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교원노조 이중 가입 금지’ 규약 제정:
정부에 투항하려는 새 노조 건설 기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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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교조 현장 교사들이 만드는 월간 신문 〈벌떡교사들〉이 2016년 8월 30일에 발표한 성명서다.
8월 27일 전교조 전국대의원대회는 격론 끝에 교원노조의 이중 가입을 제한하는 규약을 통과시켰다. 2백42명 중 1백71명이 찬성했다. 70.7퍼센트 찬성으로 규약 개정 요건인 3분의 2를 넘겼다.
개정된 규약에 따르면, “여타 노동조합에 가입한 자는 조합원이 될 수 없”고, “다른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때” “조합원 자격을 상실한다.”
이 규약 개정은 ‘교육노동운동 재편을 위한 모임’(재편모임)이 올 12월에 새 노조를 건설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데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재편모임은 현행 교원노조법의 틀 안에서 전교조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원노조법 개정을 통한 전교조 재합법화는 “매우 지난하고 불확실한 미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조를 시도별·급별·설립자별 노동조합들의 연합체로 재편하자고 주장한다. 전교조 해체론이다.
조합원들의 의식이 불균등하기 때문에 노동조합 안에는 늘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전교조가 대의원대회에서 교원노조법 전면 개정을 통한 재합법화를 공식 결정했지만, 현행 교원노조법의 틀 안에서 합법화해야 한다는 견해가 전교조 안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되고 표현된다. 재편모임도 지난해에 결성돼 전교조 안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해 왔다.
이번에 개정된 규약은 이견을 억압하기 위해서라거나 그런 이견을 조직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전교조 내부에서, 전교조에 대립해 정부에 투항하려는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규약 개정은 바로 이 시도를 차단하기 위한 완전히 정당한 조처였다.
조합원 다수는 재편모임의 구상을 반대한다
대의원대회 직후 재편모임은 조합원 의견 수렴 없이 규약을 개정했다며 중앙집행위원회(중집)와 대의원대회를 “반민주”적인 “독재 기구”라고 맹비난했다. 그리고 “[이 결정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교원노조 설립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8월 27일 대의원대회에서 여러 시간 진행된 치열한 논쟁과 결정을 완전히 무시하는 주장이다. 전교조 규약에 따르면, 대의원대회는 “규약의 개정에 관한 사항”을 의결할 권한이 있다. 선출된 대의원들의 대표성을 조금치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재편모임이 과연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아무도 재편모임에게 대의원대회 위에 군림할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합원의 의견을 따르지 않은 것은 오히려 재편모임이다.
2013년 10월 전교조 총투표에서 조합원 70퍼센트는 박근혜 정부가 강요한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했다. 박근혜 정부는 교원노조법을 근거로 해직자를 전교조에서 배제하라고 강요했지만, 조합원들은 법외노조의 위험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정부의 부당한 강요를 거부하고 저항을 택했다.
재편모임의 새 노동조합 계획은 2014년 12월 전교조 지도부 선거에서도 지지받지 못했다. 김은형 재편모임 공동대표가 위원장 후보로 출마해 새 노조 계획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후보 3팀 중 가장 적게 득표했다(23.66퍼센트). 법외노조 탄압과 연금 개악에 맞선 투쟁을 으뜸 공약으로 강조한 변성호 현 위원장이 50.23퍼센트를 얻어 당선했다.
이렇듯 조합원 압도 다수의 선택을 간단히 무시하는 재편모임이 “조합원 의견 수렴”을 말하고 전교조의 주요 의결기구들을 “독재 기구”라고 비방하는 것은 듣기 고약하다.
교원노조 이중 가입 금지 규약이 “교원의 노동기본권을 제약”하고, “복수노조 시대라는 역사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재편모임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억지스럽다.
전교조는 지난 2월 대의원대회에서 교원노조법을 전면 개정해 전교조를 재합법화하는 투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재편모임은 전교조를 해체해 부문별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들은 전교조 내부로부터 전교조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약화시킬 활동(주장 수준을 넘어 실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행동)을 “노동기본권”이라는 용어로 정당화하고자 한다.
우리도 단결 선택의 자유(“노동기본권”)를 원칙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를 탄압하는 구체적 현실에서 전교조를 약화시킬 것이 뻔한 활동까지 단결 선택의 자유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교조가 약화되면 진정 많은 교사들의 노동기본권이 침해받을 것이다. 그리 되면 전교조뿐 아니라 노동자 운동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재편모임의 “노동기본권” 운운은 진정한 의미의 단결인 투쟁 속의 단결이 아니라 그저 다원주의 예찬론처럼 들린다. 다원성과 다원주의는 구별해야 한다.
합법성 제일주의
재편모임은 교원노조법과 전교조 규약이 이중 가입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며 전교조 안에서 새 노조를 만드는 것을 “합법적인 행위”라고 주장했다.
먼저, 전교조는 전국적인 단일 조직 방침을 규약으로 정하고 있다. 전교조 본부와 각 시·도지부가 일원화된 체계로 운영된다. 따라서 부문별 노조들의 연합체라는 새 노조 건설 계획은 전교조 규약에 위배된다.
게다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기본이다. 즉,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방어하기 위해 더 크게 단결해야 힘을 키울 수 있다. 재편모임의 주장처럼 노동조합을 쪼개면 힘이 분산될 뿐 아니라 부문별 칸막이 현상이 커져 교원들 사이의 불균등성이 심화된다. 오히려 전교조가 공립교원과 사립교원, 유초중고 급별을 통합해 출발했기 때문에 교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거의 동일하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사실 새 노조 계획의 진정한 동기는 합법주의다. 지난해 5월 28일 헌법재판소가 교원노조법 2조 합헌 결정을 내리자마자 이들이 발기인 모집을 시작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재편모임은 어떻게 해서든 노동조합의 합법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당연히 전교조의 합법적 지위를 되찾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합법성은 교육을 바꾸고 교사의 권리를 지키는 투쟁을 위한 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2013년 10월 총투표에서 조합원 70퍼센트는 합법성 그 자체가 아니라 박근혜 정권에 굴복하지 않는 투쟁하는 전교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재편모임은 합법성에 목을 매다 보니 투쟁하는 전교조에도 반대한다. 재편모임 공동대표인 김은형 교사는 2014년 12월 위원장 선거 때 네이스 투쟁 같은 대정부 투쟁 때문에 조합원이 급감했다며, ‘선도 투쟁’이 아닌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무원연금 쟁점에서도 노골적인 양보안을 공약했다.
네이스 투쟁은 2003년 5월 네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반대해 전교조가 연가 투쟁을 한 것을 가리킨다. 노무현 정부가 국가인권위의 인권 침해 판정도 무시하고 네이스 전면 시행을 밀어붙이려다 초래한 사태다. 학생, 학부모, 교사, 심지어 졸업생까지 포함해 무려 2천만 명의 신상 정보를 조사·집적하려는 네이스 시행에 반대한 투쟁은 고립되기는커녕 많은 학생과 학부모 들의 지지를 받았다.
또, 대정부 투쟁이 전교조 조합원 감소를 낳았다는 주장도 현실과 맞지 않다. 전교조가 규약시정명령과 공무원연금 개악에 맞서 단호하게 저항하자 박근혜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조합원 수는 줄지 않고 늘었다.
무엇보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 합법성 제일주의, 대정부 투쟁 외면, 양보 교섭을 통해 노동조합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지난해 이충재 전 공무원노조 위원장이 잘 보여 준 바다. 그는 양보 교섭으로 일관하다 배신적 타협을 했고, 이를 대의원들이 거부하자 합법노조를 만들겠다며 공무원노조를 탈퇴했다.
따라서 “전교조 조합원들이 새로운 합법 노조 설립이나 가입을 통해 전교조의 재합법화를 측면 지원”하기 위해 새 노조가 필요하다는 재편모임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반대로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 탄압’에 백기 투항하는 것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전교조는 거듭거듭 저항을 선택했다. 그래서 재편모임의 새 노조 건설 계획은 결코 조합원 다수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이번 대의원대회에서도 3분의 2가 넘는 대의원들이 재편모임의 합법성 제일주의가 아니라 투쟁하는 전교조를 지지했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실상은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 공격에 문을 열어 주는 구실을 할 뿐인 새 노조 계획을 단호하게 반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