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과 노동자·여성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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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돌아보는 목소리 중에 ‘퇴진 운동 내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실종됐다, 노동자들은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는 견해가 있다.
사실, 퇴진 운동에는 이런 주장이 나올 만한 특성이 있다. 조직 노동자 운동은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과 함께) 박근혜 정권에 맞서 끈질기게 싸워 왔다. 특히 지난해 8~9월 공공파업과 철도 파업 등은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타오르도록 하는 연료 구실을 했다. 이렇게 퇴진 운동의 초석을 놓았음에도 조직 노동자 운동은 그 운동에서 정치적 헤게모니(주도권)를 쥐지는 못했다. 부분적인 투쟁들은 있었어도 전반적인 계급투쟁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주류 야당, 특히 민주당이 첫 정치적 수혜자가 된 듯하다.
이런 정치적 역관계 속에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내 온건파인 엔지오들은 이 운동에서 노동운동의 정치적 비중을 제한하고자 했다. 엔지오들은 본무대에서 민주노총과 민중진영의 발언이 지나치게 많다고 문제 삼는가 하면, 민주주의 권리(집회 자유) 문제인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석방 요구조차 공식 구호로 외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다행히 좌파 측의 반격으로 엔지오의 노동 비중 축소 시도가 언제나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던 노동자들의 기여가 충분히 부각되지 못한 면이 있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워 온 노동운동 투사들 일부가 퇴진 운동에 아쉬움을 느꼈을 법하다.
운동의 이런 균형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운동 저변에 흐르는 논리는 정치적 부패에 대한 항의 이상이다. 이 운동의 내재적 논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무자비한 이윤 논리와 모순된다. 항의 운동 참가자들의 마음 속에는 경제 위기 고통 전가로 누적된 불만, 뿌리 깊은 계급 격차에 대한 분노, 일하는 사람들에게 기생해 살면서도 오만하기 짝이 없는 자들 전체에 대한 증오심들이 깔려 있다. 그래서 종종 무대 위에서 자유 발언권을 얻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발언에 참가자들은 자기 일처럼 환호했다.
좌파와 노동계 투사들은 대중의 이런 잠재력에 주목하면서, 퇴진 운동이 단지 가장 부패한 개인들 몇몇을 제거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박근혜가 추진해 온 나쁜 정책들에 맞서고, 특히 노동자들이 이런 정치적 기회를 이용해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애써야 했(한)다. 운동의 급진화·심화를 위해 퇴진행동 안팎에서 적극 개입하고 논쟁해야 했(한)다.
여성
한편, 양성 분리적 여성주의자들의 일부는 이런 주장을 한다. “박근혜-최순실에 대한 비판을 ‘여성’의 문제로 보는 ‘여성혐오’와 여성 차별적 표현·태도들이 만연해, 여성이 운동 내에서 ‘타자화’됐다”는 것이다.
집회에서 부패한 지배자의 문제를 엉뚱하게 ‘여성’의 문제로 돌리는 등등 여성 차별적인 발언이 일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퇴진 운동에 워낙 광범한 사람들이 참가하다 보니, 박근혜 퇴진에 동의하더라도 여성이나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후진적인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차별적 언행을 하지 말자는 여성운동 측의 이의 제기는 타당한 것이었다. 다행히 집회 주최 측은 운동 초기에 이런 이의를 신속히 받아들여, 참가자들에게 차별받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주지시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언행이 이 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이토록 많은 여성들이 이 운동과 일체감을 느끼며 능동적으로 참가할 수 있었겠는가. “박근혜가 여자라서 못한 것이 아니다. 여자 들먹이지 말라”는 발언들도 큰 지지를 받았다.
의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여성 차별·비하가 만연해 여성들은 배제되고 타자에 머물렀다”는 인상은 여성들이 이 운동에서 한 적극적인 참여와 주체성을 무시하는 뉘앙스를 풍길 수 있다.
잠재력
참가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적절한 언행들이 일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 운동은 오히려 해방의 잠재력을 보여 줬다. 여성들은 사회를 보거나 행진 차량을 이끌었고, 분명하게 자기 주장을 펴는 등 이 운동의 중요한 일부다.
사실, 급진주의 여성운동이 여성 차별·비하 금지 메시지 전달에서 멈출 뿐, ‘여성 대통령’ 박근혜 정권 하에서 벌어진 평범한 여성들의 처지 악화를 폭로하며 그러한 여성들의 요구(시간제 일자리 반대, 보육 확충, 낙태 합법화 등)를 더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거대한 운동이 일어나 큰 연대감이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이런 요구들은 지지받을 수 있고 사람들의 의식 발전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가지 좋은 사례로, 11월 12일 민중총궐기 집회 결의문 낭독자에 여성·성소수자 단체들이 포함된 것을 들 수 있다.
노동자·여성의 목소리가 운동에서 더 부각되기를 바라는 정당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운동이 박근혜 개인의 퇴진에서 더 나아가 착취받고 차별받는 대중의 운동을 고무·자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