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박철 전 총장 명예교수 임용에 대한 학생들의 반대는 왜 정당한가(2):
등록금 대폭 인상과 경쟁적 학사 재편으로 학생 고혈 짜낸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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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당국의 박철 전 총장 명예교수 임용 시도에 반대해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박철이 왜 명예교수 임용은커녕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대상인지 다루고자 한다. 앞선 기사(법원 판결: 성희롱 교수 보호와 노조 불법 탄압을 위한 “횡령”에서 박철의 반노동, 반인권적 행태를 살핀 데 이어 이번 기사에서는 그가 강행한 학사 정책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외대 당국(총장 김인철 행정학과 교수)이 박철 전 총장(스페인어과 교수)을 명예교수로 추대하려 한다기에 먼저 2010년 3월 1일에 개정된 최신 ‘명예교수규정’을 들여다봤다. 제2조 ‘자격’ 항목을 보면, “재직중 교육 및 학문상의 공적이 뛰어나고 본 대학교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많은 자여야 한다”고 돼 있다. 명예교수가 되면 평생토록 수당과 연구비, 강사료를 지급받을 수 있고 직계자녀 학비 감면 혜택도 받는다. 또 제7조 ‘명예교수 추대 취소’ 항목에는 “명예교수가 그 명예를 손상시킬만한 행위를 하였다고 인정될 때에는 총장은 명예교수의 추대를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 글에서는 박철 전 총장 재임 기간(2006년 3월~2014년 2월)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살피고, 학교 당국이 명예교수 임용 명분으로 삼는 박 전 총장의 “교육상 공적”이라는 게 왜 문제이고 그가 “기여한 공로”는 한국외대 학생들의 고통에만 기여했음을 따져 볼 것이다. (학교 당국은 박 전 총장의 “돈키호테 완역”을 업적으로 내세우지만, 최초도 아니고 단독 업적도 아닌 성과를 옹색하게 앞세워 그의 악행을 덮을 수는 없다.)
그럼으로써 박 전 총장 아래서 부총장을 지냈던 현 김인철 총장이 그를 감싸고 도는 이유를 드러내고, 박 전 총장이 스스로 “명예를 손상시킬만한 행위를 하였”으므로 현 총장은 당장 명예교수 추대를 취소해야 할 것임을 분명히 할 것이다.
1. 등록금과 입학금 대폭 인상
한국처럼 국가의 교육 복지가 허술한 나라에서 등록금은 학생들의 교육 기회(의 평등) 문제와 연동되는 것이다. 따라서 등록금에 대한 태도는 교육자의 책임과 자격에 대한 일종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박 전 총장은 재임기간 8년간 한 학기 등록금을 총 70만 원이나 올려 놓았다. 2014년까지 경제 위기와 정치권의 압력으로 세 번의 동결과 한 번의 삭감이 있었는데도 이렇게 오른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2005년에 2백64만 원이던 한 학기 등록금이 현재 3백36만 원(서울캠퍼스 기준)에 달한다. 1년에 내야 할 액수는 무려 1백40만여 원이 인상된 것이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기록적인 등록금 인상안을 밀어붙였다. 2006년 인상률은 11.4퍼센트(전국 사립대 중 2위)였는데, 당시 등록금 기준으로 무려 30만 원가량이 한꺼번에 오른 것이었다. 새내기 입학금도 1백만 원 수준으로 대폭 올렸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재학생과 새내기의 등록금 인상률에 차이를 둬 학생들을 이간질했다. 이는 등록금을 미리 납부해야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새내기의 처지를 악용한 것이었다.
2007년에 재학생 등록금을 6.58퍼센트 올릴 때 새내기는 9.86퍼센트를 인상했다. 2008년에도 재학생 6.3퍼센트 인상, 새내기는 8.8퍼센트 오른 등록금을 내야 했다. 2009년 박 전 총장은 " 경제 위기 상황에서 학생들과 함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등록금을 동결하겠다고 밝혔지만, 새내기 등록금은 4.9퍼센트나 올랐다.
신입생들이 등록금과 별도로 내는 입학금도 문제다. 입학금은 그 용도도 명확하지 않고 징수의 법적 근거도 불분명해 문제 제기를 받아 왔음에도 일방적으로 인상돼 왔다. 현재 외대의 입학금은 99만 8천 원으로, 고려대, 동국대 등과 함께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비싸다. 이는 신입생의 처지를 악용한 편법적 등록금 인상이다.
대학원 등록금도 이런 식으로 인상됐는데, 학부 등록금이 인하됐던 2012년에는 2~3퍼센트가, 학부 등록금이 동결된 2014년에는 8개 대학원 모두 한 학기에 적게는 10만 원가량이, 많게는 26만 원이 인상됐다.
2011년에는 여러 대학에서 벌어진 등록금 투쟁과 전국 대학생들의 거리 투쟁 끝에 반값등록금이 정치 쟁점으로 불거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외대도 2011년 동결, 2012년 2.2퍼센트 인하가 됐다. 그러나 2.2퍼센트는 당시 감사원이 35개 대학 등록금 감사 결과로 권고했던 12.7퍼센트 인하에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었다. 더구나 물가상승률의 2~3배 되던 과거 인상률에 비하면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당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이던 박 전 총장은 "종이 값 아껴서라도 등록금을 내릴 것”이라며 5퍼센트 인하를 공언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빈축과 반발을 산 역겨운 일 하나를 더 소개해야겠다. 박 전 총장은 2006년부터 자신이 추진한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을 거쳐 수십억 원을 모았다고 언론에 자랑해 왔다. 그는 동문뿐 아니라 비싼 등록금 때문에 대출을 받아 빚더미에 깔린 학생들에게도 “등록금을 한 번 더 내 달라”며 전체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이미 인상분이 적힌 등록금 고지서를 받은 학생들한테는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렇듯, 4백80억 원이 넘는 적립금(2011년 기준)은 내버려 두고 온갖 기금 마련에만 혈안이 돼 있던 사람이 바로 박 전 총장이었다. 아마도 지금 총장실 점거를 지지하는 외대 졸업생, 재학학생들은 박 전 총장이나 벌금 두 번 내라는 심정일 것이다.
2. 학생 자치 활동 탄압
박 전 총장은 툭하면 진보적 학생회와 동아리에 의무로 지급해야 할 교비 지급을 거부하며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전력이 있다. 자신은 성희롱 교수 보호에 교비를 쓰는 횡령을 저지르면서 말이다. 박 전 총장은 한국외대 학생들이 유일하게 대규모 총회를 열 수 있는 노천극장을 2013년에 철거했다. 그 대신 만들겠다던 제2도서관은 하세월이 된 지 오래다.
압권은 2006년에 노조 파업을 지지하고 성희롱 교수의 추악한 행위를 글로 써 배포했다는 이유로 그 학생을 무기정학 시킨 것이다. 학교는 사실무근의 글로 학교의 명예훼손 행위를 했다고 했지만, 그 교수의 성희롱 행위는 사실로 판정 받았고, 해당 학생은 결국 법원의 판결로 복학을 했으며, 오히려 성희롱 인정 취소소송을 등록금으로 벌이다 유죄 판결을 받은 건 박철 전 총장 본인이다.
2007년 학교는 학내 미화를 구실로 학생들의 현수막과 대자보 부착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궁색하기 그지없게도 학교는 현수막과 대자보를 대체할 옥외전자광고대(“키오스크”)를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학생들의 많은 표현물을 감당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앞뒤 행위들을 볼 때, 사전 검열을 통해 비판적 학생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었다.
박 전 총장은 〈외대학보〉가 2011년 서울캠퍼스 비상 총회 요구안을 다룬 944호 발행도 중지시켰다. 또 그 해 9월 학교가 학내 주점 설치를 금지한 것을 학생회들이 반발하자, 〈외대학보〉에 학생회 선거 관련 기사를 한 줄도 못 싣게 했다.
결국 지금 박 전 총장을 총장으로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새내기들까지 박 전 총장의 행적을 보고 명예교수 임용은 한국외대 학생 모두의 불명예라며 점거농성을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교육자의 언론 탄압은 민주화 이후 태어나서 자라고 대학에 들어 온 새 세대 대학생들에게는 시대를 거스르는 반교육적·반민주적 ‘꼰대’ 행위로 보일 뿐이었다.
3. 경쟁 강화 학사제도 도입
박 전 총장은 학생 간 경쟁을 더욱 부추길 학사제도들을 도입했다. 등록금이 그렇게 올랐는데도 교육 환경은 별 개선이 안 되고, 가뜩이나 학점·취업 경쟁에 피가 마른 학생들은 갈수록 궁지로 내몰렸다. 학기 초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의 요구에는 늘 학사제도와 관련해 폐지나 개선 같은 요구들이 포함됐다. 등록금을 낮춰 공부에 전념하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알바까지 뛰어야 하는 요즘 시대의 학생들에게 학점 경쟁을 부추기고 물리적 학업 부담만 늘리는 것은 학생들을 스무살 때부터 찌들리고 지친 체제순응적인 인간형으로 만들려는 교육일 뿐이다.
2007년 ‘이중전공’ 의무화 제도가 도입됐다. 다른 학과 전공수업을 추가로 이수하면 졸업 시 두 개의 전공학위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부전공과 제2전공을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기존 제도에 견줘 신입생들은 2전공을 위해 54학점을 더 이수해야만 했다. 이중전공 대신 ‘전공심화’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도 생겼지만, 전공 이수 학점을 54학점에서 75학점으로 대폭 늘려 양자택일이 가능하다는 취지를 유명무실하게 했다.
이런 수준의 전공 학점을 다 채우려면 사실상 자기계발 활동이나 교양 수업은 거의 포기해야 한다. 이중전공이든 전공심화든 어는 전공이 취업에 유리한가를 고려해 학생들이 선택할 개연성이 높다고 보면, 전공 학점 채우다 시간 다 보내는 현상은 대학이 더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한다는 뜻이다.
이런 개악이 심지어 졸속으로 추진됐다. 새 제도에 맞게 커리큘럼을 보완하지도 않고 추진해, 특정 인기 학과 수업에 인원이 너무 몰려 “역대급 수강신청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고, 어떤 학과에서는 수강 가능한 전공수업을 다 합쳐도 전공심화 과정에 필요한 75학점이 되지 않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또 박 전 총장은 플렉스(한국외대 자체 외국어 시험)를 의무적 졸업 인증 방식으로 만들었다. 2008년 2월 졸업 예정자부터 모든 학생들이 일정 점수 이상으로 플렉스 시험을 통과해야 졸업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플렉스를 졸업 조건으로 삼으려면 당연히 학생들이 플렉스를 무료로, 무제한으로 응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단 1회만 무료 시험이 제공되고, 점수가 덜 나와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하는 학생들은 자기 돈을 내야만 한다. 플렉스는 1년에 4차례만 시행되는 데다가 1회 응시료는 듣기·읽기 시험만 현재 3만8천 원(당시 3만 원)이다. 학생들은 취업 ‘스펙’ 때문에 토익 시험 등 말고도 추가로 돈을 더 써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됐다.
2008년 정부의 신자유주의 대학 ‘개혁’에 발맞춰 상대평가제를 전체 학년으로 확대한 것도 박 전 총장의 “업적”이었다. 상대평가는 학생들 사이 학점 경쟁을 심화시켰다. 게다가 누군가는 낮은 등급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학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은 계절학기를 많이 듣게 된다. 학교가 학생들 상대로 계절학기 장사한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20명이 채 안되는 수업은 절대평가를 적용할 수 있었으나, 이것마저 2015년에 현 김인철 총장이 상대평가를 전면화해 버렸다.
4. 대학 상업화
새 기숙사 건물이 곧 들어설 무렵이던 2008년, 박 전 총장은 기숙사 식당을 외주화해 아워홈이라는 기업에 식당 운영권을 넘겼다.
당시 진보적 학생들은 기존 직영 학생식당처럼 식당을 운영해야 질 좋고 값싼 밥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항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박 전 총장은 부총장들을 동원해 학생들을 회유하기 바빴다. 양이 적고 가격이 비싸다는 비난을 듣던 아워홈 기숙사 식당은 결국 영업 손실을 못 이겨 현재 철수한 상태다.
2011년에 지하캠퍼스가 새로 지어질 때도 “다른 학교와 달리 외부 상업시설을 입주시키지 않고 순수하게 학생 복지시설로 사용하겠다”던 학교 당국은 새 대강당(현 오바마홀) 대관료가 시간당 60만 원이라 공지해 학생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지난 10년 동안 새 건물이 많이도 들어서 캠퍼스 전경이 확 달라졌지만, 정작 학생들한테 필요한 제2도서관 신축 계획 등은 늘 뒷전이었다.
올바른 교육을 위해
그의 총장 재임기간 8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모든 악행을 하나로 묶어 쓰자니 버겁기까지 하다. 그래도 정부의 신자유주의 대학 구조조정에 발맞춰 대학을 “졸업장 장사”, “학점 장사”하는 기관처럼 만들었다는 오명은 분명히 전달됐기를 바란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만으로도 박 전 총장이 불명예 교수이고, 비교육적 인사라는 사실은 충분히 전해졌으리라 본다.
박 전 총장이 한 언론에서 자신이 번역한 《돈 키호테》의 내용을 언급하며 이런 말을 했다.
“400년 전 세르반테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자유와 인권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속박하면 안 된다는 그의 지적은 현재 우리 사회가 깊이 간직해야 할 시대정신이다.”(〈서울신문〉, 2015년 5월 31일). 코웃음밖에 나지 않는다. 앞장서서 학생과 노동자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은 이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그 ‘돈 키호테’ 정신은 학생과 노동자들을 지지할 것 같다. 2011년 박 전 총장의 공금 유용이 최초로 폭로됐을 때 많은 학생들이 울분을 토하며 학생 총회를 대규모로 성사시켰다. 다만 이를 점거 농성이라는 강력한 투쟁으로 발전시키지 못해 흐지부지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당시 총학생회와 일부 좌파가 소극적이었던 것은 지금도 안타깝다. 그러나 당시 ‘비리 총장 퇴진 운동’이 정당했다는 것은 지금 점거 농성이 재확인해주고 있다.
이 싸움은 단지 학생들만의 것이 아니다. 박철 전 총장에게 누구보다 혹독한 탄압을 받았던 한국외대 노동자들한테도 이번 점거농성은 희망과 자극제가 될 것이다. 2009년 당시 학생들은 등록금 차등 인상에 항의해 본관 점거, 서명 운동, 학생총회 등을 벌였고, 결국 차등 인상분 일부(8만 5000원)를 문화상품권으로 환불 받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우리는 졸업생으로서 재학생들의 점거농성을 흠뻑 지지한다. 아니, 지지할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