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국정 교과서를 폐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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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둘러싼 싸움은 정치 투쟁이다 ⓒ 이미진
11월 28일 교육부가 한국사 국정 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에 대한 반대는 매우 광범하다. 전교조는 30일 ‘박근혜 정권 퇴진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며 연가 투쟁을 한다.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역사과·역사교육과 교수들 5백60여 명도 국정 교과서 철회를 요구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보수적인 한국교총조차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법원은 집필 기준과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은 교육부의 ‘복면’ 집필 과정이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시도교육감협의회도 국정 교과서 폐기를 요구했다. 야당들은 국정화 금지법을 발의했다.
이런 광범한 반대 때문에 교육부는 국정 교과서와 기존의 검정 교과서를 혼용하는 방안을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근혜는 국정 교과서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박근혜는 국정 역사 교과서를 통해 친일과 독재 전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친재벌·친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해 온 지배자들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국정 교과서를 만드는 국사편찬위원회(국편) 위원장 김정배는 1982년 고교 《국사》 교과서 연구진으로 전두환의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을 미화하는 국정 교과서를 만든 인물이다. 김정배를 비롯한 뉴라이트들은 한국사 검정 교과서들이 ‘좌편향적’이어서 국정화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 왔다.
그러나 검정 교과서들은 전혀 ‘좌편향적’이 아니었다. 보수적 성향인 전 국편 위원장 이태진 교수는 “총 8종의 검정 역사 교과서 중에 중도는 3종밖에 없고, 중도 우파가 4종이며, 그리고 우파가 1종(교학사 교과서)”이라고 고백했다.
박근혜 정부가 올해 펴낸 국정 교과서 《초등 사회 6-1》은 현 정부가 원하는 역사 수정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을 받아들여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일본군의 ‘위안부’ 전쟁 범죄 서술과 사진을 삭제했다. 박정희 시대 새마을 운동을 강조하고 빈부격차와 노동자들의 문제를 삭제해 시장주의와 경제 성장을 찬양했다.
이미 교육부는 2011년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수정한 바 있다. 이는 4·19혁명에서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진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반공과 시장경제 발전의 논리로 대체한 것이다.
대한민국 수립?
아직 한국사 국정 교과서의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했다. 그러면 ‘건국’에 참여했던 자들은 ‘건국 공로자’들이 된다.
그러나 ‘건국 공로자’들 대부분은 친일파이자 해방 후 미 군정을 등에 업고 노동자·농민·좌파를 잔인하게 탄압한 자들이다.
1948년 8월 15일 한반도 남쪽에 수립된 정부는 해방 후 노동자·민중의 투쟁들 — 공장자주관리 운동,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항쟁, 1948년 4·3 제주 항쟁 — 의 무덤 위에 세워진 것이다.
즉, 박근혜의 역사 수정은 친일파의 후예인 현 기득권 세력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2008년 법률을 개정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 이들은 4·3 제주항쟁을 도륙한 ‘서북청년회’를 건국 공로 단체로 선정하려고도 했다.
이런 일을 하는 의도는 ‘친일 세탁’이나 ‘독립운동 의미 축소’만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체제를 “국가의 기본”으로 삼기 위한 것이다.
뉴라이트의 기본 논리는 자본주의적 발전 가능성이 없었던 조선에 일본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시장체제를 도입했고(식민지 근대화론), 해방 후 ‘건국 노력’을 통해 이 체제를 확립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들이 ‘과거를 지배’하고 그것을 통해 ‘미래를 지배’하기 위한 것이 국정 교과서 발행 목적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해석을 둘러싸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화된 국정 교과서는 철회돼야 마땅하다. 같은 맥락에서 검정제도 국가가 집필 기준을 제시하는 등 약점이 있다. 따라서 자유발행제로 나아가야 한다. 자유발행제 하에서는 전교조가 만든 4·16세월호 교과서와 같은 정부 비판적 교과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