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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의당 당명 개정 총투표:
‘민주사회당’이 새 당명이 되길 바란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성명: 정의당 당명 개정 부결에 부쳐”를 읽으시오.

정의당은 9월 25일 임시 당대회에서 결정한 대로 “민주사회당”으로 당명 개정 여부를 10월 6일부터 시행될 당원총투표로 결정한다.

정의당 내에서는 투표 전 열흘 동안 다양한 찬반 운동과 토론이 진행됐다.

당명 개정의 필요성 논거는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되는 듯하다. 하나는 절차에 근거한 것이다. 지난해 진보결집+(더하기),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 등과 통합 때 당명 개정을 합의했고, 이를 통합당대회에서 결정했으니,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논거는 “정의당”이라는 당명이 불평등과 차별이 심화되는 이 체제에서 나름의 가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지향하는 바가 모호해서 더 선명한 이름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정의당 일각에서는 이번 당명 개정 절차 자체가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당명 개정은 정의당이 노동운동의 좌파 리더들을 포함한 상대적 좌파 세력들과의 통합 과정에서 합의했던 것이다.

주류 사회민주주의

현재 당원 찬반 투표 후보에 오른 대안적 당명 “민주사회당”은 좌파 지식인으로 활동해 온 한신대 노중기 교수가 제안한 것이다. 정의당 좌파 다수의 지지를 받는 듯하다. 당대회 투표에서도 압도적으로 1위를 했다.

노 교수 등 “민주사회당” 지지자들은 정의당이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추구하는 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주류 사회민주주의부터 좀 더 좌파적인 민주적 사회주의까지 포괄할 수 있는 “민주사회당” 명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주류 사회민주주의가 그 본산지인 유럽에서 배신과 타락으로 실패한 마당에 “사회민주주의”(사회민주당)보다는 더 왼쪽의 경향까지 포괄 가능한 ‘민주적 사회주의’가 새 당명과 기조로 좀 더 나은 듯하다. 배신의 전력 때문에 주류 사민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들(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주류 사민주의는 약화돼 왔다. 대신에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자인 영국 노동당의 코빈, 독일의 좌파당 등이 최근 개가를 올렸고, 스페인과 그리스에서도 기성 사민당의 대안으로 각각 포데모스와 시리자라는 좌파 개혁주의 정당이 좀 더 유력하다.

물론 민주적 사회주의는 혁명적 사회주의가 아니다. 20세기 초 독일 사민당에서 점진적 개혁을 주장한 베른슈타인, 스탈린주의에서 사실상의 사회민주주의로 전환한 유러코뮤니즘 등이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여러 버전의 좌파 개혁주의들도 그런 명칭을 쓴다. 오늘날 구 소련의 관료 독재 체제와 정치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보여 주고자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듯하다.

상식의 패권

정의당 우파는 “민주사회당” 명을 부결시키자는 온라인 캠페인을 벌이는 듯하다. 참여계의 일부는 “사회민주당”(당대회에서 2등을 함)을 지지하는 듯하다.

그들은 “민주사회당”이 표방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너무 급진적이고 좌파적이라서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명추천게시판에서는 “사회민주당”이 2백4명 추천으로 1등을 했는데, 당대회에서 밀린 것은 좌파들 간의 협잡이며, 비민주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대회에서 선출된 대의원들에게서 2백2표를 받은 “민주사회당”이 게시판 추천 2백4개보다 지지를 적게 받는 것이라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렇게 따진다면, 좌파가 낸 “평등사회당”도 게시판에서 1백60개 추천을 받았지만 당대회에선 30표도 못 받고 꼴찌를 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온라인 게시판은 민주주의의 정확한 구현 장소가 아니다. 온라인이 민주적이라면, 애초에 당대회도 필요 없을 것이다.(이런 온라인 민주주의론을 더 일반화해 적용하면, 물질적 현실에서의 실천과 조직의 중요성이 망각되기 십상인데, 실제로 억압과 저항이 벌어지는 것은 물질적 현실에서다. 온라인은 단지 가상 현실이거나, 물질적 현실의 극히 일부를 재현할 뿐이다. 그래서 온라인 민주주의론은 현실에서 저항을 진전시키는 데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사회당” 반대론은 좌파 일반에 대한 혐오적 언사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행태는 “민주사회당” 반대론자들이 당 안팎에서 좌파보다 자신들이 더 다수의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좌파에 반감을 가져 온 참여계 당원들의 영향도 꽤 있는 듯하다. 참여계 지도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등 강성 좌파의 발목잡기 때문이었다고 오랫동안 책임을 전가해 왔다. 그들은 ‘상식’의 정치를 내세우는데, 상식은 입헌주의와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관을 넘지 않는다. 또한 상식이 경험주의적 인식에 불과하다는 건 방법론의 입문적 정보이다.

기회

물론 “민주사회당” 반대론자들의 일부는 불평등이 커지는 현실에 반발해 급진화·정치화하는 과정에서 정의당을 생애 최초의 정치적 거처로 삼은 청년들이 포함이 돼 있을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상당히 안착된 상황에서 모종의 좌파 운동과 조직의 경험이 없이 정치 세계로 들어섰기 때문에, (헌법 존중 같은) 자유민주주의적 상식의 영향을 받기가 쉽다. 게다가 개인주의에 더 익숙할 것이다.

이처럼 저항적이지만 진보적 자유주의 수준의 사고에서는 (혁명적 버전이든 좌파개혁주의 버전이든)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좌파가 비상식적인 집단으로 보이기 쉽다. 일반으로 ‘자율’, ‘개인’, ‘유희’보다 ‘조직’, ‘노동중심성’, ‘계급’을 강조하는 좌파가 ‘꼰대’처럼 여겨질 법도 하다.

그러나 혼란된 세계관의 다른 표현인 상식으로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사회를 조금치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상식에 도전할 때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이윤 감소에 자본가들과 그 정치인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상식으로 알 수 없다.

지금 경제 불황, 제국주의 간 군사적 긴장 고조, 기후 변화, 세월호 참사, 지진과 핵발전의 위협, 툭하면 안전사고로 죽는 노동자 등의 사례들에서 보듯, 자본주의의 맹목적 이윤/군사 경쟁 시스템은 인류를 몰상식하게 위협하고 있다.

체제의 이런 위기와 혼돈상을 볼 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전혀 황당하거나 엉뚱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사회주의적 투쟁은 노동자·민중을 위해서는 아주 필요하고 공공연히 표방돼야 할 일이다. 그러려면 사회주의적 투쟁의 주축이 될 노동계급 투쟁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조직돼야 한다. 이런 일들이 좌파의 정치적 ‘책임’이다.

이 점에서 “민주사회당”을 지지하는 정의당 좌파의 일부가 민주사회당 명이 꼭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건 아니라는 식으로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안타깝다.

정의당은 최근 지도부 자신이 금융·공공 파업을 지지하면서 파업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정의당 내 우파들은 이를 “민주노총에 구걸”한다고 비하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이야말로 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다. 그리고 지금 청년들 사이에서 보듯이, (조직) 노동자 운동은 전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지 않다.

이런 상황과 정의당 지도부와 의원단이 이 투쟁들을 지지하는 일은 정의당 좌파에게 정치적으로 전진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분명하게 좌파적 비전과 지향성을 내놓고, 새로운 청년 세대들과 인내심 있게 설득과 토론, 논쟁을 해야 한다.

2016년 10월 5일

김문성(〈노동자 연대〉 편집팀을 대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