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중국’ 원칙은 무엇이고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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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중국의 최신형 전략폭격기 훙-6K가 대만 주변 상공을 비행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양안관계가 전례 없는 긴장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중국 폭격기의 대만 주변 상공 비행은 도널드 트럼프가
1978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중국을 공식 승인하고 그 이듬해 대만과 단교한 이래 38년 동안 미국은
그런데 트럼프가 이 원칙을 협상의 카드로 사용할 수 있음을 내비쳤고, 중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 가능성을 보였다.
사실 2016년 1월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차이잉원이 당선하면서 양안관계가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민진당이 내부 분파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대만 독립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차이잉원에게
92공식
1949년 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이 대만으로 도피한 이래, 오랫동안 중국과 대만은 군사적으로 대립해 왔다. 중국 공산당은 대만을 아직
물론 냉전의 긴장이 이완되면서 두 나라의 경제적 관계는 점차 가까워졌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홍콩을 반환받을 때 일국양제를 수용하고 대만 자본가의 중국 투자를 장려했다. 1980~2000년 동안 양안 무역은 연평균 30퍼센트씩 증가했고, 중국에 대한 대만의 투자도 연평균 12~13퍼센트씩 증가했다. 양안 경제 관계의 변화와 교류 증대가 바로 92공식 합의의 배경이 됐다.
2000년 민진당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했지만, 양안 사이의 교역 증가세는 꺾이지 않았다. 포모사 플라스틱, 홍하이 등의 대만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하면서 중국 노동자 1천만 명을 고용했고, 양안 교역액이 대만 무역의 10퍼센트를 넘어섰다.
2001년에 중국과 대만 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양안의 자본 투자도 더 늘어났고, 2010년에는 양안경제협력구조협의
그러나 긴밀해진 경제적 관계가 양안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켜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긴장이 더 첨예해진 적도 있었다.
중국은 대만이 공식적 독립을 선언하면 침공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 지배자들은 대만 독립선언과
미국은 대만과 단교는 했지만 대만을 자국 영향력 아래에 두는 것을 중요한 전략의 일부로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에 대한 방위공약을 거두지 않고 군사적 지원도 유지했다. 근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양안관계를 계속 불안정하게 만들어 왔다.
마르크스주의자들
지난 수년간 미중 갈등이 점증해 온 데 이어 트럼프가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중국 정부의 주장인
양안관계에서 중국은
그렇다고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것도 대안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제국주의적 압력에 맞서 민족자결권은 옹호돼야 하겠지만, 오늘날의 대만은 중간 규모의 산업국이자 미국 제국주의의 파트너이다.
대만 독립 문제는, 미국 제국주의가 자신의 패권을 공고히 하려고 노력하는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제기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의 독립 선언은 미국이나 대만이 중국에 선전포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공산마저 있다.
따라서 대만의 독립 선언 그 자체가 진보적이지는 않다. 민진당 차이잉원처럼 자신의 통치 명분을 세우고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 수단으로 독립을 주장하는 것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현재 대만 운동에서는 중국과의 통일을 지지하는 세력과 대만의 분리 독립을 원하는 세력이 다 있다. 하지만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입장이 대체로 다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의 통일이나 대만의 독립을 내세우는 것은 운동을 분열시키는 태도가 될 것이다.
양안관계에서 두 국가가 통일하든 아니면 현 상태를 유지하든 양국의 노동자 대중이 얻을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의 양안관계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통일 또는 독립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 미국 두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적 지향 속에서 양안의 노동자 대중이 단결을 추구하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