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 ― 삶이냐 이윤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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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 요구에 대한 지지가 어느 때보다 뜨거워지자 주 5일 근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왔던 김대중은
노동시간 단축 요구에 대한 지지 여론은 총선시민연대에 대한 지지율 80퍼센트에 육박할 정도로 높고 뜨겁다. 한길리서치에 따르면 응답자의 77.8퍼센트가 주 44시간 노동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하는 주 5일 근무제에 찬성했다. 가족들이 함께 쉬어야 한다는 의견도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다. 70.4퍼센트에 이르는 사람들이 주 5일 수업제를 지지했다. 전교조 김현준 부위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
주 5일 근무제가 되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응답이 30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취미 생활 및 여행 등으로 여가를 즐기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28.6퍼센트로 그 다음으로 많았다. 우리는 출근 시간에 시내버스와 지하철에서 졸음에 지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의 삶을 만성 피로의 늪으로 밀어넣는다. 장시간 노동은 가정 문제를 낳기도 한다. 일에 지친 아빠는 아이들과 놀아 줄 시간도 없고 녹초가 된 사람들은 원만한 부부 생활도 쉽지 않다.
장시간 노동은 여성들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 아빠가 일에 지쳐 있기 때문에 가사노동과 육아는 고스란히 엄마 몫이 된다. 노동자들에게 휴일은 즐기는 날이 아니라 잠자는 날일 뿐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휴일날 늦잠을 잠으로써 평소의 잠 부족을 해소하고, 식사
노동자들에게 자기 시간은 거의 없다.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노동자들이 생각할 여유와 삶을 즐길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생길 수 있다.
한편에는 장시간 노동에 지쳐 있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간절히 일하고 싶은 실업자들이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한마디로 노동시간 단축 운동은 우리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미래를 위한 운동이다.
시기 상조론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기업주들은 갖가지 논리를 들이대면서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하고 있다.
첫째, 시기 상조론이다. 김대중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시간 단축이 일할 분위기를 저해해 경기회복에 걸림돌이 되므로 경기가 완전히 회복된 다음에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나라는 최장시간 노동국이자 산재왕국이다. 일할 분위기를 저해하는 것은 오히려 장시간 노동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으로 우리 나라 제조업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50시간을 일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간은 요르단
노동시간이 늘어났던 작년 한 해 동안 노동자의 사망률과 질병은 더 늘었다.
최근 한 보고서는 우리 나라 대기업 직장인들 80퍼센트가 정신적 황무지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르 기앙은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장시간 노동은 끔직한 산업재해를 낳는다. 우리 나라 중대 산업재해율은 세계 제1위를 기록하고 있다. 산재로 공식 인정을 받아 죽는 사람만 하루에 10명이 넘고, 3일 이상 치료해야 하는 중경상을 입는 사람만 해도 1년에 9만 명이 넘는다. 사망률은 영국의 30배나 된다. 버논의 연구에 따르면, 12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 10명이 재해를 당한다고 할 때 노동시간이 10시간으로 줄어들면 재해를 당하는 사람은 8.3명, 여자는 3.8명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경총의 김정태 조사부장은
프랑스는 64년 전인 1936년에 주 40시간제를 도입했고, 미국, 영국, 서독에서는 2차세계대전 직후에 정착됐다. 일본 노동자들도 일찍이 1948년에 8시간 노동제를 쟁취했다. 1957년에는 전도회의와 총평
시기 상조론은 일본에도 있었다. 일본의 노동자와 기업주 대표는 1919년 국제노동기구 제1차 총회에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서 일본의 기업주 대표와 정부 대표는 이렇게 궤변을 늘어놓았다.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주장
전경련과 경총은 노동시간 단축이 15퍼센트 가까운 임금 인상 효과를 내기 때문에 경쟁력이 약화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인건비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9.4퍼센에 불과하다.
8시간 노동제가 실시된 뒤에도 자본주의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불황도 생산 감소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지나친 경제 팽창 때문에 소비할 수 있는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상품이 생산될 때 급격한 경기후퇴가 찾아온다. 이것이야말로 1929년 대공황의 원인이었고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주된 원인이었다.
이런 주장은 사장들이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할 때마다 되풀이돼 왔다. 노동시간 단축이 경쟁력을 해치고 결국에는 실업을 더 늘릴 것이라는 주장은 런던 금속 노동자들이 10시간 노동제를 위해 파업했던 1836년에도, 영국 북동부 지역 공장 노동자들이 9시간 노동을 쟁취했던 1870년대와, 주 37시간 노동을 쟁취하려고 파업했던 1989년에도 앵무새처럼 반복됐다.
하지만, 지난 1백50년 동안 노동자들은 경제 붕괴 없이도 노동시간을 줄여 왔다.
영국의 초기 노동운동가였던 웹 부부는 《노동조합의 역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업주들은 별의별 논리를 갖다 붙이며 노동시간 단축을 막으려 발버둥쳤다. 예컨대 낫소 새니어라는 옥스퍼드 대 교수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비난하기 위해
10시간 노동제 쟁취를 목표로 했던 19세기 말에 기업주들은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진정한 두려움은 14.7퍼센트 이상의 임금 상승 효과가 있는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지면 이윤이 줄어들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러나 왜 항상 이윤을 위해 노동자만 희생해야 하는가? 엄청난 노동강도 강화 덕분에 작년에 세계 생산성 향상 제1위 공장으로 뽑힌 곳은 다름 아닌 창원의 대우차 공장이었다. 제1위의 산업재해국, 제1위의 무급휴가국, 제1위의 생산성 향상 공장을 둔 나라에서 왜 노동자들만 항상 이윤을 위한 희생양이 돼야 하는가? 부패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둘째, 노동시간 단축을 설사 하더라도 임금삭감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경련은
ILO 조약
프랑스 사례야말로
임금삭감을 전제로 한다면 노동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초과근로를 하게 될 것이고 노동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임금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77.5퍼센트가 지지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좋지만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 그런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제기도 있을 수 있다. 얼마 전 일명
단군 이래 최대의 사업이라고 불린 고속철도 사업의 대형 부패 사건도 마찬가지다. 지금 LA에 있는지 서울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최만석 씨의 리베이트 자금만 해도 엄청난 규모이다. 사람들의 안전보다는 자기 호주머니 챙기기에만 골몰했던 관료들은 운행비도 훨씬 저렴하고 안전한 자기부상 열차에 이미 쏟아 부은 3천억 원을 내팽개치고 TGV를 선정하느라고 엄청난 돈을 날렸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는 이 사건 수사를 종결시켜 버렸다. 난항 끝에 추진하기로 했던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유실되는 바람에 작년 한 해 동안 11조 원이 새나갔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아직도 추징금을 안 내고 있다.
체제에서 수도꼭지 새듯이 새나가는 돈들은 이토록 엄청나다. 이런 돈들을 우리들의 삶을 위해 쓰도록 하면 된다. 돈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돈을 어디에 쓰느냐가 핵심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높여 우리들 삶의 질을 위해 쓰도록 한다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재원 마련은 충분히 가능하다.
민주노총도 노동시간 단축과 실업 해소를 위한 기금 20조 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금융종합소득과세 등을 부과하는 것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 1930년대에 주 40시간 노동을 쟁취했을 당시 프랑스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세금 제도의 민주적 개혁, 실업기금의 설정 등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고용 효과
셋째, 노동시간 단축에 뭔가 흠집이라도 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을 늘리는 어떤 효과도 내지 못한다고 우긴다. 전경련은 4월 19일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 노동부는,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거론되기 시작한 1997년 10월부터 1999년 5월까지 총 7만 개의 일자리가 생겼다고 발표했다. 또 프랑스 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노동시간을 네 시간 단축했을 경우 8퍼센트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고, 2시간 30분 단축했을 경우 3.4퍼센트의 효과가 있다. 프랑스의 노동시간 단축 운동에 정통한 노대명 교수도 프랑스 사례야말로
기업주들은 노동시간 단축 운동이 거세질 때마다 마치 자신들이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걱정하는 것처럼 위선을 떨며
자본주의 역사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실업자들과 비정규직
사장들은 변형, 탄력 근로시간제 등을 도입해서 노동시간 단축에 저항할 것이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새로 고용되는 사람들의 노동조건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이미 고용돼 있는 사람들의 노동조건과 고용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민주노총의 주장대로 초과 근로 시간 규제도 필요하다. 사장들은 돈이 더 많이 드는 추가 고용보다는 잔업, 특근을 늘리고 휴일 휴가를 줄임으로써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무력화하려 할 것이다.
초과노동을 규제하지 못한다면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현저히 반감된다. 1987년 이후 대중 투쟁의 성과로 1989년에 법정 노동시간이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단축됐지만 그 뒤 실제 노동시간이 그다지 줄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노동자들은 주5일 근무제를 쟁취했을 때 초과근로시간 규제도 함께 요구했다.
때문에 민주노총은 유럽 나라들의 노동시간 단축 사례 분석을 통해
눈 가리고 아웅
넷째, 김대중 정부는 월차 휴가와 여성의 생리휴가 폐지를 주 5일 근무의 전제로 삼고 있다.
경총은 김대중 정부의 이런 입장을 확인해 준다. 경총은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경총 김영배 상무이사는
그러나 세계관광기구가 영국의 관광전문 컨설팅 기관인 하워드사에 의뢰해 작성한 보고서
사장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재택 근무를 하며 휴일도 노동자들보다 훨씬 많다. 그들은 얼마 전 폭로된 양평의 무수한 허위 명의의 호화 별장에서 가족들과 휴일을 충분히 즐긴다. 그런데 왜 노동자들은 오히려 휴일이 더 줄어들어야 하나?
한국의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려면 법정 노동시간의 단축과 함께 오히려 휴일 휴가의 확대가 필요하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연 최소 3주에서 7주에 이르는 유급 연속휴가를 법 또는 단체협약으로 보장하고 있다.
노사정위 ― 시간벌기용
다섯째, 전경련과 경총은 노동시간 단축은 노사간의 자율적인 협상을 통해서 해야지 정부가 법으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편다. 노조와 사측이 알아서 하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노조가 없는 미조직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우리 나라 노조 조직률이 12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부가 법으로 강제해야만 노조가 없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시간 단축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노사정위에서 다루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노사정위는 노동자들에게만
노사정위는 노동자 운동이
아니나 다를까, 주 5일 근무제룰 도입할 수 있다는 발표를 하자마자 노동부 장관은 재빨리
어떻게 가능한가?
김대중 정부와 기업주들은 임금삭감 없는
자본주의와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운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차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최초로 실현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노동강도 강화 등으로 야금야금 손해분을 벌충하다가 노동시간 단축의 성과를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하는 반격을 하곤 했다.
노동시간 단축 법안이 입법화된 프랑스의 경우에도 사장들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법제정 전까지만 해도 추락하던 지지율에 조바심을 내던 조스팽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 계획을 발표했고 사용자 단체는 사용자 단체의 회장이 사임까지 하는 내부 격론에 시달리다가 정부가 직접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입법화 하자 급기야 오브리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까지 조직했다.
오브리 법안 채택은 월드컵 행사 즈음 사장들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파업과 시위로 실력행사를 마다하지 않았던 프랑스 노동자들의 단호함 덕분이었다.
일찍이 1930년대에 프랑스 노동자들이 주 5일 근무제를 쟁취한 경험을 살펴보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주 40시간 노동을 쟁취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강력한 대중 운동 때문이었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주 40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면서 대중적 운동을 벌였을 때도 마침 5월말 6월초였다. 프랑스 노동자들 중 6월 파업에 참가한 수만 해도 1백90만 명에 이르러 공업
우리 나라 노동자들도 기업주와 정부의 태도를 바꾸려면 대중적인 실력 행사가 필요하다. 아쉽게도 2∼3일 파업이기는 하지만 5월말 6월초 파업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사실상 묵살하고 있는 김대중 정부와 기업주들을 움찔하게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모두를 위한 이타적 투쟁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낼 정도로 탈세 방법에 정통해 있고 남들 다 가는 군대건만 자기 자식만은 안 보내기 위해 병역 비리를 저지르는 기성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집단 이기주의적인가, 아니면 그 동안 꼬박꼬박 세금을 내면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집단 이기주의적인가.
김호진 노사정위원장은 노동자들에게 파업이 민족의 대사인 남북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는 현 단계의 사회 분위기와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것인지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단지 조직 노동자들만을 위한 이기적인 투쟁이 아니다. 휴일을 지키고 임금을 높이는 등 모든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쟁이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야말로 평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이타적 투쟁이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주 40시간 노동제를 쟁취해 낸 뒤 당시 부자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우리들의 삶을 위한 투쟁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따라서 학생들도 이 운동에 지지를 보낼 충분한 가치가 있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는 여기에서 선두에 서야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노학연대이다.
새니어의 주장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은 《자본론1권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