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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독자편지
다함께에 이견 있다

1. 국제주의는 internationalism을 번역한 개념이다. internationalism은 nationalism의 특수한 형태에 불과하다! 이미 그 개념 자체가 nation과 nationalism을 전제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국제주의로 과연 국가와 민족주의를 넘어설 대안이 될 수 있을까?

2. 다함께는 남북한의 민중이 통일을 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난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통일을 반대한다고 통일이 오지 않고, 반대로 찬성한다고 통일이 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관념론자일 것이다.

남한에서 통일을 가장 절실히 원하는 세력은 자본가들일 것이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부려먹을 수 있고, 새롭게 자본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다함께가 反자본을 외치면서도 자본가의 이해와 만나는 지점이 바로 통일이다!

19세기의 유럽 역사를 보면 통일은 결국 근대 민족 국가를 완성하고 강화하는 수단이었다. 그것은 동시에 근대 자본주의와 시민사회의 성립과도 맞물려 있었다.

19세기에 통일된 근대 민족 국가를 가장 절실히 원한 것은 부르주아들이었다!

통일은 곧 근대 민족 국가의 완성을 기원하는 주문과 다를 바 없다! nation-state를 외치면서 국가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려고 하는가?

과연 다함께가 믿듯 자본이 꿈꾸는 ‘통일’과 남북의 민중이 꿈꾸는 (또는 꿈꾸도록 강요받는) ‘통일’은 모순 관계일까?

3. 다함께는 계급, 젠더, 에스니시티[ethnicity], 종교, 직업, 신분 등의 측면을 모두 고려하려는 의사를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계급 해방이 된다고 젠더 문제나 종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함께가 사용하고 있는 계급 개념은 다른 개념들과 연대를 표방하며 지배 권력과의 관계에서 저항적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다함께가 사용하고 있는 ‘계급’ 개념은 다른 측면에서의 차이들을 억압하는 ‘개념의 본질주의’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젠더, 에스니시티, 종교, 지역, 직업, 신분 등을 오직 ‘계급’만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4.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는 자본을 비판한 인물이지, 자본을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한 인물이라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자본 “비판”이 낡았다는 것이다.

생명력을 잃지는 않았지만, 마르크스가 살던 때의 자본과 현재의 자본을 동일한 방법으로 분석하고 대처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덧붙여서 마르크스가 서구중심주의자라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조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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