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기후변화협약 발효:
기후 위기 해결은커녕 심화시키는 체제의 무정부성을 보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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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파리 기후변화협약이 발효된다. 그런데 이 협정의 핵심은 지배자들이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이라는 말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가이드라인 구실을 한 것은 교토협약이었다. 원래는 2012년부터 교토협약보다 더 강력한 협약을 만들어 적용할 예정이었지만 지금껏 시간을 끌어왔다. 주요 배출국들이 불참 또는 중도 이탈하면서 교토의정서는 사실 2012년 전부터 이미 무력화됐다.
파리협약으로 인한 ‘신기후체제’는 2020년부터 적용된다. 2016년 11월 ‘발효’는 선언적 의미에 지나지 않고, 만 3년 이상 또 방치되는 것이다. 지금 지배자들은 어떻게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친환경 모양새는 갖추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다.
그럼 2020년부터는 온실가스 감축을 기대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요’다. 파리협약은 각국의 ‘자발적’ 노력에 의존한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이다! 온실가스 양대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이 맘 편히 동참한 이유다.
단적으로,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온실가스를 ‘37퍼센트’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숫자 놀음을 걷어치우고 절대적 국내 배출량을 놓고 보면, 향후 14년 동안 고작 9퍼센트가량 줄이겠다는 것이다(하단 표 참조). 다른 나라들의 자발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연도 |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목표치 | 비고 |
---|---|---|
1990 | 2억 9천6백만 톤 | 교토의정서 기준 연도 |
2013 | 6억 9천5백만 톤 | 가장 최근 정부 통계치 |
2030 | 6억 3천2백만 톤 | 정부의 감축 목표 |
파리 협정은 ‘기후변화를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2도 이내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그렇게 할 수단이 고작 각국 정부의 ‘자발성’인 탓에 과학자들은 이대로라면 2.7~3.7도만큼 기후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1.5도와 2.7~3.7도 사이에는 숫자 이상의 중요한 차이가 있다. 기후변화가 섭씨 2.0도 이상으로 진행되면 기후의 체질이 질적으로 바뀌어서, 기후변화가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 예상된다. 마치 처음 불을 피울 땐 땔감을 구해야 하지만, 불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면 스스로 주변을 태우며 번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재 기후변화는 1.3도 정도 진행됐고, 2020년까지 방치하는 것만으로도 1.5도 이상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예상한다. 그래서 저명한 기후과학자인 미국 제임스 한센 박사는 파리 협정이 “사기”, “협잡”이고 “실천은 없고 약속만 있다”고 일갈했다.
이미 각국 지배자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절제하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을 각종 현안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금 미국 오바마 정부는 셰일가스 개발을 위해 2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원유 수송관을 건설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원주민과 기후활동가들이 반대하고 나서자 7개 주에서 중무장한 병력을 동원해서 시위를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이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물리적 탄압도 서슴지 않는다. 세계 시장에서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셰일가스를 계속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줄이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석탄 화력발전소 증설 계획을 버젓이 내놓고 있다. 석탄은 석유나 천연가스보다도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량이 높아 화석연료 중에서도 ‘최악의 연료’로 악명이 자자한 데 말이다.
국제적으로 석탄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제 석탄 가격이 낮아지는 이유를 보면 한국 정부뿐 아니라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8~13년에 중국과 인도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려고 막대한 양의 석탄을 수입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네시아는 이 시장을 차지하려고 대대적으로 탄광을 개발하는 등 석탄 생산량을 늘렸다. 그런데 중국이 국내 탄광을 개발한 데다 경제 성장까지 둔화하자 석탄 수요가 줄었고, 결국 과잉생산 때문에 석탄 가격이 낮아진 것이다. 그 결과, 한국뿐 아니라 베트남 등 많은 아시아 나라들은 적어도 십수 년 동안 석탄 사용량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미국 에너지 정보청, ‘2016년 에너지 전망’).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장기적 안목은커녕, 이윤에 눈이 멀어 단 몇 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자본가들 탓에 폐쇄해야 할 석탄 화력발전소가 도리어 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가로막는 요인의 뿌리에는 맹목적 경쟁과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삼는 자본주의 작동 원리가 도사리고 있다. 풍력, 태양력 등 재생가능에너지 기술은 온실가스 배출이 훨씬 적지만 인간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논리 때문에 아직도 대대적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기는커녕 국내 중공업 기업들은 최근 위기를 겪으면서 풍력 터빈 개발 부문을 가장 먼저 폐쇄하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본주의 자체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 소수의 과학자나 정책 결정자들이 아니라 노동계급 대중이야말로 자본의 논리에 가장 일관되게 반대할 힘을 갖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생태 문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전망과 현실의 노동자 운동을 결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늘날만큼 중요했던 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