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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 ― 삶이냐 이윤이냐

노동시간 단축 요구에 대한 지지가 어느 때보다 뜨거워지자 주 5일 근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왔던 김대중은 “올해 안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국민적 지지에 압력을 느낀 듯하다.

노동시간 단축 요구에 대한 지지 여론은 총선시민연대에 대한 지지율 80퍼센트에 육박할 정도로 높고 뜨겁다. 한길리서치에 따르면 응답자의 77.8퍼센트가 주 44시간 노동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하는 주 5일 근무제에 찬성했다. 가족들이 함께 쉬어야 한다는 의견도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다. 70.4퍼센트에 이르는 사람들이 주 5일 수업제를 지지했다. 전교조 김현준 부위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교생들의 수업 일수는 2백22일로 미국(1백80일), 영국(1백90일)을 비롯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 가운데 학생들의 수업 부담이 심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주 5일 근무제가 되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응답이 30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취미 생활 및 여행 등으로 여가를 즐기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28.6퍼센트로 그 다음으로 많았다. 우리는 출근 시간에 시내버스와 지하철에서 졸음에 지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의 삶을 만성 피로의 늪으로 밀어넣는다. 장시간 노동은 가정 문제를 낳기도 한다. 일에 지친 아빠는 아이들과 놀아 줄 시간도 없고 녹초가 된 사람들은 원만한 부부 생활도 쉽지 않다.

장시간 노동은 여성들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 아빠가 일에 지쳐 있기 때문에 가사노동과 육아는 고스란히 엄마 몫이 된다. 노동자들에게 휴일은 즐기는 날이 아니라 잠자는 날일 뿐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휴일날 늦잠을 잠으로써 평소의 잠 부족을 해소하고, 식사·목욕 등도 평일보다 길게 한다. 휴일은 단지 생리적 휴식을 위한 날일 뿐 자신을 계발할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노동자들에게 자기 시간은 거의 없다.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노동자들이 생각할 여유와 삶을 즐길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생길 수 있다.

한편에는 장시간 노동에 지쳐 있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간절히 일하고 싶은 실업자들이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한마디로 노동시간 단축 운동은 우리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미래를 위한 운동이다.

시기 상조론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기업주들은 갖가지 논리를 들이대면서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하고 있다.

첫째, 시기 상조론이다. 김대중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시간 단축이 일할 분위기를 저해해 경기회복에 걸림돌이 되므로 경기가 완전히 회복된 다음에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나라는 최장시간 노동국이자 산재왕국이다. 일할 분위기를 저해하는 것은 오히려 장시간 노동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으로 우리 나라 제조업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50시간을 일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간은 요르단(주 58.3시간), 이집트(주 57.0시간), 수단(주 56.1시간), 스리랑카, 마카오, 터어키에 이어 7위를 기록했다.

노동시간이 늘어났던 작년 한 해 동안 노동자의 사망률과 질병은 더 늘었다. ‘시사매거진 2580’에 따르면, “올해 과로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은 작년에 비해 13.7퍼센트, 질병은 29.6퍼센트가 더 늘었다.”

최근 한 보고서는 우리 나라 대기업 직장인들 80퍼센트가 정신적 황무지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르 기앙은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지나친 긴장으로부터 오는 정신적 피로 때문에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말하는 것조차 귀찮은 불쾌감, 초조감, 모든 것을 내팽개 치고 싶은 심정, 나른함과 얼빠진 상태에 빠져 라디오를 듣는 것도 책을 보는 것도 다 귀찮아 하고 휴일에도 외출할 기분이 생기지 않아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노동자가 지니고 있는 인간적인 소질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노동시간의 역사》, 형성사, 145쪽)

장시간 노동은 끔직한 산업재해를 낳는다. 우리 나라 중대 산업재해율은 세계 제1위를 기록하고 있다. 산재로 공식 인정을 받아 죽는 사람만 하루에 10명이 넘고, 3일 이상 치료해야 하는 중경상을 입는 사람만 해도 1년에 9만 명이 넘는다. 사망률은 영국의 30배나 된다. 버논의 연구에 따르면, 12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 10명이 재해를 당한다고 할 때 노동시간이 10시간으로 줄어들면 재해를 당하는 사람은 8.3명, 여자는 3.8명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경총의 김정태 조사부장은 “근로시간이 40시간으로 단축되면 14.7%의 임금인상 효과가 발생하는 등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진다”며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6천 달러에 달한 1991년에 주 44시간제를 도입했고 주 40시간제는 1997년에 정착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기 상조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64년 전인 1936년에 주 40시간제를 도입했고, 미국, 영국, 서독에서는 2차세계대전 직후에 정착됐다. 일본 노동자들도 일찍이 1948년에 8시간 노동제를 쟁취했다. 1957년에는 전도회의와 총평(일본의 2대 전국적인 노동조합)이 노동시간을 8시간에서 7시간 45분으로 단축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파업을 벌여 마침내 요구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시기 상조론은 일본에도 있었다. 일본의 노동자와 기업주 대표는 1919년 국제노동기구 제1차 총회에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서 일본의 기업주 대표와 정부 대표는 이렇게 궤변을 늘어놓았다.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단축하면, 노동자들이 오히려 더 곤란해질 것이다. 일본 노동자의 능률은 매우 낮을 뿐 아니라 서양 노동자들처럼 스스로 수양하거나 운동, 유희하는 습관이 부족해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얻어낸 시간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노동시간의 역사》, 85쪽)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주장

전경련과 경총은 노동시간 단축이 15퍼센트 가까운 임금 인상 효과를 내기 때문에 경쟁력이 약화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인건비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9.4퍼센에 불과하다.

8시간 노동제가 실시된 뒤에도 자본주의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불황도 생산 감소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지나친 경제 팽창 때문에 소비할 수 있는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상품이 생산될 때 급격한 경기후퇴가 찾아온다. 이것이야말로 1929년 대공황의 원인이었고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주된 원인이었다.

이런 주장은 사장들이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할 때마다 되풀이돼 왔다. 노동시간 단축이 경쟁력을 해치고 결국에는 실업을 더 늘릴 것이라는 주장은 런던 금속 노동자들이 10시간 노동제를 위해 파업했던 1836년에도, 영국 북동부 지역 공장 노동자들이 9시간 노동을 쟁취했던 1870년대와, 주 37시간 노동을 쟁취하려고 파업했던 1989년에도 앵무새처럼 반복됐다.

하지만, 지난 1백50년 동안 노동자들은 경제 붕괴 없이도 노동시간을 줄여 왔다.

영국의 초기 노동운동가였던 웹 부부는 《노동조합의 역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1815년 당시에는 주 90∼100시간이 보통이었다. 이것이 한 걸음 한 걸음 발전하여 오늘날(1891년)에는 주 56시간 반으로 되었다.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공장주들은 또 다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기업의 이윤을 빼앗아 가버리고 제품가격을 올리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저하시키고 국제경쟁력을 약화시켜 수출을 어렵게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공장주들의 말은 터무니없음이 드러났다. 노동시간은 계속 단축됐지만 생산감소, 임금저하, 물가상승, 경기침체 등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기업주들은 별의별 논리를 갖다 붙이며 노동시간 단축을 막으려 발버둥쳤다. 예컨대 낫소 새니어라는 옥스퍼드 대 교수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비난하기 위해 “오직 마지막 한 시간으로부터 순이익이 나온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는 노동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면 순이익을 파괴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1)

10시간 노동제 쟁취를 목표로 했던 19세기 말에 기업주들은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가 여가 시간을 갖게 되면, 술집으로 몰려 가 술만 먹게 돼 작업 능률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건강까지도 해친다.”(《노동시간의 역사》, 41쪽)

그들의 진정한 두려움은 14.7퍼센트 이상의 임금 상승 효과가 있는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지면 이윤이 줄어들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러나 왜 항상 이윤을 위해 노동자만 희생해야 하는가? 엄청난 노동강도 강화 덕분에 작년에 세계 생산성 향상 제1위 공장으로 뽑힌 곳은 다름 아닌 창원의 대우차 공장이었다. 제1위의 산업재해국, 제1위의 무급휴가국, 제1위의 생산성 향상 공장을 둔 나라에서 왜 노동자들만 항상 이윤을 위한 희생양이 돼야 하는가? 부패·정경유착과 이윤 탐욕이 불러들인 무리한 생산 확장과 투기로 경제위기를 불러들인 기업주와 무능한 관료가 아니라 왜 노동자들이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항상 자제해야 하는가? 지금 노동자들이 휴일을 즐기는 것은 왜 “시기상조”인가? 홍세화 씨의 말마따나 시기상조를 말하는 자들은 정작 내일이 와도 또 내일을 말할 뿐이다.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둘째, 노동시간 단축을 설사 하더라도 임금삭감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경련은 “근로시간 단축은 반드시 상응하는 임금삭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ILO 조약(1935년) 47조는 “노동시간 단축은 생활수준의 저하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소정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임금을 삭감한 예는 거의 없다. 우리 나라에서도 1989년에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법정 노동시간을 단축했을 때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임금삭감은 없었다.

“한국의 임금체계는 기본급 비중이 너무 낮아서 연장근로를 통해 보충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은 임금삭감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민주노총 총서,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조합의 정책과제》, 217쪽)

프랑스 사례야말로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의 현실성을 보여 주는 결정적 사례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1989년∼90년 노동시간 단축 때 거의 모든 노동조합(98.9퍼센트)이 단축기간분 임금을 지급받은 바 있다.(전노협, 《임금투쟁 단체협약 분석》, 171쪽)

임금삭감을 전제로 한다면 노동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초과근로를 하게 될 것이고 노동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임금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77.5퍼센트가 지지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좋지만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 그런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제기도 있을 수 있다. 얼마 전 일명 ‘몸로비’ 사건에서 폭로된 바에 따르면 공대지 미사일 한 대 값은 자그마치 2천억 원이다. 이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미사일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업이라고 불린 고속철도 사업의 대형 부패 사건도 마찬가지다. 지금 LA에 있는지 서울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최만석 씨의 리베이트 자금만 해도 엄청난 규모이다. 사람들의 안전보다는 자기 호주머니 챙기기에만 골몰했던 관료들은 운행비도 훨씬 저렴하고 안전한 자기부상 열차에 이미 쏟아 부은 3천억 원을 내팽개치고 TGV를 선정하느라고 엄청난 돈을 날렸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는 이 사건 수사를 종결시켜 버렸다. 난항 끝에 추진하기로 했던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유실되는 바람에 작년 한 해 동안 11조 원이 새나갔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아직도 추징금을 안 내고 있다.

체제에서 수도꼭지 새듯이 새나가는 돈들은 이토록 엄청나다. 이런 돈들을 우리들의 삶을 위해 쓰도록 하면 된다. 돈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돈을 어디에 쓰느냐가 핵심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높여 우리들 삶의 질을 위해 쓰도록 한다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재원 마련은 충분히 가능하다.

민주노총도 노동시간 단축과 실업 해소를 위한 기금 20조 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금융종합소득과세 등을 부과하는 것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 1930년대에 주 40시간 노동을 쟁취했을 당시 프랑스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세금 제도의 민주적 개혁, 실업기금의 설정 등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고용 효과

셋째, 노동시간 단축에 뭔가 흠집이라도 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을 늘리는 어떤 효과도 내지 못한다고 우긴다. 전경련은 4월 19일 ‘근로시간 단축의 실효성’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노동계가 주장하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 창출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뿐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 노동부는,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거론되기 시작한 1997년 10월부터 1999년 5월까지 총 7만 개의 일자리가 생겼다고 발표했다. 또 프랑스 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노동시간을 네 시간 단축했을 경우 8퍼센트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고, 2시간 30분 단축했을 경우 3.4퍼센트의 효과가 있다. 프랑스의 노동시간 단축 운동에 정통한 노대명 교수도 프랑스 사례야말로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 효과가 거의 없다는 일부 학자들의 비관적 의견을 상징적으로 논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주들은 노동시간 단축 운동이 거세질 때마다 마치 자신들이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걱정하는 것처럼 위선을 떨며 ‘고용 효과 없음’을 입버릇처럼 주장해 왔다.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했던 일본 노동자들에게 기업주들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에서도 유명한 일본의 성냥 공업에는 5만여 명의 여자와 어린이들이 일하고 있는데 그들은 일정한 노동시간을 정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짬을 내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8시간 노동제가 실시되어 생계에 한 푼이라도 보태려고 공장에 오는 불쌍한 여자와 어린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동정어린 고려를 바란다.”(《노동시간의 역사》, 85쪽)

자본주의 역사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실업자들과 비정규직·임시직 노동자들에게 새롭고 안정된 일자리를 주는 데 기여해 왔다. 전경련의 주장이 만약에 조금이라도 사실이라면 그것은 되레 노동시간 단축이 점진적인 방식보다는 대폭적인 방식이 더 효과적임을 입증할 뿐이다.

사장들은 변형, 탄력 근로시간제 등을 도입해서 노동시간 단축에 저항할 것이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새로 고용되는 사람들의 노동조건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이미 고용돼 있는 사람들의 노동조건과 고용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민주노총의 주장대로 초과 근로 시간 규제도 필요하다. 사장들은 돈이 더 많이 드는 추가 고용보다는 잔업, 특근을 늘리고 휴일 휴가를 줄임으로써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무력화하려 할 것이다.

초과노동을 규제하지 못한다면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현저히 반감된다. 1987년 이후 대중 투쟁의 성과로 1989년에 법정 노동시간이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단축됐지만 그 뒤 실제 노동시간이 그다지 줄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노동자들은 주5일 근무제를 쟁취했을 때 초과근로시간 규제도 함께 요구했다.

때문에 민주노총은 유럽 나라들의 노동시간 단축 사례 분석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 창출을 원하는 경우 일시에 대폭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교훈을 이끌어 냈다.(《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조합의 정책과제》, 36쪽∼37쪽) 만약에 노동시간을 주 35시간으로 줄이면 무려 1백80만에서 3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통계도 있다.

눈 가리고 아웅

넷째, 김대중 정부는 월차 휴가와 여성의 생리휴가 폐지를 주 5일 근무의 전제로 삼고 있다.

경총은 김대중 정부의 이런 입장을 확인해 준다. 경총은 “한 달에 하루씩 발생하는 월차휴가 및 여성의 생리휴가를 폐지할 경우 주 5일 근무에 40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 단축이 가능하다는 정부의 시안을 전달받았다.”며, “당초 월차휴가 등은 주 44시간 법정근로 시간을 정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므로 40시간 근무를 하게 되면 폐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경총 김영배 상무이사는 “현재 법정 공휴일수는 16일인데, 외국과 비교했을 때 결코 적은 편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한 달에 월차 하루와 생리휴가로 이틀의 휴가가 있는데 이것도 기업주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고까지 한다.

그러나 세계관광기구가 영국의 관광전문 컨설팅 기관인 하워드사에 의뢰해 작성한 보고서 ‘여가시간의 변화, 관광에 미치는 영향’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한국의 법정 공휴일 수가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휴가 일수는 18개 조사 대상 국가 중 13위에 머물러 있다. 더군다나 대상 조사 국가 가운데 유급 휴가 일수는 최하위였다. 유급 휴가 일수는 이탈리아의 4분의 1도 안 되고 말레이시아보다도 3일이나 적다.

사장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재택 근무를 하며 휴일도 노동자들보다 훨씬 많다. 그들은 얼마 전 폭로된 양평의 무수한 허위 명의의 호화 별장에서 가족들과 휴일을 충분히 즐긴다. 그런데 왜 노동자들은 오히려 휴일이 더 줄어들어야 하나?

한국의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려면 법정 노동시간의 단축과 함께 오히려 휴일 휴가의 확대가 필요하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연 최소 3주에서 7주에 이르는 유급 연속휴가를 법 또는 단체협약으로 보장하고 있다. “쉰다는 것도 중요한 비즈니스이며, 여가의 질이 우리의 존재를 지배한다.” 이것은 프랑스의 주 35시간 노동법에 반대한 프랑스 우익 자크 시라크의 말인데, 왜 휴식에 관한 이런 진리가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말아야 하는가.

노사정위 ― 시간벌기용

다섯째, 전경련과 경총은 노동시간 단축은 노사간의 자율적인 협상을 통해서 해야지 정부가 법으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편다. 노조와 사측이 알아서 하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노조가 없는 미조직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우리 나라 노조 조직률이 12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부가 법으로 강제해야만 노조가 없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시간 단축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노사정위에서 다루자는 주장이다.

“정부의 확고한 의지”라는 말과는 모순되게도 김대중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의 근로시간 단축특위에서 합의를 이끌어낸 뒤”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최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출신인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인내와 타협 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사정위는 노동자들에게만 “인내와 타협 정신”을 요구했다. 이 점은 노사정위가 2년 동안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 기구는 기업주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들은 아주 신속하게 처리했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는 단 며칠만에 통과됐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다른 법안들은 모두 미뤄지고 유보되고 난항을 거듭하다가 급기야 실종되곤 했다. 실업자의 노조 가입 문제가 그렇고, ‘부당노동행위 근절’이 그랬으며 공공요금 인상 억제 합의도 마찬가지였다.

노사정위는 노동자 운동이 ‘조용’하면 동작 그만했다가도 노동자 운동이 기지개를 펼 기미를 보이면 그 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노사정위는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것을 말리기 위한 기구에 불과했다. 김대중이 노동시간 단축 문제를 노사정위에 맡기겠다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을 회피해 보려는 시간벌기용이다. 김대중은 노사정위를 통해 5월말 파업을 일단 말리고 보자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 5일 근무제룰 도입할 수 있다는 발표를 하자마자 노동부 장관은 재빨리 “정부의 이런 추진 의지를 신뢰하지 못해 총파업을 강행하려는 것 같지만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상황인 만큼 노·사가 함께 번영할 수 있도록 파업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어떻게 가능한가?

김대중 정부와 기업주들은 임금삭감 없는(그리고 휴가 축소 없는) 주 5일 근무를 호락호락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운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차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최초로 실현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노동강도 강화 등으로 야금야금 손해분을 벌충하다가 노동시간 단축의 성과를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하는 반격을 하곤 했다.

노동시간 단축 법안이 입법화된 프랑스의 경우에도 사장들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법제정 전까지만 해도 추락하던 지지율에 조바심을 내던 조스팽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 계획을 발표했고 사용자 단체는 사용자 단체의 회장이 사임까지 하는 내부 격론에 시달리다가 정부가 직접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입법화 하자 급기야 오브리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까지 조직했다.

오브리 법안 채택은 월드컵 행사 즈음 사장들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파업과 시위로 실력행사를 마다하지 않았던 프랑스 노동자들의 단호함 덕분이었다.

일찍이 1930년대에 프랑스 노동자들이 주 5일 근무제를 쟁취한 경험을 살펴보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주 40시간 노동을 쟁취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강력한 대중 운동 때문이었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주 40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면서 대중적 운동을 벌였을 때도 마침 5월말 6월초였다. 프랑스 노동자들 중 6월 파업에 참가한 수만 해도 1백90만 명에 이르러 공업·상업 노동자 총수의 4분의 1에 이르렀다. 1936년 당시 노동자들의 파업 건수는 1만 건이 훨씬 넘었다. 더욱이 참가자의 4분의 3이 공장을 점거함으로써 투쟁은 아주 단호하게 전개됐다. 사장들은 벌벌 떨었고 결국 항복했다.

우리 나라 노동자들도 기업주와 정부의 태도를 바꾸려면 대중적인 실력 행사가 필요하다. 아쉽게도 2∼3일 파업이기는 하지만 5월말 6월초 파업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사실상 묵살하고 있는 김대중 정부와 기업주들을 움찔하게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모두를 위한 이타적 투쟁

“근로기준법 연내 개정 강력 시사”라는 제목의 기사가 일간지를 장식한 그 순간에 김호진 노사정위원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경제가 활력을 회복하고 다시 뜨고 있다. 그러나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등 …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며 5월말로 예정된 민주노총의 파업 계획을 비난했다.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낼 정도로 탈세 방법에 정통해 있고 남들 다 가는 군대건만 자기 자식만은 안 보내기 위해 병역 비리를 저지르는 기성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집단 이기주의적인가, 아니면 그 동안 꼬박꼬박 세금을 내면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집단 이기주의적인가.

김호진 노사정위원장은 노동자들에게 파업이 민족의 대사인 남북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는 현 단계의 사회 분위기와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것인지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단지 조직 노동자들만을 위한 이기적인 투쟁이 아니다. 휴일을 지키고 임금을 높이는 등 모든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쟁이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야말로 평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이타적 투쟁이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주 40시간 노동제를 쟁취해 낸 뒤 당시 부자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해변에서의 바캉스”를 노동자와 민중도 즐기게 됐다. 홍세화 씨의 소개에 따르면 당시 부자들은 휴일에 바닷물에 뛰어드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기 싫어 노동자들이 몰려 오면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응수는 간단했다. “옹샹푸”(우리 나라 말로 “알게 뭐야”). 주 40시간 노동제와 유급 휴가가 실시된 결과, 스포츠와 대중 여행이 성행하게 됐고 그룹이나 써클, 학교 등이 점점 늘어났다.(《노동시간의 역사》, 124쪽)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우리들의 삶을 위한 투쟁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따라서 학생들도 이 운동에 지지를 보낼 충분한 가치가 있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는 여기에서 선두에 서야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노학연대이다.

새니어의 주장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은 《자본론1권 上》(비봉 출판사, 284쪽∼290쪽)을 참조하면 칼 마르크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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