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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희 체제와 다른 이화여대를 위해:
학생 참여 보장하는 총장 직선제 도입하고, 정유라 특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10월 21일 이화여대 이사회에서 최경희 전 총장의 사표가 수리됐다. 장명수 이사장은 차기 총장 선출을 위한 논의를 곧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라이프단과대학 졸속 추진에서 최경희 전 총장의 ‘불통’ 행정은 정점을 찍었을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비민주적인 학내 의사 결정 구조도 밝히 드러났다. 학생들은 이사회와 교무회의에서 미래라이프단과대학 추진이 모두 통과된 다음,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는 평의원회 직전에야 상황을 알게 됐다.

정유라 특혜 의혹은 극소수의 권력자를 위해 총장과 보직교수들이 밀실에서 학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다.

최경희 전 총장 체제와 다른 민주적인 이화여대를 만들려면 차기 총장 선출부터 학내 구성원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지금껏 이화여대 총장은 매우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임명돼 왔다. 1대에서 9대까지는 이사회가 총장을 지명했다. 1992년 10대 총장 선출 때는 전체 교수가 참가하는 직선제(직원과 학생은 투표권 없음)로 선출했지만, 1996년 다시 간선제로 회귀했다. 그 후 25명에서 75명 사이 규모로 총장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를 꾸려, 총추위가 추천한 3명의 후보 중 한 명을 이사회가 선임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추천한 3명 중 누가 뽑힐지는 완전히 이사회에 달려 있는 것으로, 이사회가 총장 선임에서 결정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총추위에는 직원 대표와 동문 대표가 포함된 경우는 있지만 학생들은 단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

총장은 학내 전반의 업무를 총괄하며 학생들과 교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반대로 학생들이나 대다수의 교원들은 총장에게 거의 영향을 줄 수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열 명도 채 안 되는 이사회가 학교를 지배하는 비민주적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미래라이프단과대학 졸속 추진을 막기 위한 대치 상황에서 한 교수가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고? 4년 있다 나가는데?”라고 말한 것은 학교의 진정한 주인은 따로 있다는 인식을 흘낏 보여 준 망언이었다.

그러나 최경희 전 총장의 비민주적 행정을 막고,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최경희 교수를 물러나게 한 진정한 힘은 학생들의 대중적 항의에서 나왔다. 학생들은 총장을 선출할 권리가 있고, 더 나은 총장을 직접 뽑을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이번 총장 선거부터 학생, 직원, 교수가 모두 포함된 민주적 총장 직선제를 도입해 학내 구성원들의 열망이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부산대에서는 교육부의 압박 때문에 총장직선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교수와 교직원의 직선 투표와 함께 전체 투표수에서 학생 비율을 할당하는 방식의 총장직선제를 시행했다. 학생들의 의사가 반영되려면 이 같은 방식에서 학생 참가 비율이 더 커져야 할 것이다.

물론 총장 직선제가 모든 것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직선제를 쟁취하면 학교 측은 학생들의 눈치를 조금이라도 봐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학생들의 주장이 학사에 반영될 틈이 약간 열리게 될 것이고, 그 틈을 통해 학교 당국을 견제하고 압력을 넣기도 용이할 것이다.

정유라 특혜 의혹 철저히 조사해야

10월 21일 이사회에서 장명수 이사장은 정유라 특혜 의혹에 대해 이사회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보도를 보면, 교육부에서도 21일부터 정유라 특혜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당초 교육부는 11월 초쯤 감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최순실 게이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좀 더 빠르게 움직이며 꼬리 자르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러나 교육부와 이사회가 정유라 특혜 의혹을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 믿긴 어렵다. 교육부는 최경희 전 총장이 정유라 특혜의 대가로 받았을 수 있는 재정지원사업을 몰아 준 장본인이다. 이들은 조사나 감사를 통해 대충 사안을 덮으려 할 수도 있다. 실제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 이화여대 관계자도 교육부 조사 결과가 학사 관리 부실 정도로 끝날 것이라 보고 있다고 전했다.

게다가 이사회도 미래라이프단과대학 사업 추진을 승인해 줬으며, 아예 정유라를 위해 만든 단과대가 아니냐는 불명예스러운 의혹을 받는 신산업융합대학 설립도 승인해 준 곳이다.

또 최근 검찰도 정유라 특혜를 수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미 '최순실 게이트'의 일부로 얽혀 있는 부패한 검찰이 특혜 의혹을 제대로 밝힐 것이라 신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기 위해선 이사회나 교육부, 검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필요하다. 교수협의회에서도 자체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착수하고 있다. 정유라가 직접 특혜를 받았다고 지목된 스포츠학과나 의류학과에서도 학생들이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움직임들이 존재한다. 교육부나 이사회, 학교 당국과 독립적으로 교수와 학생이 함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서 사례와 증거를 수집하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

당연히 이런 진실 규명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 이화인들의 움직임도 계속돼야 한다. 시험기간이 끝나면 대규모 시위를 비롯한 항의 행동을 계속 이어나가며 학교 당국이 꼬리 자르는 수준에서 문제를 덮지 못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