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개악안 저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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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충돌 사건이 일어나자 사용자들과 그들의 정치인·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민주노총 죽이기에 발벗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거리의 폭력 단체와 다를 게 없다”고 민주노총 비정규 현장파들을 비난했다. 10만 명 이상의 이라크인들을 죽인 전쟁광 조지 W 부시를 지지하고 노동자 파업에 경찰력을 동원한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조선일보〉가 ‘폭력’ 운운하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다.
열린우리당 의원 이목희는 민주노총 비정규 현장파들을 “국민 대중의 요구와 소망에 관심 없고 비정규직과 중소 영세 노동자들의 삶의 고통에 관심이 없”는 “과격 맹동주의자”로 비난했다.
그러나 기업주들과 그들의 이윤을 위해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시키고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시키려는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열린우리당 등 권력자들이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와 소망에는 관심도 없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냉혈한들이다.
기업주들은 이참에 노동운동의 전투성을 거세해 민주노총을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합리적 노동운동’으로 길들이려 한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언론매체들인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은 “노동철학과 운동노선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했고, 〈중앙일보〉는 “자진해체까지 포함해 내부적인 자성을 해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유감이게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진상조사를 실시해 노동운동 내에 비민주적 요소를 뿌리뽑고 조직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교섭안 강행 처리에 반발해 단상 점거 농성을 한 일부 활동가들을 민주노총의 건강성을 깨뜨린 ‘비민주적’ 세력인 것처럼 묘사했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도 도덕성과 민주성을 저버렸다며 그 활동가들의 ‘폭력 행위’를 비난했다.
일부 활동가들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한 행동이 설사 문제였다손 치더라도 그 문제의 발단은 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하는 기업인들과 그들의 정부에 있고, 부차적으로는 상황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비정규직 개악안에 맞서 대중 투쟁을 건설하는 데 힘을 쏟기보다 사회적 합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더 주력한 민주노총 이수호 지도부에 있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개악안에 반대해 대중 투쟁을 건설하자는 좌파 활동가들은 강력히 반발했고 그 와중에 안타깝게도 대의원대회에서 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정부가 “비정규 개악(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노사정 대표자회의와 관련한 모든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지금 상황은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1월 31일 당정협의에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 개악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도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회적 교섭에 연연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이수호 집행부는 투쟁과 교섭을 병행하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2월 비정규직 개악안을 막아 내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교섭안이 대의원대회에서 시급히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노동조합이 정부와 사장을 상대로 사회적 교섭을 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공격을 감행하려 하는 지금 상황에서 정부와의 협상에 연연한다면 정부에 맞서는 실질적 대중 투쟁을 조직하기 어렵다.
민주노총 대중 투쟁의 여파 속에서 열리는 것이 아닌 노사정위는 정부가 민주노총 지도부의 손발을 묶어 놓고 현장 노동자들을 손쉽게 공격하기 위한 덫이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의 시기에 사용자들은 좀체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강력한 대중 투쟁, 특히 이윤에 타격을 가하는 대중 파업에 기반할 때만 교섭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고 실질적인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
민주노총 이수봉 대변인은 2월 7일 인터넷 언론 매체 〈프로메테우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미 2월 총파업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회적 교섭을 통해 법안 처리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설사 ‘2월 총파업’ 조직이 거의 불가능해진 듯하더라도 현장 조합원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중 투쟁의 필요성을 호소해서 투쟁을 이끄는 게 제대로 된 지도부의 임무이다. 대중 투쟁보다 사회적 교섭에 더 의존하는 것은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수봉 대변인은 열린우리당 환노위 간사인 이목희와 국무총리 이해찬이 “사회적 교섭안이 통과된다면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강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국무총리 이해찬은 2월 3일 민주노동당 지도부를 만나 비정규직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환노위 소속 여당 의원은 “비정규직 법안이 3∼4월 임단협이 시작되기 전까지도 통과되지 않으면 많은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며 “파견법의 일부 내용을 수정해서라도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것이 환노위 입장”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장관 김대환은 2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비정규법안을 놓고 다시 대화 채널을 가동할 생각이 있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벌써 2년 이상 논의를 했고 노사가 합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여 그럴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하며 “국회 시계에 맞춰 처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2월 11일 열린우리당 대변인 임종석도 “비정규직, 출자총액제한제 등 경제 현안과 관련된 법안의 우선 처리가 (이번 임시 국회에서) 첫번째 원칙”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정부의 ‘비정규직 보호법’안은 비정규직 보호는커녕 기존의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비정규직 확산법이다. 일본에서는 1999년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파견노동을 전면 허용한 뒤 69만 명이던 파견노동자 수가 2002년에는 2백13만 명으로 증가했다.
만약 정부의 비정규직법이 통과되면 정규직이 되겠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은 산산조각날 것이다. 이미 8백16만 명이나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신규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질 것이고, 노동자들은 4대 보험도, 연월차도, 퇴직금도 없는 열악한 조건에서 저임금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어제의 정규직이 오늘의 비정규직이 되고 오늘의 비정규직이 내일의 실업자가 될 수 있는 불안정한 미래가 수백만 노동 대중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게 될 것이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2월 7일 담화문을 통해 이렇게 투쟁을 호소했다. “2월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예정인 비정규 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을 지난 1월 21일 [대의원대회에서] 우리는 굳건히 결의한 바 있습니다. 어수선한 상황이라고 해서 우리 투쟁의 고삐를 늦출 수는 없습니다.”
현장 조합원들은 전체 노동자들의 미래를 위해 지도자의 이 말을 뒷받침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