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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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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사상이다. 그만큼 마르크스주의는 대중에게 사회를 이끌 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다.(이에 비춰보면, 북한은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와 관계 없는 권위주의 체제의 사회다.) 물론 이 능력은 평소에는 잠재력으로 남아 있지만, 1871년 파리 코뮌이나 1917년 러시아 혁명 등 노동자와 대중이 권력을 잡았을 때, 그에 미치지는 못해도 박근혜 퇴진 운동처럼 커다란 투쟁이 벌어질 때 종종 발현한다.
야당 정치인들이 집회에 나오고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는 상황, 2008년에는 “박근혜와 나라를 지키겠다”던 김무성이 대통령 탄핵에 가세하려던 상황 등은 모두 대중 운동의 힘이 만들어 낸 것이다. 현재 대중은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정치 행위자의 하나이다.
이와 반대로 대중의 능력을 불신하는 관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우 정치’론이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지게 돼 있다’는 둥 운동을 모욕하는 우파 정치인들의 머릿속에는, 대중은 정치적 판단 능력과 실천 능력이 없다는 불신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이렇게 대중을 불신하는 박근혜와 우파들도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칭송하는 한국 국가는 탄생부터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었다.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역사
해방 직후 일본인 자본가들이 도망가며 남긴 ‘적산’은 당시 남한 총자본금의 91퍼센트나 됐다. 노동자들은 이 적산에 대한 자주관리 운동을 벌였다. 수많은 공장, 언론사, 학교, 광산, 교통 시설이 노동자들의 민주적 통제에 놓였다.
그러나 미군정과 그들이 복권시킨 친일파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 운동을 탄압했다. 미국의 후원으로 권력을 잡은 이승만은 노동자들로부터 강탈한 적산을 자기 정권과 결탁한 자들에게 사실상 공짜로 나눠 줬다. 현재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벌은 바로 이렇게 탄생했다.
우파들이 찬양하는 1948년의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했다. 단독 정부 수립은 분단의 고착화를 뜻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이승만은 단독 정부 수립 반대 항쟁을 벌인 제주도민 2만~3만 명을 학살했다. 제주도 항쟁 진압을 거부하며 여수와 순천 군인들이 벌인 반란도 학살로 진압했다.
‘헌법 정신’?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었다. 이때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말을 헌법 전문에 삽입했다. 이것이 우파와 뉴라이트가 칭송하는 ‘헌법 정신’의 기원이다. 박정희 정권은 노동운동과 좌파는 말할 것도 없고 온건한 자유주의자들까지도 탄압했다.
마찬가지로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1980년 5월 광주에 공수부대까지 투입해 학살을 벌였다. 1981년에는 온건한 자유주의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노태우 정권은 1987년 항쟁의 성과를 되돌리려고 1989년 봄부터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고,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에는 군대까지 투입했다.
이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투쟁들 덕분에 한국은 현재 수준의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됐다. 결정적으로 1987년 6월 항쟁과 뒤이은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한국은 권위주의 체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국 사례만 보더라도 자본주의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확대는 직접적이고 필연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서구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제도라고 일컬어지는 보통선거권이 확립된 결정적 시기는 1917년에서 1920년 사이였다. 보통선거권은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을 휩쓴 혁명 물결의 부산물로 노동계급이 획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87년 노동자 투쟁 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의 이행에는 노동자 투쟁이 결정적이었다. ⓒ출처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자유민주주의의 실체와 한계
유물론의 사상인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으로 볼 때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잠재적 반체제 세력인 노동계급의 조직과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노동조합 같은 일상 조직, 정의당 같은 노동자 정당, 노동자연대 같은 노동운동 내 좌파 조직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실제 내용이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군부 쿠데타나 파시즘에 반대해 투쟁한다. 자유민주주의의 파괴는 그 실제 내용물인 노동계급 조직과 활동의 파괴를 뜻하기 때문이다.
한편, 마르크스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온전하게 발전해도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도 본다. 첫째, 부의 불평등으로 말미암은 한계다. 예를 들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쓴 선거 비용은 공식으로만 4백79억 원이었다. 비밀리에 불법으로 쓴 돈도 상당할 것이다. 주류 정치인들이 기업주들에게서 받는 정치자금에 기대는 이유다. 그래서 이건희나 노동자나 형식적으로는 똑같이 한 표씩 행사할 수 있지만, 그 표의 실질적 무게는 매우 다르다.
둘째, 이 때문에 정치적 대표자들에 대한 영향력과 통제 면에서도 불평등이 있다. 기업주와 부자들은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등과 수시로 만나고 접촉하며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 과정에서 뇌물도 오간다. 최순실 같은 자는 어떤 관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대통령 측근이라는 이유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치고 사익도 챙겼다. 이와 반대로 보통 유권자들은 몇 년에 한 번 선거철에나 정치적 대표자들을 볼 수 있다. 또, 선출해 놓은 정치적 대표자들을 통제할 길이 거의 없다.
셋째, 자유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하더라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수장, 입법기관을 제외하면 선출되지 않는다. 그 외 국가의 핵심을 이루는 고위 관료와 치안·사법·군사기구들은 대중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지만 대중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 이 와중에도 사드 배치와 한일군사협정을 서두르는 국방부를 보라.
넷째, 계급 불평등이라는 근본적 불평등이 있다. 우리가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와 직장에는 민주주의가 전혀 없다. 다른 말로 해서, 우리는 인생을 대부분 독재 하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극소수 자본가와 국가관료의 수중에 있는 경제 권력은 누가 대통령이 돼도 건드릴 수 없다. 그러려고 하면 자본가들은 자본 유출 등을 일으켜 국가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정부를 굴복시킨다. 최근 사례가 그리스의 시리자 정부다.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민주주의인데, 그 성격과 한계를 밝히고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말을 쓴다. 그 본질을 고려하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자본가 독재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 민주주의를 바란다.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적 한계를 뛰어넘어 확장된 역사가 있다. 노동자 권력이었던 1871년 파리 코뮌과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가 그것이다.
파리와 러시아의 대중은 노동자 평의회라는 아래로부터 건설한 대안 권력 기구를 통해 잠깐 동안 사회를 직접 통제했다. 노동자 평의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허락되는 그 어떤 민주주의보다 앞서가는 민주주의를 구현했다. 풀뿌리 대중의 참여, 주거 지역과 직장에서 이뤄지는 탈중앙화된 의사결정, 상급 단위 대의원들이 유권자에 의해 언제든 소환될 수 있고 노동자 평균 임금만 받는 것 등이 노동자 평의회의 특징이었다. 이것이 파리와 러시아에 나타났던 노동자 민주주의의, 또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모습이었다.
사실 노동자 평의회가 만들어지는 계기 가운데 하나는 공공 서비스가 ‘정상 운영’되지 않는 대중 파업의 시기에 노동자들이 지방정부의 기능을 대신 떠맡아야 할 필요성이다. 노동자 평의회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이라면 노동자 평의회는 그 나라 국가를 통째로 대체할 조직적 역량과 경제 권력을 쥐고 있을 것이다. 천대받고 착취당하는 다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노동자 민주주의를 통해서이다.
그 과정에서 대중이 보인 자의식은 대단했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때, 문맹률이 60퍼센트나 되는 나라에서 대중의 독서 열의가 솟구쳐 신문 등 인쇄물이 쏟아지고, 사람들이 골목 모퉁이마다 모여 돌아가며 정치 연설을 했다. 노동자들은 기업주가 도망가거나 폐쇄한 생산 시설을 접수해 생산을 조직했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틀을 뛰어넘어 노동자·민중이 스스로 정치·경제 권력을 장악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혁명을 파괴하려는 외국의 침공과 혁명 확산의 실패로 경제가 붕괴하고 노동계급이 해체되면서 러시아에서 노동자 민주주의는 질식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