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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체방크 위기:
제2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될 것인가?

최근 벌어진 도이체방크 위기는 2008년 세계경제 위기 때 시작됐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는 2005~07년에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을 부실 판매했고, 이 때문에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를 조사하던 미국 법무부는 최근 도이체방크에 벌금 1백40억 달러(15조 4천억 원)를 부과했다.

그런데 도이체방크는 예상치 못한 손실을 대비한 충당금이 62억 달러밖에 안 돼 벌금을 납부하면 자기자본이 감소할 형편이다. 자기자본 감소는 이자 비용을 높여 부도 위험을 키운다. 그래서 헤지펀드 10여 곳이 도이체방크에 맡겨 둔 자금을 인출했고, 도이체방크의 주가는 지난해 말 24달러에서 최근에 절반 이하인 11달러로 곤두박질쳤다.

ⓒ그래픽 김준효

2008년 9월 전 세계 금융시장을 공포에 빠뜨린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상기시킨 도이체방크 위기로 전 세계 주가가 폭락했고, 일명 ‘공포 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VIX) 지수도 급등했다.

9월 30일 미국 법무부와 도이체방크가 벌금을 54억 달러로 낮추는 합의에 근접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도이체방크 부도 위기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번 일은 어쩌면 더 큰 위기의 전조 현상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금융계는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투자은행

역사가 1백46년이나 된 도이체방크는 전통적으로 독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하며 덩치를 키워 온 상업은행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투자은행으로 탈바꿈해 채권 발행과 파생상품 거래 수수료 수익에 집중해 돈을 벌었다. 도이체방크는 2008년 경제 위기에서 살아남아 계속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이미 올해 초부터 도이체방크 위기설이 나돌았다. 2015년에 68억 유로(8조 4천억 원)의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면서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로 전환했다. 이 때문에 도이체방크가 ‘코코본드’(조건부 후순위 전환사채) 이자를 지급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 바 있다. 도이체방크는 6월에 실시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재무건전성 평가(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더욱이 리보금리(런던의 은행 간 금리, 보통 국제 단기 기준금리로 쓰인다)와 환율을 조작한 추문으로 신뢰까지 잃고 있다. 그래서 국제통화기금(IMF)은 도이체방크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금융회사로 평가했다.

물론 도이체방크의 유동성 자산이 2천4백억 유로이므로, 헤지펀드 자금 3백30억 유로는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또, 도이체방크는 보유 자산 1조 8천억 유로를 담보로 유럽중앙은행으로부터 무이자로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위기가 당장 도이체방크 부도 사태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도이체방크가 태풍의 핵이 될 가능성도 꽤 된다. 도이체방크가 관리하는 파생상품의 규모는 46조 유로(5경 5천7백조 원)이나 되고, 그중 4백10억 달러어치는 높은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도이체방크의 충당금은 62억 달러뿐이고, 그중 최소 54억 달러는 벌금으로 내야 한다. 파생상품에서 조금만 손실이 나도 도이체방크의 안정성은 크게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아직 드러나지 않는 잠재적 부실도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도이체방크의 부실은 다른 유럽 은행들로 번질 가능성도 높다. 도이체방크뿐 아니라 유로존 금융권 전반이 수익성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와 2011~12년 유로존 국채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유럽중앙은행은 대규모로 자금을 공급하고 금리를 최대로 낮췄다. 그러나 낮은 이윤율 때문에 투자가 줄어들자, 유로존 은행들은 돈을 빌려줄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가 이자율 마진마저 매우 낮아져 수익률이 곤두박질쳤다.

프랑스와 벨기에 합작은행인 덱시아, 이탈리아 최대 은행 우니크레디트, 이탈리아 2위 은행인 인텐사 산파올로 등 대형 유럽 은행들이 여전히 취약하다.

불황

물론 유로존 금융기관들의 수익성 위기는 유로존 경제, 더 나아가 세계경제의 불황이라는 환경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 달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간경제예측’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세계무역, 투자, 생산성 등의 성장이 저조해 세계경제(인도와 중국을 포함)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고, 2017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3퍼센트대 성장에 머물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경제의 성장률 둔화로 세계 교역량 증가율도 감소했다. 한진해운 같은 해운사와 그 배를 만드는 대우조선해양 같은 조선사들이 위기를 겪고 있는 것도 바로 세계 교역량이 정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이래로 투자도 급속히 줄어들었다. 최근 맥킨지는 ‘격변이 다가오고 있다’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중국은 2008년에 견줘 투자를 79퍼센트나 증대하면서 전 세계 투자를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속되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의 연간 투자 증가율은 2008~15년에 10.4퍼센트에서 2015~30년에 4.5퍼센트로 하락할 전망이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도 최근 보고서에서 “금융 위기의 세 번째 국면에 진입하기” 일보직전이라고 지적하면서, 신흥국의 과도한 부채를 언급했다. 신흥국 기업 부채는 2008년 이래로 지금까지 GDP의 57퍼센트에서 1백4퍼센트로 증대했다. 여기에 올해 말에 미국 연준이 금리를 또다시 인상한다면 일부 개도국은 금리와 환율이 폭등해 국가 부도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도 크레딧스위스(CS), 유비에스(UBS), RBS(스코틀랜드 소재 은행), 바클레이즈, 홍콩상하이은행(HSBC) 등 다른 유럽 대형 은행들에게 벌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세계경제가 또 다른 침체에 접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런 사건이 세계경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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