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노동자들은 정부와 싸워 이긴 경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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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29퍼센트로 떨어졌다. 국회 정상화 이후에도 온갖 쟁점들이 여야 대치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 위기 심화에 직면한 정부와 기업들의 위기의식이 날로 커지고 있다. 2008년 금융 공황과 함께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와 침체는 한국 기업들도 어려운 처지로 내몰고 있다. 최근 도이체방크의 파산 위험으로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에 유가보조급 지급 중단 등을 협박하고 있지만, 유가보조금은 부정수급이 드러난 경우 외에는 지급을 중지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와 있다. 정부가 대국민 담화에서도 인정했듯이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화물 노동자들에게 기본적인 권리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업무개시 명령, 면허 취소 운운하는 것은 부당하다.
잠재력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에 “물류 대란”을 걱정하는 것은, 역으로 노동자들이 기성체제에 도전할 잠재력이 크다는 점을 보여 준다. 화물 노동자들은 강력한 힘으로 몇 차례나 정부를 상대로 싸워 이긴 경험이 있다.
2003년 5월 전국의 화물 노동자들이 물류를 막으며 단호하게 파업에 나서자, 노무현 정부는 서둘러 지입제 폐지, 과적 근절과 같은 양보에 나서야 했다. 2008년에도 촛불시위로 위기에 내몰렸던 이명박 정부를 몰아붙여 운송료 인상, 표준운임제 법제화 약속을 받아냈다. 화물 노동자들은 물류 수송을 멈춰 전 산업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을 통해 정부와 사용자들의 똥줄을 타게 만들었던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화물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설 때 ‘물류를 멈추는 힘’을 과시하곤 했다. 2008년에 세계적으로 유가가 인상됐을 때, 네덜란드 운송 노동자들은 고속도로에서 시속 50킬로미터의 저속주행으로 도로를 마비시켰고, 스페인과 필리핀의 트럭 노동자들은 고속도로를 봉쇄하거나 도심 교통을 마비시키며 투쟁했다.
대체수송
현재 한국에서 컨테이너 수송의 92퍼센트를 화물차가 담당하고 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그중 30~40퍼센트를 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화물연대가 부산항을 비롯한 주요 항만을 봉쇄하고 파업을 벌인다면 수출입 물류 수송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 때마다 철도 대체수송을 늘려 대응해 왔다. 그러나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이 지속되면 이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화물·철도 파업이 시너지 효과를 낳으며 박근혜 정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회를 이용해 단호하게 투쟁하면 정부의 화물운송시장 구조개악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정부가 번번이 뒤통수를 치며 약속을 어겨 왔던 표준운임제 도입, 지입제 폐지 등을 실행하도록 압박할 수도 있다.
2003년 5월 파업 때 〈조선일보〉가 두려움에 떨며 했던 말처럼 화물 노동자들이 “물류를 마비시켜 나라를 결딴낼 수 있는 강자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면, 위기에 빠진 박근혜 정부에 맞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화물 노동자 조건 개선은 도로 안전에도 이롭다
정부와 보수 언론은 잦은 화물차 사고의 원인으로 졸음운전을 지목하면서도, 졸음운전을 부르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외면한다.
화물 노동자들은 낮은 운송료 때문에, 과적, 장시간 운송을 끊임없이 강요 받는다.
야간에만 화물차 도로비가 50퍼센트 할인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위험한 야간 운전에 나서야 한다. 지난 10년간 화물차 사고로 매년 평균 1천2백31명, 하루 평균 3.37명이 사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화물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도로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때문에 호주에서는 2012년에 도로안전운임법을 제정해 도로 안전을 위협하는 ‘부당한 경제적 압박’을 없애도록 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정책을 사용해도 모자랄 판에, 박근혜 정부는 화물운송시장 구조 개악으로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켜 도로 안전을 더 위협하려 한다. 그는 대선 공약이었던 ‘화물차 도로비 전일 할인’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정부에 맞선 화물연대 파업은 노동자들의 조건을 지키고 도로 안전을 지키기는 정의로운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