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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학교 당국은 본관 농성 학생들 협박 말고 “미래대학” · 학사제도 개악 전면 철회하라

이 글은 12월 7일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이 발표한 성명서이다.

12월 6일(화) 학교 당국이 학생들의 본관 점거를 비난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학교 당국은 “행정이 마비된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면서 “엄중 대처”를 운운했다. 학교 당국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 “많은 문제가 해결”됐는데도, 학생들이 ‘생떼’를 부리고 있다는 식이다. 적반하장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밀어붙이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과 교수님들이 반발했던 것 아닌가. 학생총회 직전에 해외로 출장을 가려 하고, 학생들이 찾아갔는데도 옆문(!)으로 도망쳤던 염재호 총장이 지금까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했고, “소통하고자 노력”해 왔다니, 우스운 일이다.

학교 당국이 말하는 “합리적인 방안”이란 매우 기만적인 것이다. 반발이 거세지자 학교 당국은 “미래대학”(일명 ‘크림슨 컬리지’) 설립과 관련해,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하지 않고, ‘단과대학’이 아닌 73명짜리 ‘학부’(‘크림슨 학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전원 기숙사 제공과 P/F제 적용도 하지 않기로 했다. 등록금도 7백50만 원이 아니라 5백만 원 수준으로 책정하겠다고 했다.

먼저, 학교 측이 이런 양보안이라도 제시한 것은 학생들의 투쟁 덕분이다. 11월 2일에 ‘미래대학 설립안’을 공개한 학교 당국은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한 지 나흘 만이자 학생총회가 열리는 날인 11월 28일 이른 오후에 부랴부랴 양보안을 내놨다.

그러나 학교 당국의 양보안은 여전히 핵심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있다. 양보안에 따르면, 자유전공학부는 폐지되지 않지만, 대신 모든 단과대학/학부의 정원이 2.5퍼센트씩 축소된다.

무엇보다 ‘크림슨 학부’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교육 내용은 변함이 없다. 교과과정은 대체로 원안대로 추진된다. “뿌리지식” “토대지식” “줄기지식”이라는 모호한 말들 이면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데이터 융합, 사이버 보안, 금융 인프라, 엔터테인먼트 사이언스, 바이오 인포매틱스, 미래 에너지 환경’ 등 이른바 ‘산업 수요’에 맞춘 실용학문들이 있는 것이다.

기업과 “파트너십”을 이뤄 기업이 교육 과정에 개입하고 직접적 투자도 할 수 있게 하는 내용도 변함이 없다. “기업들의 교육투자 적극 유치” 같은 노골적인 표현들을 약간 누그러뜨렸을 뿐이다.

따라서 여전히 ‘크림슨 학부’는 고려대 내에서의 특권적인 ‘일류대학’을 만들려는 시도일 뿐이다. 대기업의 후원을 업은 이런 학부가 설립되면, 상대적으로 해당 학부는 우대받고, 다른 단과대/학부는 홀대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크림슨 학부’와 같은 분야를 다루는 공대나 이과대 등은 특히 그럴 수 있다. 기존 단과대학이 부실화되는 것을 우려하며, 새로 만들 생각 말고 기존 단과대학에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교수와 학생들의 목소리가 타당한 이유다. 특히 이공계 학생들은 등록금은 인문계보다 더 비싼데도, 실험시설 등 열악한 교육환경으로 고통받아 왔다. 문과대나 사범대처럼 지금도 홀대받는 곳들은 더 홀대받을 수 있다.

대학 교육을 ‘기업 수요’에 종속시킨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이렇게 되면 경기변동에 따라 바뀌는 기업 수요의 변화에 따라 학과가 생기거나 사라질 수 있다. 대학이 종합적인 사고 훈련과 깊이 있는 학문 탐구보다는 협소한 기술을 배우는 사설학원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대학이 기업에 ‘인간 부품’을 제공하는 공장은 아니지 않은가.

‘산학협력’이 취업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산학협력이 강화돼 온 지난 20년 동안, 취업난은 더 심해졌다. 취업난은 학생들의 자질 부족이 아니라 경제 위기에서 비롯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업 후원이 는다고 학생들의 처지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10여 년간 고려대에는 기업의 이름을 딴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자치공간은 부족한 실정이다. 대형강의나 전임교원 수 등 교육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장학금은 부족하고, 등록금은 비싸다! 이윤 논리가 대학을 지배할수록 등록금 인상 압박은 더 커지고, 경쟁은 강화된다. 이것이 지난 10여년 간 고려대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교수·직원들의 처지도 악화된다. 얼마 전 전국대학노동조합 고려대지부는 최근 몇 년간 본교에서 비정규직이 크게 늘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이윤 중심의 대학 운영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학교 당국은 기존 단과대학/학부에서 “크림슨 학부에서 추구하는 것과 유사한 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하고자” 하면 “행정·재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크림슨 학부’를 지렛대 삼아 전체적인 교육 내용을 기업 맞춤형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염재호 총장은 이미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 프로그램인 ‘코어 사업’(인문학도 ‘산업 수요’에 맞게 변형시키려는 대학 인문역량 강화 사업’)을 시행했다. 세종캠퍼스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도 진행했다. ‘크림슨 학부’ 설립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따라서 단과대학이 아니라 학부로 축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크림슨 학부’가 일단 출범하고 나면 정원을 늘리거나 등록금을 올리고, 더 많은 특권을 갖는 것은 언제든 가능해질 것이다. “미래대학” 전면 철회가 필요한 이유다. 학교 당국이 전체 메일을 통해 스스로 밝혔듯, “미래대학”은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프로그램인 ‘프라임 사업’과도 관련이 있다. 우리가 이 계획을 철회시킨다면 다른 학교 학생들도 박근혜 정부의 교육 정책에 싸울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 당국은 본관 점거 학생들에 대한 징계 협박을 중단하고 “미래대학”과 학사제도 개악안을 전면 철회해야 한다! 본관 점거를 더 적극 지지하며 참여하자!

2016. 12. 07.

노동자연대 고려대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