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인문학을 ‘산업 수요’에 끼워 맞추는 코어 사업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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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고려대는 교육부의 재정 지원 사업인 ‘코어 사업’(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에 1차 선정됐다(지원금 3년간 해마다 37억 원). 그에 따라 학교 당국은 2학기에 코어 사업과 관련된 수업들을 개설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졸속적이고 비민주적이었다. 수업들은 수강신청 기간이나 정정기간에 급하게 개설됐다. 그중에 ‘인턴십’ 수업 8개는 소리 소문도 없이 수강신청 목록에서 사라졌다. 심지어 학교는 이미 사업을 시작한 뒤인 9월 5일에야 코어 사업 설명회(이하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산업 수요’에 끼워 맞추기
박근혜 정부는 올해 초부터 대규모 재정을 들여 ‘프라임 사업’(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육성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입학 정원을 공학·의약 계열에 대거 몰아주는 대학에 해마다 수십억~수백억 원을 지원한다. 이러한 공학 계열 중심의 대학 구조조정이 기초 학문을 말살한다는 비판이 일자, ‘인문계 달래기’용으로 코어 사업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 진흥”이라는 교육부의 취지는 허울뿐이었다. 교육부는 인문학을 진정으로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을 산업과 연계해 변형하도록 요구했다.
실제로 이번에 고려대에 개설된 과목 중에도 인문학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EML 융합전공’은 “라틴아메리카의 기업 경영”을, ‘인문학과 문화산업 융합 전공’은 “문화 산업”에 대한 내용을 배운다.
이렇게 기업 입맛에 맞는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 교육을 이윤 논리에 종속시킬 뿐만 아니라 학생, 교직원,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한다. 대학에 수익성 논리가 적용될수록 비싼 등록금에 비해 수업의 질은 떨어지고, 상대평가제 등 학생 사이의 경쟁도 강화되기 때문이다. 교직원과 비정규직 강사, 노동자들도 임금 삭감이나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대학 구조조정은 청년 실업의 대안이 아니다
프라임·코어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와 대학들은 “프라임·코어 사업이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고려대 당국도 “유럽과 라틴지역, 일본 등 다양한 지역에 대한 연구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강점을 살려 ... 해당 지역에 취업까지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학교가 한 것은 해외 기업에서 인턴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하는 ‘인턴십’ 수업을 개설한 것이다. “열정 페이”가 강요되는 인턴을 주선하는 것이 취업 대책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제까지 정부는 취업률을 높이겠다며 대학 구조조정을 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청년 실업률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실업 문제의 원인이 대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 위기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 맞춤형 대학 구조조정은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대학 구조조정은 실업의 진정한 책임을 가리며 대학과 학생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정책의 일부다. 진정으로 청년 실업을 해결하려면 정부가 나서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코어 사업은 인문학을 망가뜨리고, 문과대를 더욱 “취업 전문 기관”으로 몰아갈 것이다. 취업률과 돈벌이에 대학 교육을 종속시키는 코어 사업 추진을 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