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칸촌:
중국공산당은 어촌 주민보다 개발업자의 이익을 우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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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부패한 공산당 서기를 몰아내고 주민이 직접 지도자를 선출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진 광둥성 우칸촌이 다시 전쟁터로 바뀌었다.
올해 6월 중순 우칸촌 주민들이 2011년에 부당하게 수용된 마을 토지를 돌려 달라며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던 차에 경찰이 린쭈롄 우칸촌 당서기를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하면서 사태가 확대됐다. 주민 3천5백여 명은 “우리 서기를 돌려 달라”, “우리 토지를 돌려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촛불시위를 벌였다.
현지 검찰은 린쭈롄이 청부업자 선정과 자산 구매 과정에서 거액의 사례금을 받았다고 밝혔지만, 이를 믿는 주민은 거의 없다. 9월 13일 경찰 당국은 촛불시위를 주도한 주민 13명을 체포하려다 주민들이 저항하자 고무총과 최루탄을 이용해 강제 진압했다. 그리고 시위 가담자 70여 명을 체포했다. 10월 8일 광둥성 포산시 찬청구 인민법원이 린쭈롄에게 징역 3년 1개월을 선고했지만 린쭈롄은 즉각 항소했다.
작은 어촌 마을인 우칸촌이 전쟁터가 된 이유는 2011년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행정 당국과 공산당 간부는 우칸촌 토지를 홍콩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헐값에 넘기고 주민들에게는 쥐꼬리만한 토지 매각 보상금만 주려 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동의가 없는 토지 매각은 불법이었다.
주민들은 삶의 터전이 빼앗기는 것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주된 요구는 토지 강제수용 철회와 비리 간부 처벌이었다. 결국 중앙정부는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주민 대표인 린쭈롄을 우칸촌 당서기로 인정했다.
분노
그런데 약속과 달리 토지는 반환되지 않았다. 게다가 주민 대표인 린쭈롄 당서기가 체포되자 우칸촌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중국 동남해 연안의 많은 도시들은 산업 발전 덕분에 근교의 농촌을 흡수하면서 확장해 왔다.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의 역사는 농촌이 도시에 종속되는 역사라고 지적한 바 있다. 우칸촌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광저우와 둥관 등의 도시가 산업 중심지로 변모하면서 그 주변의 우칸촌 등 농촌과 어촌이 개발 대상이 됐다.
도시가 농촌의 집체 소유 토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에게 충분한 보상금이 지불되지 않고 불법이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다. 해마다 중국 농민 4백만 명이 불법으로 토지를 빼앗기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칸촌 사례는 중국이 주민들의 민주적 의사조차 무시되는 비민주적 사회임을, 따라서 사회주의 사회가 아님을 잘 보여 준다.
용어 설명
집체 소유 토지
중국의 토지는 국가 소유와 집체 소유로 나뉜다. 국가 소유는 중앙정부의 토지관리 부서가 소유한 경우를 뜻한다. 집체 소유는 지방 경제 조직(향·진·촌)이 소유한 경우를 뜻한다. 즉, 그 경제 단위에 소속된 주민의 집단적 소유를 뜻한다.
중국 헌법과 토지관리법에 따르면, 도시의 토지는 국가 소유이고, 농촌과 도시 근교의 토지는 법률에 국가 소유로 규정된 것을 제외하면 집체 소유다. 따라서 우칸촌의 토지는 집체 소유이므로, 우칸촌 주민들의 소유인 셈이다.
1978년의 개혁과 개방 그리고 1998년의 주택 상품화 이후 도시의 토지는 여전히 국가 소유지만, ‘토지 사용권’은 타인에게 매매·임대·저당할 수 있다. 즉, 토지 사용권은 토지의 점유·사용 수익권은 있지만 처분권은 없는 권리를 뜻한다.
2003년 중국 정부는 집체토지청부법을 발표했다. 이 법은 집체 토지에 대한 농민 개인의 사용권을 인정함으로써 토지를 양도하거나 임대해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농촌의 집체 토지에 대한 상품화가 한발 진전된 것으로, 발전하고 있는 제조업이 집체 토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은 것이었다.
2008년 중국은 경작지 감소 상황을 개선하고 토지 이용을 효율화하기 위해 ‘전국 토지이용 총계획 강요(2006~2020)’를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식량 안보와 사회 안정을 위해 경작지 18억 묘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중심으로 한 산업 발전 때문에 도시 근교의 경작지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