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단상점거자들을 방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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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주들과 그들의 언론, 노무현 정부는 입을 모아 지난 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비난한다. 게다가 기아차 노조 인사비리도 한데 싸잡아 매도한다. 둘은 서로 성질이 다른 것인데도 말이다.
후자는 옹호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매우 우파적인 노조 관료들이 보통의 노동자를 팔아넘긴 배신 행위요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행위로 대의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용자들·언론·정부의 위선으로 가득 찬 비난은 듣기가 괴롭다. 그들 자신의 뇌물수수·비자금·차떼기 등 온갖 비리가 대개 기아차 노조 비리의 수백 배쯤 되는 규모라는 점은 제쳐 두더라도, 도대체 노동자들의 의사를 거슬러 비정규직을 양산해 온 것은 누구인가?
노동자들이 제대로 조직돼 있지 않은 직장에서 정규직과 이간시키고 정규직에 압박(노동강도 강화와 해고 위협 등을 통해)을 가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그들 중 사기가 낮은 일부를 대리인으로 매수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대리인들을 통해 나머지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것도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일은 노동자들이 채용 비리를 들춰내 저항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용자들과 언론, 정부가 선수를 쳐 비리를 공론화하고 노동운동 마녀사냥에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단상점거 사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불행한 일인 건 사실이지만, 언론과 정부가 묘사하는 것처럼 끔찍하고 흉측하고 섬뜩한 사건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 일에 연루된 비정규 현장파 활동가들은 부패한 기아차 노조관료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사용한 방법에 대한 토론을 하기 전에 먼저 투사들과 활동가들은 그들이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사용자들의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는 투쟁을 지지하고자 하는 정신으로 가득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기아차 노조 간부들이 “자본의 노동계 부관”이었다면, 이들은 자본의 횡포에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항거하려 한다는 대의가 있었다. 그들은 우리편이다.
그들은 비정규직 차별을 증오했고, 기아차 노조 간부들은 비정규직 차별로부터 이득을 얻으려 했다.
그들과 기아차 노조 간부들을 한데 뭉뚱그려 “부도덕”과 “타락”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형식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사회적 합의”에 대한 반대의 방식에 다소간 지나침이 있었다손 쳐도 그것은 지도자들의 계급협력적 단속에 대한 격렬한 반발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격렬함“의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같은 노동자에게 폭언과 폭행 사용,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 따르기를 거부함, 선출된 지도부를 무시함, 노사협상의 불가피성 자체를 부정하는 초좌익주의 등의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또, 대의원대회의 사회적 교섭 결정으로 모든 게 끝장이라는 식의 비관적 사고는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결국 노조 회의장이 아니라 생산현장과 거리에서 노동조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모든 비판은 그들을 옹호·방어함으로써만 그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개량주의적 지도자들도 이런 비판을 이용해 자신들의 처신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투사들과 활동가들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충돌 사건을 보도하면서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주류 언론과 달리 사태의 책임이 노동자 억압을 강화하고 있는 사용자들과 정부, 그리고 부차적으로는, 이들에 저항하면서도 협조할 태세가 돼 있는 한결같지 못한 지도자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치인들과 주류 언론은 투쟁과 전투성 자체를 원인으로 지목하기 위해 사태의 원인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다.
그 원인의 일부인 개량주의적 지도자들이 원인의 자연스런 결과일 뿐인 단상점거자들을 속죄양 삼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징계 계획 철회하고 사용자들의 공격에 맞서 저항을 조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