 특조위원 (유가족 추천 비상임위원,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미진

법이 개정될 가망성은 안 보이죠?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도 핑계 대기 좋아요. 실제 [야당] 국회의원들이 ‘우리 선진화법 때문에 못 한다’고 얘기합니다. 공식적으로야 특별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특별법을 개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직권상정밖에 없습니다. 직권상정은 국회의장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일인데 만약 그러면 정부와 완전히 대립각을 세우는 꼴이 되겠죠. 더민주당 입장에서는 20대 국회 초반부터 그러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런 여러 정치적 상황 때문에 법 개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고, 지금 상태로 지속되다 보면 9월 말이 또 한번의 분기점이 될 것 같아요. 정부가 6월 30일로 특조위 활동이 종료됐다고 하는데, 이후 법으로 보장된 종합보고서 작성 기간이 3개월이거든요. 9월 말이면 종합보고서 작성 기간이 끝나요. 9월 말이면 특조위가 끝나고 청산 절차로 들어가게 됩니다. 집기를 조달청으로 반납하고 사무실 문 닫는 거죠. 정말로 쫓겨나는 겁니다. 법이 개정되지 않고 지금 상태로 간다면 9월 말 긴장과 대립적인 상황이 될 겁니다.

특조위는 그때까지 어떻게든 조사를 하고 [요구를] 관철시킬까 고민하고 있는데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원래부터 [특조위의] 권한 자체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관련자들이] 출석에 응하지도 않고 자료 제출도 안 하기 일쑤입니다.

철근 문제 잘 아시죠? 특조위에서 처음 의결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들어가는 철근이 2백70톤가량이 있었고, 전체 철근도 처음 수사할 때 검경 합동수사본부에서 발표했던 것보다 양이 많았습니다. 해수부는 이미 그 자료를 갖고 있었습니다. 화물업주들이 보상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해수부에 어떤 화물이 얼마나 실렸는지를 기록한 자료를 제출해야 합니다. 그래서 해수부는 그 자료를 다 갖고 있었습니다. 보상받으려는 업주들이 화물량을 줄일 이유가 없잖아요. 우리가 해수부에 그 자료를 달라고 할 때 해수부는 안 줬습니다. 그래서 조사관들이 세월호 선적할 때 항만에 설치된 부두의 CCTV를 일일이 다 분석했어요. 하나하나 체크하고, 청해진 기록을 받고, 화물업자 기록을 받고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시간이 엄청나게 걸렸죠. 그러니까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특조위 조사의 조건 자체가 열악합니다.

과거에도 진상 조사를 위한 위원회가 여럿 있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그 위원회들이 어느 정도 청와대의 뒷받침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때조차 진상 규명이 쉽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군기무사, 국방부 등이 진짜 협조를 안 합니다.

허 일병 사건 아시죠?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수사관이 핵심 자료를 집에 보관하고 있다는 정보를 조사관들이 입수하고 그 수사관의 집을 불시에 방문합니다. 수사관이 집에 없었어요. 가족들과 얘기하고 자료를 갖고 나오는데, 수사관이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왔고 집 앞에서 조사관들이 그 수사관과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그 수사관이 권총을 쐈어요. 물론 사람을 향해서 쏘지는 않았죠. 가져가면 죽여 버리겠다는 위협이었죠. 국가권력을 상대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사건을 통해서 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청와대 지원을 전폭 받아서 설립된 위원인데도 그랬어요. 그런데 세월호 특조위는 어떻습니까? 참사의 책임이 있는 조사 대상자들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권력기관들입니다. 현재 살아 있는 권력기관을 조사하는 것이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만큼 진실 규명 운동 자체가 특히 국가 폭력과 연결돼 있을 때 더욱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많은 연대와 노력이 지속돼야 합니다.

특조위가 언제 끝날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주장하는 조사 기간은 내년 2월까지입니다. 정부는 위원회가 구성된 날을 지난해 1월 1일로 보고, 그때부터 계산해 올해 6월 30일로 특조위 활동이 끝났다고 합니다. 우리는 시행령이 개정되고 나서 특조위에 예산과 인력이 갖춰진 때로부터 1년 6개월을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시점이 지난해 8월이었기 때문에 내년 2월까지가 조사 기간이 돼야 합니다. 사실 1년 6개월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약 그 기간을 다 보장해 주더라도 특조위가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워낙 협조를 하지 않고 자료를 주지 않기 때문이죠.

또, 우리 나라는 자료의 생산과 보존 시스템이 엉망입니다. 이명박이 퇴임할 때 자료를 다 폐기시켰다고 하잖아요. 실제 우리 나라 핵심 권력기관들인 국정원, 검찰, 경찰 등은 주요 자료를 메모해서 보고합니다. 근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거죠. 사안이 중요할수록, 정치적일수록 기록을 남기지 않습니다. 파일을 안 남기고 쪽지로 보고하고 없애 버리는 거죠. 박근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역대 정부들 다 그랬고, 그래서 실제로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있는 것도 안 주는 경우도 많지만요. 특히 정부시스템이 자료를 생산하고 역사적 기록을 남기는 것에 있어 심각한 문제가 있죠. 미국 같은 경우 백악관의 전화 통화 내용이 모두 자동으로 녹음돼 기록·보존됩니다. 우리는 그런 시스템이 아예 없습니다. 경찰도 정보과에서는 기소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서면으로 남깁니다. 예를 들어 대규모 집회 같은 경우에는 수시로 상황 보고를 하죠. 몇 시에 몇 명이 모여 있고, 어디로 행진하고 등. 이런 식의 보고는 나중에 기소하려고 파일로 남깁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보고는 기록이 없습니다. 전부 쪽지로 보고하고, 보고 받은 사람은 보고받은 즉시 파쇄기에 넣어 없애 버립니다. 물론 그 보고가 청와대까지 올라가기도 하죠. 청와대까지 올라가는 보고는 정말 기록이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왜 일어났는가?

참사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참사는 단지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적폐’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참사는] 우리 사회 구조적 모순이 다 담겨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해경이 구조하지 않았잖아요. 선장과 선원만 구조했잖아요. 사실 저는 선장과 선원만 구조한 것에 ‘구조’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구조가 아니라 먼저 탈출시킨 거죠. 아무튼 왜 그랬을까? 해양 사고를 대비한 해경의 훈련 시스템이나 구조 시스템을 보면, 여기에 외주화·민영화 논리가 작용합니다. 실제로 해수부가 만든 ‘수난구호법’이 2012년에 개정되는데, 해양 사고가 발생했을 때 민간업체를 동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추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아주 긴급한 구조, 예를 들면 육상에서 119구조대가 하는 정도의 업무는 해경이 하지만 그 이외 구조·구난 업무는 민간에 맡기겠다는 것이죠.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임창수라는 해경차장에게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 구조를 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인데 이런 식의 시스템을 해 놓으면 어떡하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그 사람이 “연간 계속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비를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민간하고 네트워킹을 잘 하면 예산이 절감된다”고 말합니다. 전형적인 민영화 논리죠. 인명을 구조해야 하는 국가의 업무에도 민영화 논리가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고 초기에만 해경을 투입하고 그 다음에는 민간업체를 부르는 시스템입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실제로 뱃머리 부분만 남기고 다 가라앉은 12시가 조금 넘은 시점에 삼천 부암에서 해경 간부들이 회의를 하는데 그 자리에서 이미 언딘을 부르자는 것이 결정됐습니다. 바로 이 시스템 때문에 해경이 112구조대를 제외하고는 ― 얘네들도 제대로 출동하지 못했죠 ― 기본적으로 훈련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해상 훈련은 연간 대규모 단위로 1회, 청 단위로 몇 회, 서 단위로 몇 회 실시한다는 규정은 있습니다. 그런데 재난 사고 대비 훈련은 주로 바다에 빠진 사람 건져 내는 것만 합니다. 해경이 하는 훈련이 그게 전부에요. 해경이 그토록 무능한 이유입니다. 개인의 잘못을 넘어서서 재난에 대처할 때 해경의 역할이 어떻게 지워져 있고, 국가가 [재난에] 어떻게 대응하도록 설계돼 있는지 등 시스템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선박 안전 점검도 기업으로 넘겼습니다. 해운조합이 합니다. 해운조합이란 선주회사들이 돈을 내서 운영하는 법인입니다. 이사장이나 이사 등 해운조합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모두 선주회사 관련 인물이죠. 선주들의 회비로 운영하고, 거기서 운항관리자를 채용합니다. 이 운항관리자가 출항 때 안전 점검을 하는 사람입니다. 선주회사를 상대로 안전을 점검해야 하는데, 월급 주는 사람을 감독해야 하는 시스템이라 제대로 될 리 없죠. 원래 화물은 출항 20~30분 전에 다 실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안전 점검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배가 떠나기 직전까지 화물을 싣죠. 그러다 보면 안전 점검을 할 새도 없이 배는 떠납니다. 그러고 나서 선장이 전화로 ‘우리 승객이 몇 명 타고, 화물이 몇 톤 실렸어’ 하고 말하면 그거 받아 적는 것이 다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안전 점검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세월호 때도 그랬습니다. 안전 점검이 국가의 의무인데 이것을 민간에게 맡겨버린 것입니다.

규제 완화도 문제가 많죠. 선령 제한에 대해 많이 말하는데, 이명박 정부 때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렸다가 25년으로 다시 줄였습니다. 30년으로 늘리자고 로비한 주체가 바로 해운조합입니다. 해운조합은 2006년부터 로비를 해서 2009년에 결국 [선령 제한 완화를] 관철시킵니다. 그리고 나서 실제 20년 이상 된 선박의 비중이 엄청나게 증가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30년에서 다시 25년으로 줄였어요.

30년 기준만 놓고 보면 외국과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 않습니다. 선진국 중에도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령 제한만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 완화라는 명목으로 다른 안전 관련 사항도 같이 없어져 위험이 증폭되니까 문제입니다. 선령을 30년으로 한다면 거기에 맞춰 노후 선박일수록 규제를 강화하는 시스템이어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안전 점검도 규제 완화, 선령 제한도 규제 완화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죠. 이 때문에 우리가 특조위를 만들자고 한 것입니다.

ⓒ이미진

세월호 참사는 왜 국가 폭력인가?

세월호 참사를 왜 국가 폭력으로 봐야 하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국가 폭력은 폭력이 국가의 공식 정책이나 방침, 혹은 제도화된 이데올로기인 법에 기반해서 행해진 경우를 말합니다. 우리 나라의 국가 폭력은 한국전쟁 때 민간인 학살 사건, 군사 독재 시절 의문사 사건, 반정부 재야 인사와 학생운동 탄압, 광주 5·18 학살 등이 대표적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 폭력의 배경에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 즉 ‘전쟁 정치’가 있습니다. 김동춘 교수가 ‘전쟁 정치’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늘 적을 만들고, 아군과 적을 구별하고, 사회적 저항이나 사회주의 사상에 물리적 폭력을 동원했던 시스템이 국가 폭력의 기재들입니다.

국가 폭력은 물리적 폭력, 구조적 폭력, 상징 폭력 세 가지가 함께 작동합니다.

과거 민간인 학살 사건 같은 경우 전형적인 냉전 논리,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했습니다. 최근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아직까지도 반공주의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적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외에 다른 요소들도 존재하는데, 특히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본의 폭력성이 엄청나게 증대했습니다.

IMF 이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고용이 합법화되고, 이것이 오늘날 쌍용자동차를 비롯해서 수많은 노동자들을 자살과 죽음으로 내몰고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고 있죠. 이것은 국가가 법적으로 폭력을 승인해 준 경우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폭력이 법으로 제도화되고 적법한 것이 돼 버린다면 거기에 대한 저항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2014년 대법원 판결 내용이 이렇습니다. ‘회사가 미래의 경영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다. 회사 입장에서 미래를 전망하고 앞으로 더 어려워질 시장 상황에 따라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회사가 이렇게 결단을 내렸다면 존중해 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기업주들이] 정리해고를 남용하는 것을 제어할 수 없게 됩니다. 정리해고는 법으로는 요건이 엄격해요. ‘경영상에 긴박한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할 수 있습니다. 문구만 보면 외국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것이 적용되는 것을 보면 ‘경영상의 긴박한 필요’이라는 것은 순전히 사용자의 입장에서 판단되고, 그것을 법이 승인해 줍니다.

이렇게 국가가 폭력을 승인해 주면 저항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국가의 폭력 장치들이 동원되기 시작합니다. 바로 경찰력이죠. 시민들의 저항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집회인데 여기에 공권력이 동원하는 것입니다. 용산 참사 항의 운동, 희망버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 민중총궐기, 이제 사드 항의 행동에도 같은 사태가 반복될 것입니다. 어떻게 전개될지 눈에 보입니다.

여기에 상징 폭력이 결합됩니다. 항상 문화적인 면이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재로 작동합니다. 이것은 저항의 근본 원인 가리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쌍차 사건은 정리해고의 문제, 세월호 참사는 안전이 기업의 이윤 논리에 종속돼 생겨난 문제입니다. 상징 폭력은 이런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을 감춰 버리는 역할을 합니다. 민주주의의 공론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죠. 공론장 자체를 왜곡시키는 프레임이 작동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종북 메카시즘’입니다. 사드의 경우에도 집회를 하니까 ‘외부세력’ 얘기가 나오잖아요. 집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생기면 ‘폭도다’, ‘외부세력이 개입됐다’ 하는 프레임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 우리는 ‘평화적 시위였다’고 대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순간에 집회를 왜 했는지의 문제는 사라지고 ‘폭력 시위냐 평화 시위냐’ 하는 이슈만 부각됩니다. 민중총궐기 기사 검색 하면 왜 우리가 집회를 하려 했고, 거기에 모인 시민들이 무슨 주장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주류 언론은 다루지 않습니다.

또,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이명박이 “떼법”이란 단어를 썼죠. 기본권인 집회를 그런 식으로 비하하며 법을 잘 지키라고만 하는 것이죠.

원래 법치는 공권력 사용을 제한하는 논리입니다. 공권력이 법에 근거를 두고 최소한으로만 행사돼야 하는데, 오히려 시민한테 법을 잘 지키라는 것을 법치주의라고 얘기합니다. 시민들에게 저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작용하면서 저항하는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는 개념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일베가 선두에서 그런 것들을 하죠. 일베는 사실상 국정원이 운영하는 것으로 봐도 됩니다.

이에 비춰 보면 세월호 참사는 자본의 탐욕, 그것을 지원하는 국가 시스템이 만들어 낸 국가 폭력입니다. 우선 구조적 폭력의 표출로서 폭력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산업 현장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가 엄청나게 증폭돼 왔습니다. 기업은 안전 업무를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안전인력을 감축했습니다. 외주화, 민영화, 규제 완화가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이처럼 비용 절감의 논리로 위험이 누적돼 왔습니다.

한편, 안전을 담보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가 왜곡됐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안전을 가장 강조한 정부였잖아요? 출범할 때 취임 일성이 ‘안전’이었어요. 그러면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꿨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안전처가 생기면서 다시 이름을 바꿨지만요.

물론 그때 그가 말한 ‘안전’은 법질서 유지와 공안적인 안전, 저항을 억압하는 폭력 시스템을 강조하는 안전이었습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해서 집회하는 시민들과 싸우는 노동자들이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상정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잘 억압하고 통제해야 우리 사회의 안전이 담보된다는 것인 양 말이죠. 치안, 공안 논리죠. 이게 박근혜 정부가 생각했던 안전이었어요.

국가와 자본의 폭력, 산업 현장에서 안전이 무시되는 상황 속에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구의역 사고도 있고, 셀 수 없이 많은 산업재해가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나라 산재사망율이 OECD국가 중 1등인데 1년에 약 2천5백 명 정도가 산업재해로 사망하죠. 이런 현실에서 안전을 감독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오히려 ‘자율 규제’라는 이름으로 축소돼 버린 것입니다. 아예 외주화되거나요.

안전 의무가 완전히 왜곡돼 버린 거죠. 대표적인 것이 안전 업무 외주화를 인정한 1993년 ‘기업활동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입니다. 원래는 법에 안전 업무 담당 인력을 [산업 현장에] 고용하게 돼 있었어요. 이 법은 바로 이것을 완화시켰습니다. 몇 명 이하 사업장의 경우에는 안전 업무 관리자를 의무적으로 고용하지 않아도 되거나 안전 업무를 외주화할 수 있도록 했죠. 그런데 원청과 하청은 갑을 관계잖아요. 을의 위치에 있는 외주업체가 원청을 대상으로 안전 점검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할 수가 없죠. 예를 들면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외주업체가 안전 점검 후 무언가를 교체해야 한다고 판단해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죠. 그러면 잘리거든요. 기업이 비용을 절감하려고 안전 업무를 외주화시키고, 외주 업무를 하청받은 업체는 안전에 대해 제대로 얘기할 수 없는 구조. 그러면 증폭되는 위험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 결국 노동자와 시민에게 떠넘겨지는 거죠. 구조적 폭력의 문제입니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호는 일본에서 18년간 운항했던 배를 들여와 증개축을 해서 만든 배입니다. 2개 층을 증축했죠. 그러면 승객은 그만큼 많이 태울 수 있지만 화물은 싣지 못해요. 원래 일본에서 운항할 때 승인된 화물 적재중량이 2천 톤, 우리 나라에 와서 승인된 중량이 1천 톤입니다. 그런데 사고 당시 2천 톤을 실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3천 톤 가까이 실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날만 그런 것이 아니라 2013년 3월부터 운항한 세월호는 1년 내내 그랬습니다. 검찰의 공소장에 1년 내내 과적했다고 나옵니다. 기업 입장에서 화물을 많이 싣는 것이 돈이 더 많이 남는데 왜 증축했을까요? 화물은 과적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 것입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돼 있으니 증축이 가능한 거죠.

또 한편 주목해야 될 것이 ‘전문가 정치’입니다. 규제 완화 정책을 펴면서 그것을 정당화 하는 것이 전문가 정치입니다. 전문가 정치는 안전의 문제를 단지 기술적인 문제로 만들어 버립니다. 안전한지 아닌지 기준을 전문가가 결정합니다. 안전 문제가 우리의 생명과 존엄성, 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기술 문제가 돼 버린 것입니다. 법에 보면 독성물질 사용 기준이 세세하게 규정돼 있습니다. 이런 것을 판단하는 것이 전문가들입니다. 0.1이 기준이라고 했을 때, 0.09는 괜찮고 0.11은 안 된다는 것이죠. 이 차이가 얼마나 합리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지, 이런 것이 민주주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원전의 안전 문제가 제기될 때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 정도 조치를 취하면 안전합니다” 하고 말하면 시민들은 그걸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안전 문제가 전문가들이 독점하는 기술 문제가 돼 버렸습니다. 정부는 연구 지원이나 여러 방식으로 전문가들을 통제합니다. 정부가 전문가에게 발주하는 연구용역들은, 특히 이과 쪽은 거의 결론을 내놓고 발주합니다. 연구자들 특히 과학 기술 쪽 전공자들은 입장에서는 실험도 하고 연구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돈은 기업과 정부에서 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기업과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할 수 있겠어요?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민관유착도 단지 비리·유착의 문제일 뿐 아니라 자본의 이해관계를 보증하는 시스템의 문제인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저항운동이 나타나면서 저항운동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 등장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국가 폭력으로 진화해 나가는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2014년 5월 피해자들이 KBS보도 사태 등으로 청운동에 처음 갔을 때, 민경우 전 청와대 대변인이 “순수한 피해자”라는 단어를 씁니다. 진실 규명 운동과 저항을 정치적 이념 논쟁으로 끌어들이는 첫 단추가 “순수한 피해자”라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순수한 피해자”란 마냥 슬퍼해야 되고, 누군가 위로해 주면 감사해야 되고, 정부가 보상해 주면 받아야 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삿대질을 하면서 ‘누가 책임져야 한다. 우리 사회 개혁이 필요하다’ 이렇게 나가는 순간 ‘불순’한 것이 됩니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며 낙인을 찍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념 논쟁으로 가져가는 거죠. 결국은 국가 폭력의 피해자를 분열시키고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부분 국가 폭력의 진실 규명 문제에서는 배·보상 문제가 먼저 나왔습니다. 다분히 의도된 것이죠. 원래 진실 규명이 먼저 되고 나서 배·보상 얘기가 나와야 하죠. 돈 문제로 가져가는 순간 피해자들을 분열시키고 고립시키기 굉장히 쉬워집니다. 거기에 저항하는 순간 ‘돈 더 받으려고 저런 짓 한다’고 매도되죠. 세월호 때도 돈 더 받으려고 거리에 나온다고 그랬죠. 배·보상 문제가 나오면 각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분열됩니다. 국가 폭력 피해자는 처음에는 위로의 대상이다가 조금 있으면 불순한 사람이 되고, 그 다음에는 시민들과 연대하면서 투사가 됩니다. 그리고 다시 물리적 폭력의 피해자가 되죠. 이 과정이 계속 반복돼 왔습니다. 광주 때도 그랬고, 세월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밝혀져야 할 진실이 많다 ⓒ이미진

진실 규명의 의미

진실 규명이라는 것은 사회운동으로서의 진실 규명이 돼야 합니다. 그것은 참사에 영향을 미친 여러 가지 구조적 원인들을 종합적으로 밝히고 선언하는 작업이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공유된 가치에서 진행돼야 합니다.

첫째, 진실 규명은 역사 앞에서 생명과 존엄 가치 위에 참사의 스토리를 쓰는 것입니다. 단순히 의혹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내적인 가치와 지향점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진실 규명은 어떤 참사의 사회적 실체를 선언해 주는 공적인 작업이고, 역사적 작업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의 회복의 시작이고, 관점에 대한 투쟁, ‘인정 투쟁’의 맥락 속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둘째, 재난 사고 피해자의 고통을 사회적 네러티브로 구성해야 합니다. 저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있고 법을 전공했지만 특조위에는 법률가 위원이 너무 많습니다. 사건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법적으로 고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이 참사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고 어떻게 치유될지 얘기할 때 전문가들의 법적인 언어로 얘기해서 안 됩니다. 그 고통의 실체를 피해자들의 언어로 사회적인 네러티브로 구성해 주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이 피해자를 복원시키는 장치입니다.

‘치유’는 개인에게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사회적 치유 과정이 돼야 합니다. 추모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모 시설을 어디다 건립하고, 피해자에 대한 재정 지원을 어떻게 하느냐 등 피해자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세월호 참사에서 뭘 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안전이 삶에서 근본적인 문제라는 걸 인식하고, 이를 통해서 시민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돼야 합니다.

정리 발언

좋은 의견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보태 얘기하겠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많습니다. ‘작업중지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라인을 세울 수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가 [사측으로부터] 엄청난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오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사측이] 손해를 라인을 멈춘 노동자에게 전가시키기 때문입니다. 이게 현실이고, 법이 악용되고 있습니다.

파업 한 번 하면 후폭풍이 엄청납니다. [사측은 파업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죄로 고발하고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데 이렇게 하는 곳은 우리 나라밖에 없습니다. 일본에도 업무방해죄가 있지만 파업에는 적용하지 않습니다. 업무방해죄는 유럽에서 노동조합 파업을 처벌하려고 1800년대 처음 만들어졌다가 파업이 기본적인 노동권이 되면서 다 없어졌습니다. 그게 일본을 거쳐서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 탈색되고 규정이 추상화돼서 노조 탄압의 대표적 수단이 된 것입니다.

파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도 우리 나라밖에 없습니다. 파업 과정에서 기물을 파손하거나 누구를 다치게 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기업이 생산을 못 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는 나라는 없죠.

한 분이 안전의 문제는 계급 문제이고 근본으로는 자본주의 문제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같은 생각입니다. 부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안전의 양극화, 위험의 양극화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저항의 담론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싸움의 과정을 보면 물리적으로는 우리가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경찰은 고도의 장비를 갖추고 있고, 국가 폭력도 진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항이 왜 정당한지를 담론화해야 합니다. ‘평화적 집회’를 얘기하지만 [우리에게는] 시민불복종으로 직접 행동의 권리가 있습니다. 집회는 저항을 행사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초보적인 방식이고, 그것을 한 단계 넘어서는 것은 직접 행동입니다. 우리는 저항의 정당화 담론을 고민하고 이를 확대시켜야 합니다. 싸움은 여론의 힘을 얻는 것으로 결판이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많이 사회적으로 알려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월호 참사 운동이 기존의 국가 폭력[에 맞선 운동]에 비해 발전된 것이 피해자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그것을 사회화시킨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저항 운동을 한 단계 발전시킨 계기가 됐습니다. 고통의 당사자들의 언어를 드러내 주고 피해자들의 고통에 연대하는 힘을 만들어 내는 사회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피해자의 고통, 그 고통에 연대하는 사회화 과정, 민주적 공론을 통해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작업장에서 나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녹취 장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