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추미애 ‘영수’회담?:
민주당이 이러라고 1백만 명이 시위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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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11월 14일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퇴진”을 당론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당대표 추미애가 기습적으로 박근혜와 ‘영수’회담을 열기로 합의하고 한나절 만이다. 이 의총에서는 영수회담 합의에도 찬반 논쟁이 됐다고 한다. 이런 동향을 들었는지 청와대는 내일 회담이 오후 3시로 결정됐다고 속보를 날렸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날 영수회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박근혜퇴진비상국민행동, 민주노총, 정의당, 참여연대 등 수많은 단체들이 민주당을 성토했다. 민주당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영수회담 결정뿐 아니라 우유부단하게 모호한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민주당과 문재인을 공개 비판했다. 이런 항의와 압력 때문에 민주당 의원들은 퇴진을 당론으로 해 쏟아지는 비난을 피하려 한 듯하다.
그러나 민주당의 당론이 바뀌었어도, 추미애가 영수회담을 제안해 퇴진의 대상일 뿐인 박근혜를 현 정국의 중요한 행위자로 인정해 준 잘못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리고 사실상 문재인의 당이 된 민주당에서 추미애가 단독으로 그런 일을 벌였으리라고 믿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진실로 그렇다면, 문재인과 민주당 의원들은 오늘 추미애를 탄핵하고 영수회담을 중단시켰어야 한다. 퇴진 의견을 전달하러 만난다는 것도 어줍짢은 변명이다. 민주당도 참여한 12일 시위가 명백히 박근혜 즉각 퇴진의 뜻을 전달한 것인데, 민주당이 뭐라고 그 뜻을 다시 전달한단 말인가?
게다가 민주당을 여전히 믿기 힘든 것은, 오늘 오후에 바로 여야 원내교섭단체 정당들끼리 합의한 별도 특검 때문이다.
우선, 특검이나 국정조사 요구 자체가 즉각적인 정권 퇴진 요구와는 상충된다. 그 형태가 무엇이든, 또 아무리 선의로 봐 준다 해도, 지금 박근혜를 조사하자는 것은 박근혜의 죄목을 밝혀 단죄의 명분으로 삼자는 것인데, 이는 즉각 퇴진에 사실상 반대하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퇴진·탄핵을 바라는 60퍼센트 넘는 사람들이, 12일에 거리로 나온 1백만여 명이 박근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고 즉각 퇴진을 요구했단 말인가?
게다가 이 별도 특검 합의문을 보면, 수사 대상이 최순실로 한정돼 있다. 기만적인 검찰 수사에서조차도 수사 대상의 몸통이 바로 박근혜임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야합을 한 것이다.
따라서 영수회담 합의를 비판한 정의당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별도 특검 합의도 공개 비판해야 한다.
정리하면, 영수회담을 하고 (아무리 야당 추천이라도) 특별검사를 임명하게 하는 것은 궁지에 몰린 박근혜와 새누리당에게 숨 쉴 틈을 주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온 국민이 4년 동안 확인한바, 야당 대표가 단독 회담에서 퇴진하란다고 박근혜가 순순히 물러날 인간인가?
12일 시위를 보고 잠을 못 이뤘을 새누리당의 비주류가 집회의 인기 구호인 “새누리당 해체”를 자기들 입장으로 받고, 박근혜가 덥썩 추미애를 만나겠다고 하는 건 쏟아지는 소나기를 잠시 피하고 역공할 기회를 엿보려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런 박근혜에게 우산을 씌워 주겠다는 “뜬금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12일 1백만 퇴진 시위의 한 귀퉁이에 슬쩍 끼더니, 그 열망을 자신들의 정략적 이해를 위한 지렛대로만 삼으려 한 것이다. 박근혜 즉각 퇴진이 아닌 어떤 것을 타협책으로 내놓는다면 민주당이 스스로 배신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박근혜퇴진비상국민행동과 그 소속 단체들은 옳게도 민주당을 강력히 규탄하고 즉각 퇴진 요구를 재확인했다. 퇴진행동은 애초 요구안에도 없는 별도 특검을 지지하지 말아야 하고, 더 크고 심화된 대중 투쟁 건설에 주력해야 한다.
김문성(〈노동자 연대〉 편집팀을 대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