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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 혁명의 비극》:
1925~27년 중국 노동자 혁명에 관한 최상의 책

해럴드 로버트 아이작 지음, 정원섭·김명환 옮김, 숨쉬는책공장, 688쪽, 19,500원

숨어 있던 중국 근대사 고전이 최근에 출간됐다. 《중국 혁명의 비극》은 미국 언론인이자 정치학자였던 해럴드 로버트 아이작스(Harold R. Isaacs, 1910~1986)가 1930년부터 5년간 중국 현지를 취재하고서 1938년에 펴낸 《중국 혁명의 비극》 초판을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가 손수 소개 글을 써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1925~27년 중국 노동자 혁명을 이토록 꼼꼼히 조사해 집필한 책은 한국에 아주 드물다. 그나마 왕판시(왕범서)의 《회상: 나의 중국혁명》(새물결, 2003)이 나와 있을 뿐이다.

중국 혁명이라 하면 흔히들 1949년 중국공산당이 집권한 민족주의 혁명을 떠올리는데, 그로부터 20여 년 전에 중국에서 이미 노동자 혁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높다. 1925년 이전 중국 사회의 실상과 1917년 러시아 혁명, 코민테른 설립과 타락 등 세계사적 사건들을 분석하며 노동자 혁명의 맥락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중국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터져 나오는 오늘날, 중국 노동자 혁명을 되새겨 보는 일은 ‘옛 중국 같은 동아시아 후진국에서도 노동자 혁명이 벌어졌다고?’, ‘사회주의는 어떻게 가능하지?’, ‘현 중국이야말로 바뀔 수 있는 걸까?’를 놓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줄 것이다.

노동자 혁명의 전야

《중국 혁명의 비극》은 1911년 신해혁명(쑨원 주도로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움) 등 20세기 초에 나타난 중국의 변화뿐 아니라, 19세기 중국의 풍경까지 매우 세세하게 다룬다.

당시 중국(청나라)은 “현대적 증기선”과 “원시적 돛단배”가 공존하며 “대비와 모순이 늘고” 있었다. 애초에 중국 사회는 “생산력 정체”가 빚은 “경제의 후진성” 탓에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발전하지 못했”고, “농촌에서는 봉건적 착취가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다 “서구 자본주의 팽창의 물결”이 들이닥쳐 중국은 “자본주의 궤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1842년과 1858년 아편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중국의 고립은 끝났”다. 이에 따라 “19세기 말에는 외국 기업이 중국 경제의 모든 주요 지위를 차지”했고, “새로운 계급”인 “매판계급이 등장”했다.

제1차세계대전 중에는 “전쟁 수요 덕분에 수출이 급증하면서 중국이 눈부신 공업 성장을 이뤘”다. 자연스레 새로운 노동자 계급이 형성됐고, 이들이 훗날 “외국인 고용주는 물론이고 중국인 고용주와도 격돌”하게 된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과 조선 3·1 운동의 여진으로 1919년 5월 4일 베이징 대학의 구성원들이 앞장서 반제국주의·반봉건주의 운동을 일으켰다(5·4 운동). 이 운동은 수만 명이 참가한 파업으로 번져 “전국을 휩쓸었”다. 이렇듯 중국 사회는 열강과 구습에 맞서 새로운 분위기가 들끓던 중이었다.

저자 해럴드 아이작스는 ‘중국 혁명의 문제’를 다루며 “세계경제의 현 상황에서 일국적 과제는 세계적 과제와 분리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중국 농촌 경제의 특징과 함께 중국 노동자 혁명에 큰 영향을 준 1917년 러시아 혁명, 낙후한 식민지의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연속혁명, 볼셰비키 같은 혁명정당의 지도 등을 제시하며, “중국 혁명은 제국주의에 치명적 일격을 가하고 소비에트의 국가적 고립을 깨뜨릴 절호의 기회”라고 부르짖는다. 1927년 중국 산업 노동자가 2백50만 명, 수공업 노동자가 1천1백만 명 이상 있었다고 밝히며, 1905년 러시아 상황과 비교해 수치나 전투성 면에서 “현저한 유사성”을 보였다는 부분도 무척 흥미롭다.

1925년 홍콩 총파업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 1925~27년 중국 노동자들이 보여 준 혁명적 잠재력은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준다.

파업과 봉기, 그리고 “비극”

1919년 이후 맹아적 노동자 계급 정치조직이 등장해 일부는 사회주의 단체로 성장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의 불빛 속”에서 1920년 드디어 중국공산당이 설립됐다. 5·4 운동의 주동자 천두슈가 창당을 이끌었다.

중국공산당이 맞닥뜨린 첫 번째 문제는 노동계급 정당으로서 “부르주아 민족주의 국민당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였다. 공산당은 “민족주의 혁명운동이 가진 명백한 진보적 성격” 때문에 참가를 결정했다. 1920년 코민테른 2차 대회에서 레닌이 민족해방운동을 다루며, “’유아적 단계에서조차’ 독립성 보존을 가장 중요한 전제로 노동자 계급 조직이 민족주의 운동과 협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듯이 말이다. “공산당원들은 이미 국민당에 가입해 있는 남부 노동자들에 대한 영향력을 획득하고 싶어 개별 자격으로 국민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공산당의 독자적 전망은 당시 고려 사항에서 점차 제외됐다. 1923년 코민테른 집행위원회는 노동계급이 완전한 독자 세력으로 분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의 합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공산당원들은 “사실상 ‘절대적 독립세력’을 대표해 활동한다는 개념을 포기”했고, 이윽고 “1923년 6월 중국공산당 3차 대회는 “모든 활동을 국민당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입당 반대 목소리를 내리눌렀다.

“국민당·소련·공산당의 협력” 등을 담은 새로운 강령이 1924년 1월 국민당 1차 전국대표자대회에서 통과했다. “레닌이 바로 이 대회 개막일에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우연이자 역설이었다.

그럼에도 이와 무관하게 대중운동이 성장했다. 중국 공장 노동자들이 조직된 노동운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920년 광저우 기계노조가 대규모 파업에 나섰다. 1922년 홍콩 선원들이 파업을 거쳐 노조를 인정받고 임금 인상을 쟁취했다. 이후에도 파업은 계속됐다. 1923년 베이징·한커우의 철도 노동자들이 대파업을 벌였고, 상하이 노동자 4만 명이 24개 노조로 조직돼 파업을 이어 갔다. 그야말로 전국이 뒤흔들렸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국민당·공산당 연합의 요구” 때문에 질식당할 위험에 놓인다. ‘국공합작’은 공산당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하고 계급투쟁에 자기 제약을 가했다. 그래서 1926년 3월, 장제스가 광둥에서 첫 쿠데타를 일으켜 현지 공산당 지도자와 파업위원회 활동가들을 투옥하자 곧바로 트로츠키와 천두슈 등은 공산당이 국민당에서 탈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노동자 투쟁은 줄기차게 확산됐다. 1925년 상하이 조차지에서 경찰이 발포해 파업 시위대 10명이 죽은 5·30 사건을 계기로 강력한 파업 운동과 영국 배척 운동이 전국에서 펼쳐진다. 특히 광저우와 홍콩 등에서는 이중 권력의 맹아인 광저우노동자대표자회의가 구성됐다. 노동자들이 광둥성을 직접 통제한 것이다.

1927년 3월 상하이에서 노동자 80만 명이 총파업과 무장 봉기를 일으켜 군벌을 물리치고 상하이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4월 12일, 반혁명을 주도하던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무장 해제당한 공산당원과 투사들을 북벌 중인 장제스 군대가 대량 학살한다. “비극”의 장막이 걷힌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 혁명은 처참히 파괴됐다.

역사의 교훈

이런 오류와 배신 뒤에 공산당은 모험주의적·초좌파주의적 폭동을 이어 갔지만 큰 희생만 남기고 실패했다. 장제스의 공세에 직면한 공산당은 농민 게릴라 투쟁에 몰두하다가 결국 1934년 대장정이라는 험난한 도피 작전을 개시한다.

혁명 운동이 한창일 때 트로츠키는 노동자위원회[소비에트]를 건설해 혁명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명 잠재력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혁명가들은 국민당으로부터 독자적으로 조직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소수였다. 오히려 중국공산당의 스탈린주의 지도부는 혁명 패배가 낳은 재앙을 천두슈 탓으로 몰고 갔다.

《중국 혁명의 비극》은 이런 내용을 방대하게 풀어 쓴 대작이지만,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와 통쾌함과 쓰라림이 가득한 책이다. 사회 변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혁명가들의 독자적 조직과 지도 없이는 지배계급이 혁명을 잔인하게 진압하리라는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끈기있게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든 공감하리라 본다. 저자 해럴드 아이작스가 책 앞머리에 남긴 감동 어린 문구로 서평을 마치겠다. ”중국 혁명으로 죽어 간 영웅들과 살아남은 투사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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